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지방자치와 중앙정치가 다른 점

김학용 주필
지방자치가 부활된 지 20년이다. 10월 29일은 지방자치의 날이었다. 세종시에선 지방자치박람회가 열렸고, 시민단체도 관련 세미나를 열었다. 지방자치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법을 바꾸고 지방분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필자도 그동안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기사를 꽤 써왔다. 중앙이 모두 장악하고 있는 권력을 지방으로 이전해야 지방자치가 제대로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분권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지방분권 이뤄도 지방자치 잘 된다는 보장 없는 이유

지방분권에는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현재로선 중앙 권한을 넘겨받아도 지방자치가 잘 된다는 보장이 없다. 지금의 지방자치는 자치단체장(長)에 의한, 단체장을 위한, 단체장의 자치에 가깝다. 지방자치가 아니라 ‘지방장치(地方長治)’다. 시·도 광역단체나 시·군·구 기초단체도 마찬가지다. 자치단체장 혼자 지역에서 왕 노릇 하는 지방행정이다.

지방자치는 그야말로 주민이 주인이어야 하는데 주민 참여는 고사하고, 주민들은 지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방권력에 대한 외부 감시, 특히 언론의 감시 기능이 약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재 지방자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견제와 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 환경이 악화되면서 지방자치단체장은 갑(甲)이 되고 언론은 을(乙)의 신세가 되어 있다. 감시기능의 마지막 보루였던 시민단체마저 단체장 품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과거 관선(官選) 단체장 시절에는 청와대와 내무부 등 ‘상부’의 감독도 먹혔지만 지금은 그것도 없어지고 있다. 지방에 대한 감사원 감사도 예전에 비하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시·도(市道)는 정부 감사를 무서워하지 않고, 시·군·구는 시·도 감사를 우습게 여긴다.

지방의회가 자치단체장을 견제 감독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데, 지방의원들이 집행부 즉 시도지사와 시장 군수 구청장 손아귀에서 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으면 단체장과 극단적 갈등으로 허송하면서 지방자치가 주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 이승종 교수의 설문조사 결과는 지방자치가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 이승종 교수가 지방자치의 성과를 주민들에게 물어봤다. 지방자치가 지역발전에 기여했느냐는 물음에 ‘아니다(35.7%)’는 반응이 ‘그렇다(33.5%)’는 응답보다 많았다. 자치단체장이 주민의 뜻을 잘 반영해왔느냐는 질문에는 부정적 평가(40.6%)가 긍정적 평가(21.7%)의 2배나 됐다. 지방자치가 실패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방자치에는 없고 중앙정치에는 있는 언론 감시

질문의 주제를 ‘지방자치’가 아니라 ‘중앙정치’로 바꿔서 물어보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비슷한 답변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중앙과 지방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중앙정치에는 그래도 언론의 역할이 있다는 점이다. 보수세력이 권력을 잡으면 진보적 성향의 언론이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진보세력이 집권하면 보수성향의 언론들이 더 각을 세운다.

이런 구조 때문에 국민들은 나라꼴이 엉망인 경우에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략 알게 된다. 정책이 실망스러워도 정부가 무슨 문제로 고민하는지, 무엇을 왜 숨기려하는지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4대강사업에 반대하던 국민들도 그 사업의 과정과 문제점을 알 수 있었다.

지방은 그저 깜깜할 뿐이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주민들은 더 모른다. 대전시가, 과거 시민단체가 몸으로 막아낸 도솔산 도로(갑천우안도로)를, 도시계획을 바꿔 몰래 되살려 놓았는 데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런 황당한 일은 관선시장 시절에도 어려웠던 일이다.
 
지방 업무까지 중앙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싫어 지방 일은 그 지역 주민들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자는 게 지방자치다. 그런데 지금 주민들은 자기 지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장 혼자 하는 독불장군식으로 하는 자치로 가고 있다.

자치단체장, 임기 보장에 견제 감시 없어 ‘왕 노릇’

지방행정의 실질적 ‘주인공’은 자치단체장이다. 시·도지사든 시장 군수 구청장이든 일단 당선되면 4년 임기가 보장된다. 당선 무효형의 범죄가 드러나지 않는 한, 쫓겨날 걱정은 없다. 웬만한 부정부패는 공무원 책임에만 그칠 뿐 단체장에겐 별 영향이 없다. 단체장은 맘 놓고 권한을 휘두른다. 행정의 안정성은 장점이지만 지금은 부작용이 더 커보인다. 

자치단체장의 가장 큰 걱정은 다음 선거다. 재선되거나 더 좋은 자리에 도전해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최대 목표는 다음 선거 당선이란 말이 있다. 시장 군수 구청장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적을 내서 주민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많은 단체장들은 일보다는 이미지로만 점수를 따려고 한다. 이를 위해선 언론을 장악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해졌다.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언론의 최대 스폰서로 부상하면서 단체장은 언론의 ‘갑’이 되었다. 그 결과 지방은 과거 관선단체장 때보다도 더 어두운 세상이 되어 있다.

단체장들이 크게 신경 쓰는 또 한 가지는 조직 관리다. 다음 선거에 이기려면 끊임없이 조직을 관리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예비)경쟁자의 사람들을 끌어와야 한다. 근래 서구의회에서 조례 한 건 때문에 구의원끼리 몸싸움까지 벌어진 사건도 산하단체에 대한 여야의 조직 쟁탈전 성격이 짙다.

10월 29일 세종시에서 열린 지방자치박람회 지방자치 20년 대토론회. 그간의 성과는 물론 미래 전망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들이 훨씬 많았다.

공무원들도 때론 일보다는 이런 조직 싸움 때문에 더 피곤하다. 과거에도 ‘처신’은 중요했지만 그래도 일을 열심히 하면 승진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일보다 ‘정치’를 잘해야 승진할 수 있다. 임기가 길게는 12년까지 갈 수도 있는 인사권자에게 찍힌다면 그 공무원의 인생엔 미래가 없다. 이런 조직이 얼마나 비생산적일지는 뻔하다.

감시와 견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은 썩고 병들게 돼 있다. 지금 우리의 지방자치는 그런 상태다. 단체장에게만 좋은 지방자치다. 세종시에서 열린 지방자치토론회에선 우리나라 지방자치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훨씬 많았다. 미래에 대한 전망도 어두웠다.

지방권력 독점 막을 수 있는 방법 찾아야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2할자치’라는 평가를 받는다. 중앙정부가 여전히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전체 세금의 80%를 중앙(국세)에서 걷고 나머지 20%만 지방(지방세)에서 걷는다. 그렇지만 지출은 60%가 지방에서 이뤄지고 있다. 40%는 지방이 중앙에서 타 쓰는 돈이다.

돈주머니를 쥐고 있는 중앙은 이 40%를 가지고 지방을 흔들어대며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그동안 중앙은 지방에 대한 ‘관리 방법’을 더 다양화하면서 지방분권은 오히려 역주행을 거듭해왔다. 지방분권주의자들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문제다.

프랑스처럼 지방분권을 명시하여 헌법개정을 하자는 주장도 많이 나온다. 그러나 지금처럼 자치단체장에게만 좋은 ‘지방장치’의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지방분권의 강화는 강도나 철부지에게 더 큰 칼을 쥐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지방분권 노력과 함께 단체장의 지방권력 독점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방자치의 미래는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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