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여론과 정치] 분노가 아닌 희망으로 선택하자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내려왔다. 이제 5월이면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탄핵이 기각되었다면 대선에 어떤 영향이 있었을까?

필자는 탄핵이 기각되면 보수진영은   대선준비를 위해 진영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는 반면, 진보진영은 탄핵을   원했던 국민의 분노가 더욱 상승해 정권교체를 위한 힘으로 더 강해질 수 있겠다고 말하곤 했다. 

반대로 탄핵이 인용되면 진보진영은 잘 준비된 강력한 후보가 있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짧은 레이스를 단방에 끝내버리는 혜택을 얻는 반면 보수진영에겐 또 다른 차원의 큰 분노가 만들어짐으로써 판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기회를 얻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해 왔다.

탄핵이 이루어진 지금, 필자는 우려한다. 탄핵정국의 분노가 시즌1이였다면, 대선정국의 분노가 시즌2가 되는, 촛불든 국민이 시즌1의 주인공이 되고 태극기든 국민이 시즌2의 주인공이 되는, 그래서 이번 대선은 분노가 최대의 무기가 되는 ‘분노의 대한민국선거’가 될지 모르겠다는 우려다. 나는 이런 선거를 원치 않는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과 측근비리,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아들의 비리, 노무현 대통령 본인의 뇌물수수와 동생비리, 이명박 대통령의 형과 측근의 비리 등 역대 대통령 모두가 비리에 점철되고  비선들의 국정개입에서 자유롭지 않은 대한민국 대통령사(史)이지만, ‘돈한푼 사적으로 챙기지 않았다’는 박 전 대통령에게 국민들은 왜 그렇게 더 큰 분노를 느꼈을까? <분노의 대한민국 시즌1>은 이런 듯하다.
 
임기내내 ‘불통’이라는 비판을 듣던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조윤선 전 문화부장관조차 국정조사에서 독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던 대통령이었는데 ‘겨우 최순실’같은 사람하고만 소통하고, 청와대의 김기춘비서실장, 우병우 민정수석, 문고리 3인방이 결국은 대통령의 귀를 막고 ‘듣보잡’인 일개 최순실 한 여인에게만 열어줬다는 사실이 너무도 국민을 분노케 했다.

여기에 최순실 주변에 있었던 불나방들이 고위직인사가 되고 온갖 이권을 행사한 그 작태가 덧붙여져 소위 ‘국정농단’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사회 전체를 화나게 했고 특히나 지지했던 보수층마저도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리게 했다.

게다가 그 최순실의 딸이 승마를 얼마나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막강한 삼성이 오히려 쫓아다니며 후원하고 학교생활을 제대로 안했는데도 명문 이화여대를 편법으로 들어가는 그 작태가 흙수저생활에 고단한 국민들을, 대학입시에 찌든 우리 중고생과 젊은 층, 그리고 그들의 부모를 분노하게 했다. 대통령이 뇌물을 받았는지 미르, K재단에서 사익을 취했는지 그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국민은 최순실과만의 소통에 허탈했고, 최순실 딸에게의 불공정함에 분노했다.

대선이 50여일 앞인지라, 이제 누구를 새 대통령으로 찍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몇 가지 상황이 <분노의 대한민국 시즌2>를 우려케 한다. 탄핵인용을 거부하는 시위인파 중 3명이 사고로 숨졌다. 많은 보수인사들과 시민들이 ‘법치는 죽었다’고 태극기를 높이 들었다. 더욱 거세게 투쟁할 것을 공언하고 있다.

여기에 자연인이 되어 사저로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의 눈물에 담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는 메시지와 3월 중 검토되는 검찰 수사 재개와 가능성도 없지 않은 구속수사의 날선 광경은 국민들, 특히 박대통령지지자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다. 위기에 처한 보수정당과 대선후보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분노의 함성을 자극할 수 있다.

보수진영내의 분노확산 꿈틀거림에 상대진영도 이를 자극하거나 맞불을 놓는 조짐도 보인다. 이미 ‘분노는 정의의 표출’이라고 말한 바 있는 압도적 대선 1위주자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는 헌재가 ‘세월호 당시 대통령 행적은 탄핵사유가 아니다’는 판결을 했음에도, 탄핵당일 팽목항으로 달려갔고 세월호 특검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타임즈 인터뷰에서 ‘미국에 노(No)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등 미국과 북한 관련 애매한 발언을 계속 한다. 소신이기도 하겠지만 상대의 불안감과 분노를 자극하는 발언임엔 틀림없다. 상대의 결집된 행동이 오히려 자신의 득표에 유리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할 수도 있다. 설혹 그렇더라도 이렇게 진영논리가 배어있는 행보와 발언은 정치공학적으로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선 바람직하지 않다.

강영환 전 국무총리실 공보비서관.
3월 10일이 <분노의 대한민국>의 완결일이었으면 좋겠다. 이후는 <미래를 향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하는 솔직한 바람이다. 분노의 시즌2가 되어서는 안된다. 국민들도 현재 대통령을 끌어내릴 때의 마음가짐과 미래대통령을 새로 뽑을 때의 마음가짐은 달라야 한다.

탄핵정국 전체를 감돌았던 과거에의 분노가 아니라 이제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기준으로 대통령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인, 특히 대선주자들은 국민의 분노에 의존할 게 아니라 국민이 자신의 미래를 믿어 선택받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단지 시늉이 아니라 국민의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리는 진정한 마부(馬夫)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법구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달리는 수레를 멈추게 하듯,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리는 이를 나는  진짜 馬夫라고 부르겠다. 다른 사람은 고삐만을 쥐고 있을 뿐이다.」
국민, 그리고 정치인들이 새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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