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자원봉사 행사에 재능기부 좀 해줄 수 있어?”
“그날 일정이 있어서 어렵겠는데요?”
“에이, 무슨 일정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좀 도와줘. 부탁할게.”

구청 자원봉사센터장의 전화를 받았다. 다음 주에 있을 ‘자원봉사 한마음 대회’를 하는데 재능기부로 사회를 봐달란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마땅히 달려가야 하겠지만 망설이는 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나는 대전광역시 예산참여주민위원회 문화체육분과 위원장인데, 공교롭게도 그날 분과 위원장들이 만나는 운영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다. 한쪽은 참석만하면 7만원의 수당도 받고 점심대접까지 받을 수 있지만, 다른 쪽은 돈도 못 받고 2시간 동안 재능기부까지 해줘야 하는 상황이니 어찌 갈등이 생기지 않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이익을 쫓아 움직이는 것처럼 운영위원회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센터장과의 친분 때문에 거절이 어려워 결국 자원봉사센터의 재능기부를 결정했다.

이처럼 나는 독함이 없어서인지 거절을 잘 못한다. 혹시라도 거절할 일이 생기면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상대의 눈치를 본다. 목표가 정확한 사람들은 감정의 동요됨이 없이 단호하게 거절한다는데 그게 나는 왜 안 되는 걸까?

이런 일이 있었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을 만난 적이 있는데 면담을 끝내고 사무실을 나오는데 비서관이 나를 붙잡는다.

“대전에서 손님이 오셨는데 그냥 가면 서운하니 기념품을 챙겨 드릴게요.”
싫지 않았다.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알아서 챙겨준다는데 굳이 사양할 것까진 없지 않은가. 잠시 후 그의 손에는 기다란 ‘골프우산’이 들려있었다.
“이거 우리 의원님 사무실 방문 기념으로 드릴게요.”

망설여진다. 나는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왔고 밖의 날씨는 화창했기 때문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라니? 생각만 해도 우습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그가 한마디를 덧붙인다.
“이건 김 대표님이 쓰시고, 하나 더 드릴 테니 이건 사모님 가져다주십시오.”

우와, 이 사람 미쳤는가 보다. 일부러 나를 엿 먹이려는 의도는 아닌 것 같은데 왜 분위기 파악을 못한단 말이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 양보할 타이밍을 놓치면 일어설 수 없는 것처럼, 머뭇거리다 거절 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할 수 없이 골프우산을 받아 들고 서울역으로 가기위해 택시를 타려는데 택시는 왜 그리 안 잡히는 거야. 삼복더위에 오른손엔 가방을, 왼손에는 골프 우산 두개나 들었으니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택시를 잡아타고 무릎위에 그 우산을 떡 올려놓으니 그제야 한숨이 터져 나왔다. 우씨, 왜 이런 걸 줘서 사람을 생고생시킨단 말인가.

한데 택시를 탔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대전에 도착하면 할 일이 남아 있고 저녁모임도 있었으니 고민이 생겼다. 이걸 어떻게 들고 다닌담. 서울 역 대합실에서 투덜거리고 있는데 바닥을 닦고 있는 미화원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옳지. 저분께 드리자. 나는 고민이 해결 되어서 좋고, 아주머니는 우산이 생겨서 좋으니 이거야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을 마친 나는 아주머니께 조심히 다가갔다.

“이거 제가 기념품으로 받은 우산인데요, 맑은 날씨에 들고 다니려니 이상해요. 아주머니께 드리고 싶은데 어떠세요?”
그녀는 우산과 나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더니 이내 사태를 파악한 듯 표정이 밝아진다.
“아이고, 그러면야 저는 좋죠.”

드렸다. 그랬더니 어찌나 기뻐하던지 내가 미안한 정도로 연신 고개를 숙인다. 혹을 뗀 기분이었다. 아무튼 원치 않던 우산 덕분에 나는 고맙다는 말을 들으며 좋은 일까지 했다. 거절하지 못해 생긴 해프닝이 좋은 일까지 이어진 경우다. 한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거다.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면 그에 따른 고통이 반드시 따라오는 법이다. 얼마 전 나는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도 쓰린 속을 부여잡았던 적이 있다. 
 
버섯채취하며 식당을 운영하는 분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자신의 식당에 나를 꼭 한번 초대하고 싶단다. 내가 맛 집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니 자신의 가게에 들러 맛 평가를 해달라며 사정을 했다. 공짜 밥이 싫어 거절했지만 거듭되는 그의 부탁에 친구를 살살 꼬드겨 그곳을 찾았다. 메뉴는 버섯찌게 전골로 한상 뻑적지근하게 차려져 있었다. 좀 부담스러웠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맛있게 먹어주는 게 예의라는 생각으로 기분 좋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한껏 부풀어 오른 배를 만족스럽게 만지고 있는데 식당 주인이 이런 말을 꺼냈다.

“제가 요즘 커피에 관심이 많거든요. 조만간 바리스타 자격증 시험도 볼 예정인데, 김 대표님도 커피 좋아하시죠?”
미안하지만 아니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촌스럽게도 원두커피를 마시면 배가 아프다. 믹스 커피는 간혹 마시지만 원두커피는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다. 한데 이미 맛있는 음식을 대접 받았기에 거절이 어려웠다. 주위를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는 의도로 뜬금없는 말은 했다.

“요즘은 커피가 대중화 되었잖아요. 그래서인지 커피집이 골목골목마다 많이 생기던데요?”
내 말을 듣고 그가 벌떡 일어선다. 오케이로 알아들었나보다.
“그럼 제가 내린 원두커피 가져올게요.”
사장님 잠깐만요. 저는 안 먹을래요. 그거 마시면 배가 아프거든요.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속에서만 맴돌았고, 그는 내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원두커피 석 잔을 들고 왔는데 나는 커피가 담긴 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맙소사. 그건 테이크아웃 잔이었다.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아, 맞다. 바리스타가 꿈이라고 했지. 그나저나 이건 양이 너무 많은데? 에이, 그래도 가져 왔으니 조금 마시는 척하다 눈치껏 남기면 되겠지. 한 모금을 마시자 그가 어떠냐고 묻는다. 칭찬이 듣고 싶은 것이겠지.

“향이 아주 좋은데요? 커피를 아주 잘 볶으셨네요.”
내가 미쳤나보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다니. 하긴 이 상황에서 누구라도 “저는 커피를 싫어합니다.” 라고 말할 수 없을 거다. 한데 이때부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처음엔 몇 모금 정도만 마시려 했는데 이미 좋다는 말을 해버렸고, 내 옆에 앉은 그는 칭찬을 듣고 싶은 마음에 자꾸 내 커피 잔을 들여다봤다. 오늘은 이걸 다 먹어야할 팔자인가 보다. 이렇게 마음먹은 나는 눈 딱 감고 그걸 홀짝홀짝 다 마셨다.

“커피 향기가 참 좋아요. 아주 맛있는데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목뒤로 넘기며 이렇게 칭찬을 하자 그가 싱글벙글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이게 시작이었다. 식당을 나오면서부터 배가 아프더니 오후 내내 쓰린 배를 부여잡아야 했다. 으이그, 내 몸은 주인을 잘못 만나서 고생이다. 맛있는 버섯전골을 먹으면 뭣하겠는가. 단칼에 거절하지 못한 원두커피 때문에 고생만 했는걸.

사실 거절에 능숙하지 못한 나는 원두커피 사건 외에도 사건이 많다. 아내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생각 없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가 못 받은 적이 있고, 보험 들어 달라고 쫓아다니는 친구를 외면할 수 없어 이미 2개나 들어 있는 암보험을 하나 더 들어주기도 했으며, 원금을 모두 찾을 수 있다는 후배의 말을 듣고 상조 서비스에 가입했다가 그 회사가 인수 합병을 당하며 손해를 본 일도 있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할부 책이나 영어테이프도 거절하지 못해 사들였다.

내가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비난 때문이다. 상대방이 섭섭해 하거나 나를 미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거절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요청한 상대방은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거절을 당했을 때 어떤 느낌인지를 묻는 질문에서 ‘이해한다’고 말한 사람이 65.9퍼센트라고 답했단다. 그렇다면 걱정과 달리 의사표현을 하면 상대방은 오해 없이 받아들이고 모든 것은 아무 일 없이 잘 돌아 간다는 뜻이 아닐까?

결심했다. 무리한 부탁이라는 생각이 들면 확실하게 거절의 의사표현을 하기로. 나중에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중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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