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을 향한 불신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연구원은 지난해 연구용 원자로의 내진 안전성 문제로 한차례 홍역을 앓았다. 연구목적을 이유로 방사성폐기물을 꾸준히 반입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지역사회에 큰 걱정거리를 안겨주기도 했다.

비난여론이 고조되자, 연구원 등은 대전에 보관 중인 ‘사용 후 핵연료’ 1699봉을 2021년까지 외부로 반출시키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약속은 성난 여론을 달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연구원은 약속한 폐연료봉 반출은커녕, 지난달 15일과 22일 두 차례에 걸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83드럼을 또 다시 들여왔다. 이번에도 그들은 “연구목적”이라는 상투적인 변명만 했다.

시민들은 이제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원자력연구원을 발전소 주변지역으로 내쫓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반응까지 흘러나온다. ‘파이로프로세싱’이라고 부르는 폐연료봉 건식재처리 연구가 대전에서 이뤄진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걱정과 우려는 분노의 감정으로 치닫고 있다.
 
원자력계는 ‘파이로프로세싱’을 폐연료봉의 부피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연료를 재활용하는 기술이라고 이야기한다. 타고 남은 연탄에서 다시 연탄을 뽑아내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외 상당수 전문가들은 “검증되지 않은 위험천만한 시도”라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일반 시민들이 전문가들의 논쟁에 끼어들어 진실을 판별해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상식의 눈으로 판단해 볼 수는 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우라늄을 연소시켜 전기를 만들고 나면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가 남는다. 흔히 말하는 폐연료봉이다.

미국 등 원자력 선진국들은 폐연료봉을 습식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얻는데, 한국은 이 같은 시도자체가 어렵다. 한미원자력협정에 따라 핵무기로 전용 가능한 습식재처리가 원천 봉쇄된 까닭이다. 다만, 미국은 플루토늄 추출이 어려운 건식재처리인 ‘파이로프로세싱’은 허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조차 ‘파이로프로세싱’을 상용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파이로프로세싱 과정에서 고독성 기체가 방출돼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는데다 설사 상용화되더라도 별도의 고속원자로를 건설해야 하는 등 경제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런데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인구 150만 대도시 한 복판에서 ‘이 위험하고도 경제성 없는 연구’를 벌이려 한다.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연구원이 그 동안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이, 시민들의 신뢰를 쌓아 왔다면 혹시 이해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연구원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려 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답이 명백하게 나온다.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는 시민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당장 중단하는 것이 여러 논란과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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