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창호의 허튼소리] 전 충청남도 부여군 부군수

살다보면 듣기 좋은 소리와 듣기 싫은 소리가 있다. 칭찬하거나 격려해 주는 소리는 듣기 좋은 소리고, 잔소리나 꾸중하는 소리는 듣기 싫은 소리다.
자연의 소리도 듣기 좋은 소리가 있고, 듣기 나쁜 소리가 있다. 장마에 먹구름 속 천둥소리는 듣기 싫은 소리고, 가뭄 끝에 후드득 후드득 비드는 소리는 듣기 좋은 소리다. 배꽃 핀 밤에 먼 산에서 우는 소쩍새 울음은 시심을 깨우는 듣기 좋은 소리고, 한낮 느티나무 그늘에서 세차게 울어대는 말매미 울음소리는 낮잠마저 깨우는 듣기 싫은 소리다. 고운 선율의 악기 소리는 언제나 듣기 좋은 소리고, 철판이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는 잠시라도 듣기 고약한 나쁜 소리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름다운 소리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소리 3가지가 전해진다. 책 읽는 소리, 다듬이 소리, 아기 울음소리다.

옛 사람들은 꽃피고 새우는 봄밤이나 오동잎 지는 가을밤이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글 읽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던 모양이다. 이웃 집 총각 글 읽는 소리에 반해 아리따운 낭자가 월담을 했다는 이야기가 숱하게 전해온다. 정인지와 조광조의 책 읽는 소리에 반한 낭자들이 그랬다 하며, 비슷한 이야기들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책 읽는 소리가 얼마나 좋았으면 시집 안 간 낭자들이 체통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월담까지 했을까. 이로 보면 책 읽는 소리야 말로 미성(美聲)이 아닐 수 없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 병사들은 다 쓰러져가는 게딱지만한 초가집에서 낭낭히 들려오는 글 읽는 소리에 “가난한 나라지만 문화수준이 매우 높다”며 놀랐다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은 책 읽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없다. 국민 1인당 독서량도 세계 꼴찌 수준이란다. 우리의 아름다운 소리 하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개인이나 사회단체 할 것 없이 ‘아이들에게 책 읽어 주기’나 ‘좋은 책 읽기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다. 방송국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고전이나 양서 읽어주는 프로’를 편성하는 것은 어떨까?

어렸을 때 시골의 농촌에서는 사시사철 다듬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온 날 개구리 울름소리 시끄러운 밤이나, 달 밝은 가을밤이나, 흰 눈 내리는 겨울밤이나 ‘뚝닥 뚝닥 뚝딱닥 뚝닥-’하는 다듬이 소리를 들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마주 앉아 다듬돌에 빨래를 얻어 놓고 둥근 방망이로 두드려 주름을 폈던 것이다.

다듬이질 소리는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어느 때는 급박하게 어느 때는 완만하게 들렸다. 어떻게 그렇게 이심전심으로 호흡을 맞추며 두드렸는지 신기할 뿐이다. 지금은 이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전기다리미를 쓰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은 다듬이질 잘하는 가정주부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또 하나 아름다운 소리가 맥이 끊긴 채 사라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해도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세탁기 속에라도 ‘뚝닥 뚝닥 뚝딱닥- 뚝딱닥 뚝딱닥- 뚝닥’하는 다듬이 소리를 넣으면 어떨까. 세탁이 종료되면 ‘삑-삑-’하는 기계음이나 다른 신호음 대신에, 다듬이 소리로 세탁이 끝났음을 알리면 일상에서 추억의 소리를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한 때 인구가 너무 많아 먹고 살기 힘들다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인구가 벌써 자연감소 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조간신문을 보니 광역단체에서 2013년 전남에 이어 2014년 강원도가 자연감소 되기 시작했고, 전북과 경북도 내년부터 자연감소 될 전망이라고 한다.

2014년 기준으로 사망자가 신생아를 추월한 기초단체는 전국 226곳 중 95곳으로 42%에 달한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 노년층이 1000만명을 넘는 반면에 신생아는 43만명에 불과할 전망이며, 불과 13년 남짓한 2030년이면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자연감소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제 아기들 울음소리마저도 끊기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인구가 감소하면 우선 나라 지키는 군인들이 모자라게 되고, 노동생산인구도 부족해져 경제발전도 어렵게 된다. 또 경기가 침체되면 취업을 못하게 되고 결혼을 미뤄 저출산을 부르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인구증가를 정책의 최우선에 둬야 한다. 기업도 망설이지 말고 투자를 늘려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정치권은 싸움질과 이념다툼을 접고, 일자리 창출법안들을 하루빨리 입법화해야 한다. 국가적 어려움을 앞에 두고 국민들에게나 후손에게 더 이상 죄짓지 말아야 한다.

사회도 혼인 적령기의 남녀가 결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끌어야 한다. 인구는 국가존립 기반이다. 국가가 적정한 인구수를 유지하지 못하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하거나 멸망할 것이 분명하다. 이를 막을 가장 좋은 방법이 전국에 아기울음소리가 넘쳐나도록 하는 것이지만, 정 하다 못하면 외국 이민이라도 많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나라는  존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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