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창호의 허튼소리] 전 부여군 부군수

한 때 관광코스로 유명했던 남해대교는 경남의 하동군과 남해군을 잇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현수교이다. 임진왜란 때 이 순신 장군이 최후의 격전을 벌였던 노량바다를 가로지르고 있다. 하동군의 구 노량 해안 마을은 이 부근에 있다.

문득 지난 해 이즈음 여행 겸 피서를 떠나 이 마을에서 하루를 묵었던 일이 생각난다. 아침에 해안도로를 따라 산책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 집집마다 대문이 없었다. 마침 멸치를 널고 있는 마을 어른께 여쭤보니 “대문을 달면 바다에서 올라오는 게들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해 집이 망한다”고 했다. 마을에 전해 오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대문이 없으니 집안 드나들기에 편할지는 모르지만 불편함도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장기간 집을 비울 때나 늦은 밤에 도둑은 들지 않을까, 뱀 같은 흉한 것은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대지 경계선을 따라 담장을 쌓거나 울타리를 하고 그 한 부분을 틔워 집 안팎을 드나들게 한 것이 대문이다. 대부분 낮 동안은 열고 밤이 늦으면 닫는다. 옛날 시골에서는 대문 대신 싸리문을 달기도 했었다. 대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오래전에 일본에 갔었던 일이 불현 듯 떠오른다. 일본의 대문은 우리나라 대문과 달리 안에서 밖으로 여는 구조였던 것이다.

필자는 그 때가 충남도에 근무할 때로 구마모도 현에 파견된 충남도 파견 공무원의 관사에서 하룻밤을 묵었었는데, 그 집의 대문도 밖으로 열게 돼 있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대문을 달고 살던 집은 사무라이(武士) 계급 이상이었는데, 싸울 때 대문을 박차고 나갈 수 있어 유리했다”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반면, 우리나라의 대문은 밖에 나갔다가 안으로 들어오는 안도감을 느끼고, 손님을 맞을 때에도 정성껏 맞아들인다는 정이 깃든 구조가 아닌가 한다.

건축물에서 대문 역할을 하는 것은 현관문이다. 규모가 매우 큰 건물의 현관은 회전문이 달려 있기도 하고, 어떤 건물은 밀거나 당겨 여닫는 편리한 문이 달려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물 문은 밖에서 당겨 열고 안에서는 밀어 여는 구조로 되어 있다. 건물 내에 여러 점포가 있는 경우도 출입문은 대부분 밖에서 당기고 안에서 밀게 되어 있다. 어찌 보면 이는 일본식 대문 구조와 같다. 긴급 상황에서 밖으로 탈출하기 용이한 구조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비상구의 문은 안에서 밖으로 열도록 소방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사람이 평상시에는 이성대로 행동하지만 비상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건물에 화재가 나면 사람들이 비상구를 따라 탈출을 시도하는 데, 모두 빨리 나가려는 급한 마음에 문을 밀고 나가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겨 여는 문일 경우는 밀려든 사람들 때문에 문 여는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탈출하지 못하게 되고, 이 때 유독 가스를 마시게 되면 그 자리에서 모두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출입문의 여닫는 방향에 따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건물 내의 점포나 사무실 등은 출입문을 아예 안팎으로 열 수 있도록 하거나, 안에서 밖으로 열게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시중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갈 때마다 출입문의 여닫이 구조가 정 반대로 돼 있어 불편함을 느낀다. 일을 보고 밖으로 나올 때 무의식적으로 밀고 나오려다 문이 열리지 않는 불편을 겪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어느 때는 필자만 그런가 하고 번호표를 뽑아 순서를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행태를 살펴보니 그들도 대다수가 똑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금융기관이 이 같은 출입문 구조를 갖춘 배경을 추측해 보면, 강도가 드는 비상시에 범인의 도주 시간을 단축해 이를 잡고자 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는 이미 낡은 사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을 밀었다가 다시 당겨서 여는 시간차는 불과 2초 정도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그 짧은 시간을 지체시켜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함을 얼마 전의 서울 서초구 잠원동 마을금고 권총(나중에 장난감으로 밝혀짐)강도 사건이 잘 말해주고 있다. 불과 2분만에 털고 도주했다는 것 아닌가.

대부분의 범인 검거는 CCTV 검색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서초구의 범인 검거도 CCTV 검색을 통해 이루어졌다 한다. 이제 금융기관들도 출입문 구조를 고객 편의 위주로 바꾸면 어떨까 한다. 시중 은행뿐 아니라 농협. 축협. 수협 등 여러 조합과 우체국. 보험회사 ,신용금고, 마을금고 등 현금을 취급하는 기관들의 본점, 지점, 출장소 등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겠는가. 이들이 문을 밖으로 밀어 여는 형태로 바꾸어만 주어도 수 많은 고객들이 편리함과 안전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혹여 출입문에 붙여 놓은 ‘당기시오’라거나 ‘미시오’라는 문구대로 행동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습관은 평소 하던 대로 행동하기 일쑤다. 이제 사람들 방식에 따라 사람들을 편하게 할 때도 됐지 않나 생각된다. 물론 이는 필자의 허튼소리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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