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사)대전교육연구소장

아이들을 교과별로 성적에 따라 나누어 학습하면 더욱 효율적일까? 수준별 수업이라 하여 국어, 영어, 수학 등 소위 주요 과목을 상, 중, 하로 나누어 수업하는 것이 학력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중등학교에서 널리 시행되고 있다. 보통은 영어와 수학을 수준별로 하는데, 요즘에는 국어까지 수준별 수업을 하는 학교가 많아졌다.

이를 조장하는 것은 교육청인데, 학생을 수준별로 나누었을 때 나타나는 수업시수의 증가를 고려하여 시간 강사 비용을 지원하고 학교 평가에 반영하는 등 단순한 지원을 넘어서고 있다. 수준별로 수업하는 것을 학교 교육의 첨단화인 것처럼 포장하고 이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성적으로 아이들 나눠 학습하는 것이 교육 정상화?

성광진 (사)대전교육연구소장
수 년 전 교육청의 비용 지원으로 국어과목에서 한 해 동안 수준별 수업을 하다가 포기하고 예전으로 돌아간 적이 있다. 교사나 학생이나 모두 수준별 수업을 포기하길 잘 했다고 느꼈다. 교사들은 대체로 수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아졌다고 느꼈는데, 성적이 낮은 반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고충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상급반을 빼놓고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성적에 의해 등급을 나눠 수업을 받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한다. 또 하급반 학생들을 맡게 되는 교사들은 대부분 수업이 힘들다고 토로한다. 하급반 학생들은 대부분 초·중학교에서부터 학습에 대한 흥미를 상실하였기 때문에 수준에 맞춰 가르친다고 잘 따라올 것으로 보는 것은 환상이다. 이들은 공부에 무관심한데다 하급반에 편성된 것에 심리적으로 주눅 들어 있어 학습 의욕이 더욱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중급반 아이들은 어떨까? 대부분 상급반에 대해 경쟁의식을 갖고 더욱 열심히 하기를 바라지만 생각과는 다르다. 중급반 아이들에게는 분위기를 이끌고 나갈 선도적인 학습자가 드물어 교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래도 상급반은 가르치는 맛이 난다고 대부분의 교사들은 말한다. 그러나 상급반 내부에서는 경계선에 있는 아이들이 중급반으로 떨어질까 노심초사하게 마련이다. 아이들의 공부 목표가 상급반에 편성되기 위해 노력하는 경향을 보이는 점은 이 제도가 갖는 폐해다. 공부의 목표가 오로지 수준별 반 편성에 몰두하는 것이라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결국 수준별 수업은 경쟁을 유발하여 더욱 학습에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바라지만 학습의 근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더욱이 이 수업이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에서도 성적을 향상시키는 좋은 수단이라는 점도 나타나지 않았다.

시험은 보지만 1, 2, 3등 비교하지 않는 핀란드 교육

2012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핀란드의 교육개혁가인 에르끼 아호가 교육자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현재 한국에서 영어, 수학 등의 과목에서 수준별 수업을 하는데 핀란드는 어떤가?”
“9년제 종합학교 설립은 전국에서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5년에서 10년의 시간을 두고 지역별로 행해졌다. 그 과도기에 일부 지역에서 수준별 수업을 했는데, 종합학교에서 더 나은 결과가 나와 이후에 수준별 수업은 없앴다. 물론 교사들에게는 도전이었다. 모든 아이들에게 맞춰 지도하려면 교사의 교육이 달라져야 했기 때문이다. 종합학교의 개혁과 아울러 교사 개혁도 이뤄졌다.”

“핀란드 학교에서는 수월성(엘리트) 교육은 불가능한가?”
“핀란드에도 시험은 있다. 평가는 있지만 비교는 안 할 뿐이다. 종합학교 과정동안 외부의 평가는 없다. 학교 안에서 교사가 수시로 평가한다. 다만 누가 1등 2등 하는 식의 비교를 하지 않는다. 교사들은 교육과정의 목표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평가한다. 도달하지 못한 학생이 있으면 그 아이의 문제를 살펴 목표까지 끌어올려준다. 잘 하는 아이에게는 더 어렵고 도전적인 과제를 준다.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개별화된 학습을 한다.”

핀란드도 학교별로 수준별 수업을 했지만 결국 개별화 학습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수업은 강의식이 주류를 이룬다. 시험을 염두에 둘 때 가장 효율적인 수업은 일방적인 강의식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아이들을 일정한 수준까지 올리기 위해 학생 개개인에 최적화된 개별화 수업을 하는 것은 많은 준비가 필요하며 다양한 방식이 동원되어야 한다. 바로 이런 수업의 개혁을 위해 필요한 것이 교사의 각성이다.

핀란드는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수업의 개혁을 이루었다. 그것은 수업의 목표가 입시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학력 간의 임금 격차가 상대적으로 적었고, 사회적 안전망인 복지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던 때문이기도 하다.

입시경쟁교육 개혁하지 않고는 교육 정상화 요원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정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학력 간의 임금 격차는 줄어들 줄을 모르고 있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채우면서 고용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러니 국민들이 내 아이만은 좋은 직장, 든든한 직업을 바라며 쪼들리면서도 더욱더 사교육에 매달린다. 학교는 학교대로 입시에 종속되어 철 지난 유행과도 같은 수준별 수업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을 기만하고 있다.

교육부는 2009년부터 공교육을 활성화하고 사교육을 줄이겠다며 이 수준별 수업을 학습자의 학습 동기를 유발하여 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개혁안으로 널리 선전해왔다. 그러나 지금 어느 누가 수준별 수업으로 인해 공교육이 활성화되고 교육이 정상화되었다고 믿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 교육의 본질적인 모순인 입시경쟁교육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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