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방송인

나는 젊은이들이 좋다. 생각이 깨어있고 열정이 있는 젊은이들은 더 좋다. 그래서 대학 시간강사 일을 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여러 대학에서 ‘기업윤리’나 ‘국제구매론’ 또는 ‘마케팅’ 등을 강의 했으나 금년에는 대전대학교만 출강했다. 내가 이렇게 결심한 이유는 시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원했던 과목에만 내가 가진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내 수업은 ‘매스컴과 현대사회’라는 교양과목이다. 수업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 된다. 책이나 참고 서적이 필요 없고, 과제물을 제출하지 않으며, 필기도구가 없어도 된다. 모든 수업자료는 강사인 내가 준비하니 학생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에 참여하면 되는 것이다. 수업에 필요한 자료는 최근 언론에 보도 되고 있는 일주일 동안의 신문기사를 뽑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주관적인 것이 아닌 객관적인 사실만을 알려 준다.

말 꺼낸 김에 수업 방식도 이야기 해 볼까. 내 수업은 이렇게 진행된다. ‘5분 스피치’로 가볍게 시작하며, 한주간의 ‘뉴스 브리핑’을 거쳐, 핵심사항을 파고드는 ‘심층고민’까지 파고든다. 5분 스피치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이어지는 뉴스 브리핑에서는 일주일 동안 일어난 일들 중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 사항들을 묶어 소개하는데 이때 ‘전국소식’과 ‘지역소식’으로 나누어서 설명해준다.

내가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지역 언론의 필요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뉴스나 시사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역 언론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매스컴과 현대사회’라는 내 수업에서 지역 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어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지역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를 초청해 ‘지역 언론의 역할’이란 특강도 준비했었다.

지난 학기와 이번학기에는 ‘충청투데이’ 정치부 이한성 기자를 초청했는데, 아, 그는 정말이지 최고의 입담이었다. 지역 언론이 해야 하는 일들을 속 시원하게 말해준 것은 물론 지역 언론이 필요한 이유, 기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기자의 지위(그는 높은 분들보다는 높고, 낮은 분들보다 낮다고 강조한다), 기자가 되는 방법을 에피소드까지 곁들였으니 학생들은 그의 이야기에 매료됐었다.

마지막 시간의 ‘심층고민’은 우리지역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을 다루는데, 그동안 다루어온 주제들을 대략 정리해보면 이렇다. ‘세종시의 탄생과 배경’ ‘정치인과 포플리즘’ ‘대전도시철도 2호선의 운명’ ‘무상급식과 관련된 대전시청과 시 교육청의 줄다리기’ ‘서대전역에서 KTX를 탈수 없는 이유’ ‘정치인과 공약의 비밀’ ‘엑스포 과학 공원자리에는 무엇이 생기나’ ‘과학비즈니스 벨트란 무엇인가’ 등이다.

사실 이런 수업은 오랜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나만의 방식인데, 내가 이런 수업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이 젊은이들이 우리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회현상에 관심을 가져야 우리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 수업은 이런 관심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우리세대가 그랬듯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고 본인의 개인사에 더 고민한다. 이들의 관심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취업, 연애, 그리고 돈 버는 방법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결코 포기할 마음이 없다. 젊은 세대가 지금의 사회현상에 관심이 없다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끊임없이 주장할 거다.

지난 2015년 9월 첫 주, 2학기가 시작 되며 새로운 젊은이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마음이 설랬다. 개강이 되며 벅찬 마음으로 강단에 섰다.

“여러분을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두근거렸습니다. 제 수업은 열정이 있는 분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실제 여러분의 얼굴을 보니 제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 수업은 학문적인 체계가 있는 강의가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보자는 취지로 마련되었습니다. 물 한 방울이 물 컵을 넘치게 하듯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현상에 관심을 가진다면 미래의 우리는 더욱 성숙한 사회에서 살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으며 그런 관심으로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보고 싶습니다.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분들은 아시다시피 제 수업은 토론식 수업입니다. 사회현상 외에도 한 학기 동안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개인적인 생각들을 꺼내볼 겁니다. 우리 모두는 정말 특별하고 귀한 존재들입니다. 자신의 삶을 즐거워해야 하고 행복을 누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각자의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자신의 가치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또 어떤 일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때마다 성의 있는 답변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면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 봐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미국 ‘타임’지는 성공한 사람의 기준을 20세기에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에서 21세기에는 ‘내 맘에 드는 나’ 로 정했습니다. 과거에는 성공의 척도가 타인의 시각이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만족하고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삶의 주체는 나 자신이고 내 인생을 책임지는 사람도 결국 나 자신이란 의미입니다. ‘지금 쉽게 살면 나중에 아쉽게 삽니다.’라는 말은 제 수업의 좌우명입니다. 세월 흐르는 데로 몸을 맡기고 있다가는 한참이 지나서야 뒤처진 모습을 발견하고 그때서야 잡으려면 늦습니다. 나중에 힘든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끝으로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헬 조선’이니, ‘삼포세대’니 하는 현실을 부정하는 반감은 버리십시오. 사회를 비난하는 분노와 부정은 에너지만 소모할 뿐 결코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되지 않습니다. 원시시대 동굴벽화에 적혀있는 ‘요즘 애들 버릇없어’ 라는 말이 지금도 적용되는 것처럼, 취업은 우리 때도 어려웠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 대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마다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현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자세입니다. 청년이 희망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첫 강의에서 학생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나는 결코 이들에게 머리로만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사회에 나가 당당한 사회 구성원이 되는 마음가짐을 알려주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외에도 나는 이번 2학기에는 두 가지 목표를 더 잡았다. 첫 번째는 ‘내 책 출간’이고, 두 번째는 강의 평가에서 교양과목 중 내 수업이 최고 점수를 받는 것이었다. 한데 내 책 출간은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고 강의 평가는 성적이 마감되는 연말에나 발표될 예정이다.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다. 두 가지 모두 최선을 다했기에 적어도 나에게는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나는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강사도 마땅히 가져할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니 절대로 오해가 없으시길.

첫 번째는 ‘정장입기’다. 옷차림을 단정히 하는 것은 나만의 원칙인데 넥타이를 매고 강단에 서면 경거망동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로 인해 학생들에게도 신뢰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뉴스앵커가 그렇지 않은가. 그들이 정장하는 이유는 신뢰 때문이다. 옷을 잘 입는 강사가 아니라 깔끔한 옷차림의 강사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나의 바람이다.

두 번째는 학생들 ‘이름 외우기’다. 교양수업의 특성상 학과는 물론 학년도 제각각 다르다 보니 학생들끼리도 서로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해서 틈날 때 마다 질문을 유도하며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일부러 강의실을 한 바퀴 돌며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는데 그러면 학생들은 수줍어하면서도 좋아한다. 마치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다.

학생들 이름 외우기는 나만의 ‘필살기’가 있는데 방법은 이렇다. 극장에서 좌석을 선택할 때 선호하는 곳이 있는 것처럼, 학생들도 강의실에 들어오면 같은 자리에 앉으려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패턴이다. 나는 이 점을 이용하는데 누가 어느 자리에 앉는지 기억하기 위해 출석부 이름 옆에 나만의 표시를 해둔다. 1~4분단으로 나눈 후 왼쪽 두 번째 분단의 맨 뒤에 앉은 학생은 ‘왼2, 맨 뒤’ 라고 표시하고, 가장 오른쪽 분단의 2번째 줄은 ‘오1, 앞2’ 라고 표시 해둔다. 여기에 학생들의 특징인 미남형, 눈이 큼, 큰 체격, 갈색머리 등을 함께 적어두면 효과 만점이다.

누군가는 “그 짓을 왜 해요? 전자출석부에 사진이 있는데?” 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그 사진은 포토샵이 많고 고등학교 때 사진과 대학교 때 모습이 달라 알아보기가 힘들다. 이번 학기에는 이름 외우기를 위해 특별한 방법도 사용했는데 강의실 좌석배치도까지 그려놓고 이름을 외웠다. 그로인해 이젠 출석부를 보지 않고도 웬만큼 이름 부를 자신도 생겼다.

어느덧 16주가 흐르고 기말고사까지 끝냈다. 이젠 내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성적 평가만 남았다. 상대평가이다 보니 매번 이 시간이 곤욕스럽지만 나는 성적평가에 관한한 확고한 철학이 있다. 투명함과 공정함이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출석을 기본바탕으로 점수를 부여하고 나머지는 수업태도다. 수업시간에 밖으로 나가 들어오지 않거나, 스마트 폰을 계속 만지거나, 엎드려 자는 학생들은 결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기말고사 답안지를 집으로 가져와 채점을 하는데 성적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한 아부 성 짙은 글들이 아닌 솔직한 마음에서 우러난 소감들이 적혀있다.

“교수님이 제 이름을 기억해 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감사합니다.”
“지금 제가 4학년인데 면접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수업을 좀 더 일찍 들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네요.” 
“늘 밝은 미소와 재치 있는 유머로 수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주 특강을 듣는 것처럼 재미있었습니다.”
“후배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수업입니다.”

소감을 보고 있노라니 고맙고 감사하다. 뿌듯하다. 내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이겠지. 그중 어느 여학생의 소감이 내 시선을 확, 잡아끈다.
“앞으로는 무조건 투표할 겁니다.”

나는 지금의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투명할 것이라는 가능성. 지금보다 더 공정할 것이라는 가능성. 그 가능성은 관심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다. 우리의 관심이 지금보다 더욱 많아지면 세상은 분명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고 확신하기에 이시대의 젊은이들을 만나 그들을 훌륭한 사회 구성원으로 키우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다. 정말이지 이런 기회를 갖는 것은 내겐 언제나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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