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업계와 교감 없는 일방통행… 청사공무원·세종시민 여론 무마용 생색내기 지적

KTX오송역 전경. 오송지역 주민들의 KTX 세종역 반대 플랑카드가 도로 한편에 설치되어 있다. 자료사진

충북도가 KTX세종역 설치 반대를 위해 당근(?)으로 제시한 ‘오송역 운행 택시요금 인하’가 사실상 명분용이자 생색내기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충북 택시업계와 폭넓은 의견교환이나 협의 과정이 없었고, 또 다른 이해 당사자인 세종시 택시업계와도 교감이 이뤄지지 않은 채 일방통행식으로 제시했다는 게 그 첫 번째 이유다.

요금 인하에 따른 충북 택시업계의 손실비용을 보전할 만한 뚜렷한 대책도 현재로선 없고, 가뜩이나 택시 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종시 택시업계가 충북 택시의 귀로 영업을 허용할 리도 만무하다.  본보는 19일 KTX오송역과 정부세종청사 일대에서 만난 양 지역 택시 기사들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충북도, 갑작스레 ‘오송역 운행 택시요금 인하안’ 꺼내든 까닭

충북도가 해당 지역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는 ‘오송역 운행 택시요금 인하안’은 이렇다.

현재 오송역에서 정부세종청사로 향하는 충북 택시요금은 약 2만1000원 수준으로, 정부세종청사에서 오송역까지 운행하는 세종 택시비 약 1만8000원보다 비싸다. 충북도는 여기에 포함된 각종 할증요금(지역+사업구역 외)을 폐지함으로써, 운행요금을 1만4000원까지 대폭 낮추겠다는 복안이다.

그동안 정부세종청사 공무원들과 세종시민들의 ‘택시요금 인하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충북도가 갑작스레 이 같은 카드를 꺼내든 까닭은 무얼까.
 
같은 지역과 거리를 왕복하고도, 충북 택시요금이 더 비싼 현상은 지난 2012년 12월 정부세종청사 개청 당시부터 4년 가까이 되풀이되고 있다. 다행히 야간 기준 2만7000원 선까지 치솟았던 요금은 지난 2014년 청주‧청원 택시 통합과정에서 최대 6000원까지 인하됐다. 

오송역 입구에 줄지어선 충북지역 택시 모습. 자료사진

하지만 이마저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택시요금’이란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 서울역에서 오송역까지 51분 소요되는 거리의 KTX 이용요금이 성인 기준 1만8500원인데 반해, 오송역~세종청사까지 약 17km(18~20분 소요)를 택시로 이동하는데 2만 원을 초과하고 있어서다.

수도권과 세종시간 이동 효율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보조적 교통수단인 택시 요금이 오히려 주교통수단보다 더 비싼 이해하기 힘든 현실이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KTX오송역에서 BRT 버스 이용 시 소요되는 비용(현금 1200원)과 비교하면 무려 17.5배나 비싸다.  충북도가 이 점을 모를 리 없다. KTX 세종역 설치가 또 다시 공론화되자마자, 오송역 택시 요금 인하안을 들고 나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충북 택시업계의 이익이 KTX세종역 설치를 위한 하나의 명분이 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달라진 세종시 위상과 도시 건설 속도, 인구유입 추이 등 전반을 고려할 때, 과거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 ‘오송역 활성화 저해’라는 지역 이기주의적 접근만으로는 KTX세종역 설치를 막아설 명분을 찾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제2집무실, 국회 분원을 넘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수도이전 개헌론까지 부각되면서 KTX세종역 설치의 당위성이 더 커진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오송역에서 만난 충북 택시업계… “요금인하 합의된 바 없다”

오송역에서 정부세종청사 등 세종시 신도시로 향하는 BRT 버스 탑승을 기다리는 승객들.

현재 청주권 택시는 4000여대고 이중 100여대가 오송역에서 주로 영업을 하고 있다. 이날 출근시간 이후인 오전 10시경에도 약 30대의 충북 택시가 오송역 앞에 줄지어 대기했고 손님을 태워 빠지면 일순간 다시 채워졌다.

오송역에서 세종으로 향하는 택시 영업이 비교적 원활히 전개되는 모양새로 비춰졌다. 이날 만난 택시 기사는 하루 10번 이상 정부세종청사를 왕복하는 택시도 있다고 전했다. 2012년 정부세종청사 개청이 충북 택시업계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코레일에 따르면 실제 오송역 이용객 수가 지난 2012년 세종시 출범 당시 12만 여명에서 지난 4월 기준 34만 여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충북 택시업계가 KTX세종역 설치를 결사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변에 설치된 반대 현수막에서 이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요금 인하에 대한 택시기사들의 반응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1일 최대 10회 운행 기준으로 산정하면, 현재보다 6만원 가까운 일일 손실금이 발생하기 때문. 한 달(주6일)로 환산하면 최대 160여만원, 1년으로는 최대 약 1944만원이다. 이를 다시 운행 중인 100여대와 연동하면 연간 최대 20억원 가까운 손실로 이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택시가 그동안 숱한 논란을 거치며 대중교통수단으로 포함되지 않은 마당에 충북 지자체의 손실보상금 지급도 관련 법상 불가능하다. 

충북의 한 택시 기사는 “아직 요금 인하에 대해 청주시 등 충북도에서 전달받은 바 없다”며 “세종시민들에게 혜택은 돌아가겠지만, 업계 손실금을 어떻게 보전해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세종 택시업계 반발 기류 확산, "KTX 세종역 신설해야"

오송역 광장 뒷편까지 충북 택시가 정차된 가운데 KTX 세종역 설치 반대 현수막이 도로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세종 택시업계가 충북에 던지는 메시지다.

세종시 택시의 법정 허용대수는 현재 271대. 옛 연기군 토박이 업체 3곳(252대)에 출범 후 세종시로 편입된 옛 공주시 택시업계(웅진‧한일) 2곳이 영업 중이다. 

하지만 현재도 옛 공주택시의 세종시 영업권 승계를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시가 중재 역할을 맡아 옛 공주 택시업계 소속 19대의 영업권을 인정했지만, 나머지 11대는 아직 수용되지 않았다. 다만 웅진‧한일택시가 지난달 제기한 영업 제한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나머지 11대의 영업이 지난달 말부터 재개되고 있다.

세종시 택시 내부 상황이 이처럼 좋지 않다. 가뜩이나 시민편의 증진을 위한 BRT와 마을버스, 광역 BRT까지 늘면서, 세종시 택시업계의 생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귀로 영업’을 허용하자는 충북의 제안이 심히 불쾌할 수밖에 없다. 정부세종청사 등이 소재한 신도시권에서 주로 활동 중인 택시가 100대 미만인데, 오송역 주변의 100대마저 유입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현실이다.

충북 택시가 손실액 보전을 위해 과속‧난폭 운전을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내놨다. 현재도 문주1교에서 오송역까지 시속 100km 이상 운전은 일상화된 지 오래다.

세종택시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동 귀로 영업을 하면 당연히 세종시 택시업계의 타격이 클 수 밖에 없다”며 “오송역 입지 자체가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탄생했고 잘못됐다. 그 책임을 세종시민과 택시업계가 감수하라는 건 충북의 극단적 이기주의의 산물”이라고 성토했다.

미래 세종시에 걸맞은 KTX세종역 신설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중‧장기적으로 KTX 세종역 신설은 당연한 일이다. 신동‧둔곡의 과학벨트 지구와 대전 유성권 수요 등을 고려할 때도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과거 공주시를 연고에 뒀던 웅진‧한일택시도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 업계의 한 대표는 “지난해 서울~세종간 고속도로 건설 등 각종 사업이 모두 충북을 거쳐 가야 한다는 논리는 억지”라며 “세종시민 편의가 우선이다. 이에 아랑곳없이 오로지 오송역과 지역 이익만을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충북 택시 운행요금 인하’ 현실화 가능성 미지수

세종 택시들이 주로 대기하고 있는 정부세종청사 앞 BRT 도로. 오송역과 달리 평일 낮 시간대 2~3대 정도 대기하고 있다.
지역에서는 충북이 요금 현실화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거나 관련 업계와 충분한 협의를 진행하지 않은 채, KTX세종역 설치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한 협상용 카드로만 이를 꺼내든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제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오송역 택시 운행요금 인하’ 가능성은 미지수란 것.

이와 관련, 세종시와 충북도, 청주시는 오는 26일 오후 세종시청에서 택시요금 조정 협의회를 갖는다. 다만 세종시는 해묵은 과제로 남아있던 ‘충북 택시 요금 인하’에 KTX세종역 설치를 연동하려는 충북지역의 의도를 경계하고 있다. 요금 조정안을 통해 택시업계와 시민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이날 협의회의 취지라는 게 세종시의 입장이다.

세종시의 한 시의원은 “충북이 KTX세종역 설치를 반대하기 위한 꼼수로 오송역 택시 운행요금 인하를 들고 나온 것 같다”며 “정부의 타당성 검토까지 막아나서는 건 월권행위다. 국회의원과 인구 수를 등에 업고 힘으로 세종시민들의 권리마저 빼앗으려 한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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