[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22>

EU본부와 로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독으로 분단되었던 독일은 45년만인 1990년 재통일 되어 면적 35만㎢(한반도 23만㎢/ 남한 98,000㎢), 인구 8천만 명으로 유럽에서는 러시아, 프랑스 다음으로 국토가 넓고, 2016년 말 1인당 GNP 4만1200달러로 세계 11위의 국가다.

수도 베를린(340만 명), 함부르크(170만 명), 뮌헨(100만 명)에 이어 인구 70만 명으로서 독일의 4대 도시인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는 북유럽에서 교통의 허브인데, 프랑크푸르트란 '프랑크족의 통로'라는 의미라고 한다. 사실 독일에는 프랑크푸르트란 지명이 여럿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도시가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이며, 이곳을 통상 프랑크푸르트로 불리고 있다.

정승열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장
프랑크푸르트는 BC 2세기경 게르만 부족들이 켈트족을 몰아내고 프랑크 왕국을 세웠던 지역으로서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Carolus: 742~814)가 795년 교황 레오 3세가 즉위후 반대세력의 위협을 받다가 보호해주니, 레오 3세는 800년 크리스마스 때 카롤루스에게 ‘신성 로마제국(Holy Roman Empire) ‘황제의 관(冠)’을 수여했다.

476년 로마제국의 멸망이후 부활했던 신성 로마제국은 843년 프랑크 왕국이 세 아들에게 나눠지면서 독일·프랑스·이탈리아가 형성되면서 제국이란 호칭은 사라졌지만, 프랑크푸르트는 여전히 독일 북부와 발트 해 연안의 여러 도시간 해상교통과 공동방어, 상권 확보 등을 목적으로 하는 한자(Hanseatic League)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육로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중세에 물자의 대량유통은 해상운송에 의존했는데, 유럽의 젖줄인 라인 강과 그 지류인 마인(Main) 강변에 위치한 프랑크푸르트는 12세기 이래 마인 강을 통해서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상인들로 1000년 이상 유럽 교통의 중심지가 되어 비행기가 발명된 이후에도 유럽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2년마다 열리는 모터 쇼(자동차)를 비롯하여 매년 서적, 기계공구, 액세서리 등 많은 국제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구시청사와 광장
프랑크푸르트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군의 집중적인 공습으로 도시의 90% 이상이 파괴되었다가 2차 대전 이후 재건되어 중세의 건물이 거의 없고, 유럽에서는 보기 드물게 현대식 빌딩이 많다. 그러나 교통의 중심지라는 이점으로 독일증권거래소. EU 중앙은행 등이 설치되어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막강한 경제력을 발휘하고 있는 경제의 중심지인데, 중앙역에서 구시가지로 통하는 도로에 40층 유럽중앙은행(Euro Tower) 빌딩과 번쩍이는 별 모양의 거대한 유로화 안내판은 프랑크푸르트의 위상을 잘 말해준다.

프랑크푸르트에는 이곳에 본사를 둔 루프트한자를 비롯하여 KAL, Asiana 등 국적기가 매일 인천공항과 연결되고 많은 한국 기업체 지사가 설치되어 있는데, 특히 1960년대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사들이 주축이 된 교포들이 독일에서 가장 많은 7,000~8,000명이 살고 있다.

그동안 서유럽 세 번, 동유럽 한번 등 도합 네 번 유럽을 여행하면서 우연인지 2001년에 여행하면서 묵었던 Holyday in Offenbach 호텔(☎49-06-980610)에 다시 묵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유럽의 대부분의 도시에서 그러하듯 프랑크푸르트에도 대중교통과 박물관 등 주요관광지와 미술관을 이용할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 카드’가 1일권(€9.9), 2일권(€14.5) 등이 있다.

시청사2층 발코니
2차 대전 동안 공습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재건된 프랑크푸르트에서 여행의 출발점은 구시가지에 있는 시청사 주변인데, 시청사는 폭이 좁은 건물이 밀집하고 지붕은 계단처럼 울퉁불퉁하게 지은 세 개의 건물이 연결된 곳이다. 시청사 앞의 광장은 중세 유럽의 모든 도시가 그러하듯 석주를 박아 포장도로처럼 만들고 이곳을 뢰머 광장(Romerplatz)이라고 하는데, 뢰머란 이 일대가 BC 50년경 로마군이 게르만족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처음 정착한 지역이어서 ‘로마인(Roman)’이란 독일어 지명이다. 1405년 귀족들이 자유도시 프랑크푸르트에 저택 세 채를 구입한 것이 계기가 되어 뢰머 광장에서는 12세기 초 세계 최초로 프랑크푸르트 박람회(Messe)가 열렸다.

광장 중앙에는 1543년에 세운 오른손에 칼,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의 ‘정의의 여신’ 유스티아(Justia)의 동상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제우스와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 디케(Dike; Justia)는 개인 간의 분쟁을 조정하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자를 칼로 제재하는 정의의 여신이다.

저울은 법과 정의의 형평성 공정성을, 칼은 엄정한 심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유스티아는 오늘날 정의(Justice)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 오랫동안 법원에 근무했던 탓에 일찍부터 뢰머광장의 ‘정의의 여신상’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정의의 여신상이 명성만큼 크지 않고 아담한데서 가벼운 실망(?)도 했다.

오스트차일레

뢰머광장은 각각 개성 있는 건물들로 사방이 둘러싸인 것이 커다란 특징인데, 광장 남쪽인 구시청사는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공습으로 부서진 것을 재건한 건물이다. 2층의 넓은 홀은 1562년 신성 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을 거행했던 장소여서 ‘카이저 자르(Kaiser Zar)’라고 하는데, 2층 황제의 방에는 역대 신성 로마제국 황제 52명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특히 3개의 건물 중 가운데 건물 2층에는 다른 건물과 달리 발코니가 광장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이곳은 대관식을 마친 황제들이 광장에 운집한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장소라고 한다.

이후 발코니는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하는 세계 각국의 유명 인사들도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으며, 한국인으로는 1979년부터 1983년까지 프랑크푸르트 축구팀 선수였던 차범근(Cha Boom) 선수가 UEFA 우승트로피를 들고 관중들에게 인사한 유일한 인물이라고 한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구내의 기둥 벽에는 차범근 선수의 사진이 걸려있다고 한다.

시청사 오른쪽의 하얀 외벽과 빨강색 벽돌로 지은 고딕식 니콜라스 성당은 14세기까지 왕실의 예배당으로 사용하다가 1405년 시청사가 만들어진 이후 개신교인 루터교회로 바뀌었는데,  종탑에서는 지금도 하루에 세 번 종이 울린다.

정의의 여신상
또, 광장의 북쪽에는 15세기 이래 아랍 상인과 로마인 등 외국상인들이 교역하러 와서 묵었던 지붕이 뾰족한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데, 이 건물들은 모두 목조건물이다. 철근 콘크리트가 발달하지 못한 중세시대에 국제 상인인 쾰른의 비단 상인들이 반달형과 X자형 문양으로서 버팀목을 삼아 견고하게 지었는데, 이런 건축공법은 독일에서도 매우 독특하여 ‘오스트차일레(Ostzele)’라고 부른다.

오스트차일레 뒤로 우뚝 솟은 고딕식 건물은 프랑크푸르트 대성당(Frankfurt Cathedral)으로서 1412년에 짓기 시작하여 450년이 지난 1877년에야 완공되었는데, 성당의 정식 명칭은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바돌로메를 모시는 ‘성 바돌로메 대성당(St. Bartholomaeus)’이다. 그러나 1562년부터 230년 동안 신성 로마제국의 선제후(選帝侯)들이 모여서 황제를 선출해서 ‘황제의 성당(Kaiser Dom)’이라고도 한다.

한편, 광장 서쪽에 있는 파울로 교회는 독일 통일을 위한 초대헌법 초안을 만든 곳으로서 지금도 세계평화에 기여한 작가를 선정하여 시상하는 장소이기도 하다(선제후에 관해서는 2017.3.17. 비엔나 슈테판 대성당 참조).

독일지도
성 니콜라스교회
프랑크푸르트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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