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창호의 허튼소리] 전 충청남도 부여군 부군수

화폐에는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와 기술력이 함축돼 있다. 특히, 지폐에는 그 나라의 위대한 인물과 우수한 문화를 알리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

지폐 속 인물을 ‘무언의 외교관‘이라 한다. 따라서 화폐에는 역사적인 위인이나 나라발전에 크게 공헌하여 국민적 존경과 지지를 받는 인물을 넣거나 새긴다. 전 세계적으로 약 80%가 화폐에 인물을 넣고 있다.

영국과 같이 국왕을 화폐 앞면에 넣고, 뒷면에 역사적인 인물들을 넣는 경우도 있지만, 나라에 공헌한 역대 대통령을 앞면에 넣는 경우도 많다. 미국만 해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 에이브러햄 링컨, 앤드류 잭슨 등 대통령 얼굴을 넣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 때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지폐와 동전에 넣은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폐나 동전에 새겨진 대통령이 한 분도 없다.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 지폐에는 최고액권인 5만원권에 신사임당이, 1만원권에는 세종대왕, 5천원권에 이이, 1천원권에 이황이 실려 있다. 모두가 조선시대 인물들이다. 훌륭한 분들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5만원권을 제외하고는 수십 년 사용해 온 지폐들이다. 이제 국민들도 지폐에 실린 이 분들을 알만 큼 알게 됐다.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엊그제 언론보도를 보니 미국이 지폐 모델을 바꾼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대표적인 내용은 현행 20달러 앞면에 실려 있는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의 얼굴을 빼고, 노예 해방에 앞장 선 흑인 여성 인권 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을 넣는다는 것이었다.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1812년 영·미 전쟁 때 영국군을 뉴올리언스에서 격파하고, 대통령이 돼서는 잭슨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등 공(功)이 크지만, 정벌 과정에서의 무자비한 인디언 학살과 인디언 보호구역을 설정해 인디언들을 추방한 과(過)로 인해 지폐 앞면에서 사라지고, 백악관과 함께 뒷면에 실리게 되는 모양이다.

이외에도 10달러 지폐 앞면은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을 유지시키되, 뒷면은 재무부 건물과 함께 여성 참정권 운동가 5인 모습을, 링컨 대통령이 앞면에 있는 5달러 지폐는 앞면은 유지하되, 링컨 기념관이 있던 뒷면에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인권 운동가 엘리너 루즈벨트 여사를 넣는다는 것이다. 미국이 오랜만에 지폐 앞면에 실린 인물을 바꾸거나, 뒷면에 대거 추가해 넣으려는 것이다. 2020년까지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 한다.

영국은 주기적으로 지폐에 실리는 인물을 교체한다. 지폐 앞면은 국왕 엘리자베스2세가 고정적으로 실리지만, 뒷면은 영국의 역사를 빛낸 세계적인 인물이나 유명인을 기념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바꾼다. 예를 들면 2016년에는 5파운드에 실려 있던 19세기 여성 사회 개혁가 엘리자베스 프라이 대신 윈스턴 처칠을 넣었고, 현재 10파운드 지폐에 실려 있는 찰스 다윈을 2017년부터는 <오만과 편견>의 저자 제인 오스틴으로 교체키로 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지폐 인물을 교체할 때가 됐지 않나 싶다. 화폐를 통해 진보와 보수로 갈려 있는 국민들을 통합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지폐 인물을 대폭 교체하고, 10년이나 20년 주기로 유지할지 교체할지를 다시 검토했으면 좋겠다. 지폐 속 인물도 지속적으로 발굴해 좋은 인물로 교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검토해 볼 수 있는 방안으로, 우리도 모든 지폐 앞면 인물은 세종대왕-한글을 창제하고 과학문명을 발달시킨 성군으로 아직까지 대체할만한 인물이 없음을 감안-으로 통일하고, 뒷면에 역사적 인물을 넣는 것이다. 5만원권도 앞면은 세종대왕으로 하고, 뒷면에 신사임당을 그의 작품과 함께 넣으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5천원권 뒷면에는 이이 대신 새로운 인물을 넣되,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상해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을 넣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하면 초대 대통령도 기릴 수 있고 진보와 보수를 모두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천원권 뒷면에는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 왔던 경제계의 거두이자 쌍두마차인 고(故)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의 모습을 넣는 것이다. 작금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두 분처럼 모험과 도전정신으로 돌파하자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은 2000원권을 새로 만들어 앞면에는 마찬가지로 세종대왕을 넣고, 뒷면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대통령을 나란히 넣어 영호남 화합은 물론 국민대통합을 기했으면 좋겠다. 나라를 잘살게 한 산업화의 공과, 국민을 보다 자유롭게 한 민주화의 공을 함께 기리는 것이다.

다만, 1만원권의 뒷면에는 인물을 넣지 말고 현재의 해시계와 더불어 훈민정음 서문을 넣어 우리나라 대표 화폐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표음문자를 우리가 독창적으로 만들었음을 세계에 자랑하고 알려야 할 것 아닌가. 세계는 지금 한국어 배우기 열풍에 빠져 있다니 시대상황에도 맞고, 우수한 한글을 홍보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다른 방안 하나는, 현재처럼 앞면에 교체되는 인물들을 넣고, 뒷면에 관련되는 사항을 넣는 방법이다. 물론 이런 제안은 필자의 주관임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허튼소리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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