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수필가 | 전 서산부시장

세상에는 유독 어느 사람이나 특정집단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 지방의회 의원과 관련한 사항도 그 하나인데, 그 가운데서도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는 공무 국외연수 논란이다. 지방의회의원들이 국외연수를 하는 목적은 외국의 선진사례를 비교·연구하고 견문을 넓힘으로써 정책개발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있다지만, 이런 의도와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하여 비판여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이나 공무원들의 국외연수와 해외출장에 대하여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우면서도, 왜 유독 지방의원들의 국외연수를 문제 삼고 손가락질을 하는가?

지방의원들의 국외연수를 비판하는 이유는 대략 서너 가지를 들 수 있다. 이들의 국외연수는 연수가 아니라 관광과 다를 바 없는 프로그램일 뿐만 아니라, 사전에 거친다는 심의위원회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고 있다. 연수를 다녀온 후 제출하여야 하는 보고서는 대체로 부실한데다, 이마저 자신들이 작성하지 않고 공무원이 대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의원 국외연수 전문기관 없고 일정 짧아 여행사 패키지 끼워 넣기

하지만 절차나 형식적인 문제보다도 현실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어려움이 없지 않다. 먼저, 여러 여건상 국외연수를 하려면 제대로 진행해줄 전문연수기관에 의뢰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주위에 그런 기관이 많지 않은데다 설령 적정한 기관을 찾았다 하더라도 이 경우 비용이 많이 든다. 이렇다보니 대부분 관광여행사를 통하여 진행하게 되고, 여행사가 운영하는 일정에 몇 곳의 공공기관 방문을 끼워 넣는 형태로 연수스케줄이 짜여 진다.

아울러 짧은 연수기간에 말은 서툴고 지리에는 어두우며 풍토가 낯선 외국에서 단시일에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뜻한 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이유도 있다. 이렇다 보니, ‘국외연수’라는 명목과는 달리 ‘관광성 외유’라는 비판이 이는 것이다. 물론 연수목적에 맞게 사전에 배워올 것을 준비하고, 다녀와서는 충실한 보고서를 작성하며 연수보고회까지 여는 의원도 없지 않지만, 이런 모범사례는 드문데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충남도의회 서형달 의원은 의원연수단이 호주와 뉴질랜드로 교육기관 연수와 문화체험을 계획하자, 국내에서 미리 자료를 수집하고 경험자의 자문을 받아 이를 검토하는 등 열성적으로 준비하고, 더 많이 습득하겠다는 의욕에서 일행보다 먼저 뉴질랜드로 가서 활동한 다음 나중에 도착한 연수단일행들과 합류했다고 한다.

‘충남도정’신문에 연재한 서 의원의 연수기를 보면서 본인이 작성했음이 틀림없는 보고서와 지방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교육정책에도 반영할 만한 충실하고 건설적인 내용은, 의원국외연수의 모델을 보는듯한 신선함을 느꼈다. 서 의원은 이에 앞서 일본의 다문화국제교류축제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자비를 들여 방문하여 눈길을 끌었던 적이 있다.

연수지 사전답사 후 발품 팔아가며 국외연수 하는 의원들도 있어

대구시의 한 구의원은 지역구가 도시재정비촉진지역으로 선정되자, 다른 한 명의 의원과 함께 일본 오사카와 교토의 재개발현장을 견학하기로 계획하고 담당공무원과 관련단체 등의 도움을 얻어 자료를 준비하고, 한정된 국외여비로는 가이드나 현지통역을 쓸 수 없기에 재일 유학생과 재일동포를 물색하여 도움을 받는 방안을 찾아 해결했다고 한다.

동료 의원과 준비된 자료를 함께 검토하고, 일본에 도착하여 나흘 동안 방문지를 찾아가며 쫓기지 않는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쏠쏠한 재미까지 느꼈다고 한다. 일본 공무원들은 한국에서 찾아 온 지방의원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주었다고 하는데, 아마 이들의 열정적 활동을 보면서 받은 느낌에다 그들의 친절마인드가 더해진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는 의원 국외연수를 종전 회수(回數)제의 불합리를 개선하고자, 적정 소수인원으로 연수단을 편성하고 필요할 때마다 단기간 일정으로 외국에 나가 자료수집과 현장방문 등 필요한 사항을 연수토록 하기 위한 경비(經費)한도제로 전환한 취지에 부합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짜임새 있는 계획과 내실 있는 연수, 사후관리 전제되어야

그러나 두 의원의 사례와는 달리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고 있으니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국외연수라는 목적을 망각하는 부류가 적지 않은데, 유독 지방의원들의 연수를 비난하는 것에 대하여 ‘왜, 우리만 가지고 그래’라는 푸념이 있을 수 있다. 이는 ‘평범한 이웃’이 의원이 되어 활동하는 상황들이 모두 노출되는데다, 지방자치나 지방의회의 모습이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의 본질이나 필요성을 생각해볼 이유가 있다.  지방의원들의 국외연수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라, 한 번 쯤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뜻이다. 기존 자료에서도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최신의 자료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굳이 외국에 나가야만 하는가 하는 점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가 된다.

자료를 훑어보아 얻는 것이 저비용에 효율적이라 하더라도, 직접 여행을 통하여 보고 듣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고, 여행하면서 그 나라의 문물과 문화를 체험하는 것도 유·무형의 소득이다.
여행이 그렇고, 국외연수가 그럴진대 꼭 지방의원들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겨눈다는 것은 야박한 면이 없지 않다.

등태소천(登泰小天)이라는 말이 있다. ‘동산(東山)에 올라보니 노나라가 작다는 것을 알고, 태산(泰山)에 올라보니 천하가 작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하물며 글로벌 시대에 시야를 넓히고 견문을 확대하기 위해 국외연수는 꼭 필요하다. 다만, 의원들 스스로 보다 짜임새 있는 계획과 내실 있는 연수, 사후관리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지방의원 국외연수를 좀 느긋하게 지켜보고 기다려 줄 아량도 필요하다. 그런 때가 반드시 올 것으로 믿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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