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방송인

“이젠 너희들끼리 해라.”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있다. 6명이 의기투합해 모임을 만들었고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항상 늦게 나오는 두 명(둘 다 같은 일을 한다) 때문에 모두가 불편하다. 30분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한 시간이나 늦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한다 는 건 정말이지 고역이다. 식사를 먼저 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고. 먼저 먹고 있으면 되겠지만 그게 어디 그런가. 밥을 다 먹으면 그때야 도착하니 갈수도 없고 안갈 수도 없고 난감하다.

생계 때문에 그러는 건 이해하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가능하다는 생각도 해봤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게 뭐란 말인가? 한 달에 한번 하는 모임에 시간을 맞추기가 그렇게 힘들단 말인가?

매번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내가 제안을 했다. 30분 늦춰 만나보자고. 그럼 늦게 오는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시간을 늦춰도 두 명의 친구들은 그 시간만큼 늦었다. 이쯤 되면 습관적이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것은 우릴 그렇게 기다리게 해놓고도 변명이나 사과 한마디 없었다. 늦게 와도 친구들이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 하는가 보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 잡는 것은 당연한 일. 친구니까 말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내가 좋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매번 너희들 때문에 불편해 하잖아.”

그러자 한 친구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늦게 온 친구다.

“그건 아는데, 우리 같이 인테리어 일을 하는 사람들은 현장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어.”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성의만 있다면 가능한 일 아닐까?

“그럼 모임 날 총무에게 전화해서 끝나는 시간이라도 알려주면 어떻겠니? 거기에 맞춰 우리도 식사를 하면 되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하자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녀석이 벌컥 화를 낸다.

“야, 친구가 그 정도도 이해 못 해주냐. 우리는 언제 끝날지 장담을 못한다고 했잖아. 현장 소장이 끝내라고 하면 그때 끝내는 거야. 알았어? 그리고 밥은 먼저 먹으면 되잖아. 우리가 언제 너희들에게 기다려 달라고 했냐?”

아니, 이 녀석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1년 동안이나 꾹 참았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다른 친구들이 말릴 틈도 없이 “이 모임 이젠 너희들끼리 해라.” 라는 말을 남기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이후 총무에게 전화도 왔었지만 참석하지 않았다. 내가 속이 좁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본도 갖추어지지 않은 친구들이라면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서운할 것도 없다.

인생을 살다보면 성격 때문에, 돈 때문에, 혹은 상처와 배신 때문에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이 생긴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연락을 단절하거나 마주치더라도 곧 자리를 피해버린다. 싫은 사람은 보지 않으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마음이 편해서다.

고 3때 일이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30분이 걸렸다. 그때 학교를 같이 다니던 같은 동네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서 우린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과 마주친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며 한껏 폼을 잡고 있었다.

나는 낯선 아이들이었지만 함께 있던 친구는 그들이 우리학교 2학년이라고 말한다. 그럼 우리보다 1년 후배가 아닌가. 순간 남의 동네에서 담배를 피우는 녀석들이 못마땅해 나도 모르게 객기가 발동했다.

“야, 너희들 이리 와봐. 우리 알지? 선배를 봤으면 인사를 해야 할 거 아냐. 어쭈, 빨리 담배 안 꺼?”

처음부터 겁을 주면 재빨리 담배를 끄고 고개를 숙여 인사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녀석들은 콧방귀를 뀐다.

“선배는 무슨 선배라고. 알았으니까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가세요.”

나도 그쯤에서 멈추면 좋았을 것을. 결국 화를 자초하고야 만다.

“이 녀석들이 어디서 선배에게 까불어…….”

순간적인 화 때문이었을까. 아님 젊은 날의 허세 때문이었을까. 살짝 겁만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앉아 있는 한 녀석의 가슴팍을 발로 밀어 버렸다. 공격을 당한 녀석이 어이쿠, 하며 뒤로 발랑 넘어진다. 그 순간, 전혀 예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진다. 함께 있던 다른 두 녀석이 내게 전광석화처럼 달려들었고, 순식간에 나는 그들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아야 했다. 이윽고 넘어졌던 녀석도 합세하니 나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그들을 당할 수가 없다.

한데 친구가 이런 상황이면 함께 있던 동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함께 싸워주든 말려주든 그도 안 되면 동네방네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하지 않을까? 만약 나라면 그랬을 거다.

그런데 이 녀석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맞고 있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 좀 도와 줘.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 말이 입속에서만 뱅뱅 맴 돌았다.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던 나는 결국 36계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최선이었다.

한참을 달려 정신을 차려보니 아차, 책가방이 없다. 그곳에 놓고 온 거다. 하긴 그 상황에서 책가방 챙길 정신은 없었을 거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그 장소에 가보았으나 내 책가방은 없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내 친구가 챙겨줬겠지…….

다음날 아침, 학교에 도착한 나는 옆 반 친구인 그 녀석을 찾아갔다.

“너 어제 거기에서 내 책가방 챙겼지?”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놀랍다.

“아니, 못 봤는데? 거기다 가방놓고 갔니? 나도 네가 떠나고 얼른 그 자리를 피했는데…….”

아, 정말 의리 없는 녀석이다. 배신감이 들었다. 그가 야속하고 꼴 보기 싫었다. 머리로는 이해하려 하는데도 가슴으로는 용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이란 참 신기한 동물이라 넥타이에 떨어진 김치찌개 한 방울을 발견하면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그곳에만 시선이 가는 것처럼 미움도 마찬가지다. 녀석이 한번 미워지기 시작하니 끝도 없이 미워졌다.

결국 그 후 나는 그 친구를 멀리했다. 학교나 동네에서 얼굴을 마주쳐도 절대로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녀석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꼴 보기 싫은 인간이 있다면 결국 안보면 된다. 하지만 우리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살다보면 꼴 보기 싫은 인간일지라도 자주 마주쳐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직장에서도, 모임에서도, 조직에서도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고통이고 비극이다. 그때마다 그 인간을 피할 텐가? 그럼 내 경우를 들어 보시길…….

오랜 된 모임이 있다. 이 모임에 내가 아주 싫어하는 인간이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거리가 멀어진 사람이다. 최근에는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 이 모임에 꽤 오랫동안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회장님이 직접 전화를 했다. 왜 안 나오느냐고. 회장님 전화까지 받았으니 안 나갈 수 없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그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문을 열고 불쑥 들어온다. 아,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좋았던 기분이 완전 잡쳐버렸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사람들에게 악수를 하더니 내게도 손을 불쑥 내민다. 생각 같아선 그 손을 탁, 쳐내고 싶지만 그것은 마음뿐. 이미 내 손은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는 내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른다. 그는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며 왼손으로 악수하는 내 손을 어루만진다. 마치 아주 반갑다는 듯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액션이다. 어색한 우리 둘 사이를 뻔히 아는데 웬 친한 척이란 말인가. 이뿐만이 아니었다. 악수를 하며 허리를 뒤로 살짝 제겼다가 앞으로 튕기며 과장된 몸짓으로 말을 꺼낸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왜 그동안 연락도 없었어?”

오버도 이런 오버가 없다. 미워하는 마음이 이젠 무뎌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의 면상을 보니 진저리가 쳐진다. 순간 밑바닥에 잠자고 있던 분노가 다시 올라온다. 입술을 꽉 깨물며 참으려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다. 통제가 되지 않아 나도 모르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밥도 먹지 않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로.

집에 돌아와서도 화가 풀리지 않아 투우장의 소처럼 씩씩거렸다. ‘우씨, 친하지 않은데 왜 친한 척이야.’

다음 날, 같은 모임의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내가 보이지 않아 궁금했나 보다. 말도 없이 나왔으니 당연하겠지.

“너, 어제 왜 말도 없이 그냥 갔냐?”

“미안해요. 그 사람 때문에 그냥 왔어요. 그 사람 얼굴을 보고 있으면 힘들 것 같아서요.”

선배는 내 마음을 아는지 이렇게 말한다.

“네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피하기는 왜 피해? 그럴수록 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어야지…….”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다. 그래,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왜 이유도 없이 자리를 피한단 말인가. 너무나 마땅하고 옳은 말이다. 그 인간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인연을 포기한다면 나는 머저리다. 게다가 그 회원들은 내게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지 않은가?

인간관계가 이 정도 힘들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다. 앞으로는 더 큰 고통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럴 때마다 피하고 도망간다면 그건 결국 내 손해일 뿐이다.

그래서 다짐했다. 앞으로는 꼴 보기 싫은 인간과 얼굴을 마주치는 상황이 오더라도 바보처럼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상대의 눈길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더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을 거라고.

자, 다시 정리해 보자. 못된 인간들은 어느 조직에든 존재하고 그들을 볼 때 마다 내 마음이 상하고 힘도 빠진다. 하지만 그들을 계속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내 정답은 이거다. ‘절대 피하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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