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나와 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선물

오는 9일 치러지는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행사한 한표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전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1. 2016년 12월 31일. 병신년(丙申年) 마지막 날 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새해를 맞았다. 등에는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메고 한손엔 사진기, 다른 한손에는 촛불을 들었다.

그 추운 겨울 밤 광장에 모인 군중들과 ‘박근혜 퇴진’, ‘조기 탄핵’을 외치며 정유년(丁酉年)을 맞았다. 기자인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난 그 자리에 있었다. 정의로운 대한민국 국민,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였다.

#2. 2017년 5월 4일. 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첫날. 난 아내와 두 아이와 집 앞 주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투표장에 들어가 투표용지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써진 이름들이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이란다.” 그리곤 기표기를 들어 한 후보 이름 옆에 내 소신을 담아 꾹 눌렀다. 아이들과 함께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밀어 넣었다.

투표장을 나와 아이들과 휴대폰으로 소위 말하는 ‘인증 샷’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일곱 살 난 큰 아이가 물었다. “아빠, 그런데 대통령은 왜 뽑는 거에요?” 나는 순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망설였다. ‘대한민국의 미래’, ‘민주주의 꽃’같은 말은 아직 유치원생이 이해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곰곰이 생각한 뒤 설명했다.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장이야. 그런데 지금 대장이 잘못을 저질러서 감옥에 가 있어. 그래서 새로운 대장을 뽑으려는 거야. 대장을 잘 뽑아야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 아들, 딸이 행복하게 살게 이 나라를 잘 지켜줄 거 아니겠니?” 그제야 아이는 무슨 소리인 줄 알겠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모습.

#3. 지난 주말, 선거 복마전을 그린 영화 <특별시민>을 봤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대사다. “인생을 살면서 말이다. 우리는 무수한 선택을 하게 돼 있어. 어떻게 보면 삶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비단길을 가기도 하고, 또 때로는 가시밭길을 가기도 해.”

대권을 꿈꾸는 정치 9단인 현직 서울시장이 헌정 사상 최초 3선 시장에 도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극중 주인공은 물불 가리지 않는 선거운동을 한다. 급기야 자신이 범한 살인을 딸에게 뒤집어씌우면서까지 권력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끝내 3선 시장에 당선된다는 스토리다.

영화를 보고 나서 뒷맛이 영 개운치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정치부 기자로 살면서 우리 정치의 치부와 민낯을 보고 말았다는 기분 탓이다. 영화 중반부 “선거는 똥물에서 진주를 꺼내는 것이다”는 대사가 나온다. 나 역시 똥물로 범벅된 정치판에 익숙해져 진주를 꺼내는 일보다 고약한 냄새에 무감각했던 건 아니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4. 2017년 5월 5일. 사전투표에 참여한 유권자가 1100만 명을 넘었다. 유권자 4명 중 1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사전투표 마감 기사를 쓰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지난 연말, 찬바람 부는 광장에서 들었던 촛불과 함성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유권자의 힘,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역대 최고’ 투표율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도 70%가 넘는 유권자들이 남아 있다. 투표하는 시민들이 진정한 ‘특별시민’이 될 자격이 있다. 유권자의 힘으로 권력자에게 건강한 긴장감을 심어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과 내 아이들이 자랑스러운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길이다. 이 나라의 ‘대장’은 대통령이 아닌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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