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힐링고전] <235>

옛날에는 각 고을을 다스리던 군수나 현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그 고을 사람들은 이른바 선정비(善政碑)라는 것을 세워주었다. 선정비(善政碑)는 글자 그대로 수령이 재임 중 베푼 선정(善政)에 감사하고 오랫동안 기리기 위해 그 고을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세워주는 송덕비(頌德碑)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선정비가 오히려 일부 탐관오리(貪官汚吏)수령들이 자신의 가렴주구(苛斂誅求) 학정(虐政)을 선정(善政)으로 둔갑시키는 홍보비(弘報碑)로 악용한 것이다. 심지어 선정비를 세우는 비용과 노력을 반강제적으로 고을 백성들에게 부담시킨 것이다. 이러한 날조된 선정비를 욕한 야유시가 있다.

▴ 조선시대 중기의 시인인 권필(1569~1612)의 충주석(忠州石)이라는 시다.

충주에서 나오는‘충주석’(忠州石)은 석질이 좋아 비석으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함께 감상해 보기로 한다.

충주의 미석은 곱기가 유리 같아서 천 사람이 쪼개내어 만 마리 소로 옮기네. 묻건대, 이 돌을 어디로 가져가는가? 가져다가 세도가의 신도비(神道碑)를 만든다네. 신도비의 비문은 누가 짓는가? 필력도 굳세고 문장도 기이하도다.

비석에 써 있기를 공(公)이 살아 계실 때는 타고난 재질과 학업이 범상치 않았고 임금을 섬김에 충성스럽고 강직했으며, 집안에서는 효성스럽고 자애로웠네. 문 앞에는 청렴하여 뇌물의 드림도 없었고, 곳간에는 재물이 텅 비었다네. 공(公)의 말은 능히 세상의 법도가 되었고 행실은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되었네,

평생 벼슬길에 나가거나 물러남에 있어서 하나도 합당하지 않은 것이 없었네. 그래서 公의 공적을 이 돌에 새겨서 길이길이 빛나게 하려는 것이라네.이 말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남이 알거나 모르거나 충주산에 있는 유리 같은 돌들은 날마다 쪼개어져 이제 남은게 없도다.

하늘이 단단한 돌덩이를 만들 때 입을 안주었기에 다행이지 행여 입을 주었던들 응당 그 이름 새김을 마다하였으리라.

위의 시(詩)에서 말한 것처럼 명예욕에 눈먼 일부 세도가나 지방 수령들은 당대 최고의 문인에게 부탁하여 최고의 명문으로 자신의 업적을 미화시키거나 예찬하게 했다. 그래서 권필은 이 시(詩)의 마지막 구절에 돌이 입이 없기에 망정이지 입이 있었다면 내 얼굴에 왜 이런 거짓말만 쓰냐고 항변 했으리라는 구절은 참으로 걸쭉한 시인의 야유가 아닐 수 없다.

▴ 자신의 공덕을 비석에 새긴 선정비나 신도비와는 달리 공덕을 일체 새기지 않은 비문 없는 비석인 백비(白碑)가 있다.

조선 중기 때 문신(文臣) 박수량은 지금의 서울시장격인 ‘한성판윤’을 지내는 등 38년 관직생활에서 재산이라곤 비새는 초가삼간뿐일 정도로 청렴한 관리였다. 또한 부정을 저지른 동생을 관직에서 물러나게 할 정도로 결백한 관리였다.

임금은 그의 청렴결백한 성품에 감탄하여 큰 기와집을 지어 주도록 하고‘청백당’이라는 집의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박수량이 죽음을 앞두고 자손들에게 ‘내가 죽거든 고향땅에 묻되 무덤을 크게 만들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마라.’하였다.

박수량의 살림살이가 어려워 고향으로 운구할 비용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임금은 장례비용을 나라에서 부담하도록 하고 그의 묘에 비석을 세우되 비문은 새기지 말도록 했다. 왜냐하면 천하의 사람들이 박수량이 청렴결백한 관리임을 다 알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그의 행적을 쓸 필요가 있겠느냐하는 것이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 있는 박수량의 백비(白碑)는‘ 전남 기념물 제 198호’로 지정되어 널리 기려지고 있다.

▴‘길가는 행인의 입이 비석보다 나은 것이다.’

자신의 행적을 세상 사람들에게 들어내 보이기 위해 과장과 위선으로 포장된 송덕비는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곤 한다. 진실로 참된 공덕은 화려한 비석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입을 통해 후세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청백리 박수량의 묘에는 비문 없는 초라한 백비(白碑)가 세워져 있지만 그의 행적은 입으로 전해져 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세상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래서 ‘대명기유 전완석(大名豈有 鐫頑石) 노상행인 구승비(路上行人 口勝碑)’ 즉 ‘큰 공덕을 어찌 딱딱한 비석에 새길 수 있겠는가, 길가는 행인의 입이 비석보다 나으니라.’하였다.

▴ 국민을 위한 정치는 드러내려하지 않아도 국민은 다 알게 됨이다.

공(功)을 세우기 위한 치적(治積)행정, 보이기 위한 전시 행정, 임기 내 자신의 치적을 이루기 위한 졸속행정, 이 모두는 자신의 행적을 비석에 화려하게 포장하여 드러내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국민을 위한 진실한 행정이나 정치는 박수량의 백비처럼 드러내려하지 않아도 언젠가 국민은 그 진실을 알게 됨이 아니겠는가.

▴ 그렇다. 명성 자체를 얻으려 하지 말라. 공덕을 쌓음으로써 그 명성이 따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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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충남 강사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堂)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 대전시민대학,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 대전 KBS 1TV 아침마당 "스타 강사 3인방"에 출연

김충남의 강의 일정

⚫ 대전시민대학 (옛 충남도청)
- (평일반)
A반 (매주 화요일 14시 ~ 16시) 논어 + 명심보감
B반 (매주 목요일 14시 ~ 16시) 대학 + 채근담

- (토요반)
C반 (매주 토요일 14시 ~ 16시) 논어 + 명심보감

⚫ 인문학교육연구소
(매주 월, 수 10시 ~ 12시)

⚫ 서구문화원 (매주 금 10시 ~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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