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모르는 고통
한글을 모르는 고통
  • 김학용 주필
  • 승인 2015.01.2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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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용 칼럼] 2월2일 개학이 두려운 대전 장애인야학 학생들

김학용 주필

53세 주부 이경희 씨(대전시 판암동)는 세종이 누군지 이순신이 누군지 몰랐다. 불과 몇 년 전까지 그랬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아는 위인조차 그는 알 수 없었다. 초등학교도 가 본 적이 없는 탓이다. 이씨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렇게 살았다.

나는 이 씨 같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가끔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볼 때마다 버스 타는 데 불편이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만 여겼다. 답답함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선 더 생각해보지 않았다.

한글조차 배우지 못한 것 빼고는 멀쩡한 시민이 대한민국에 살면서 세종과 이순신조차 모르고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선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이 씨가 그 고통의 일부를 전해주었다.

TV 드라마도 두려운 문맹의 고통

이씨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으면서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 초등학교도 가보지 못했다. 이후에도 별도로 한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TV자막을 읽지 못했다. 문맹의 고통은 쉰 살이 다 돼 가도록 그녀를 괴롭혔다.

유명한 역사 인물이 주인공인 TV 드라마를 가족들과 함께 보는 건 고통이었다. “드라마를 볼 때 가족들 표정을 보면 세종이 유명한 사람 같기는 한데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나오는 인물들을 전부 모르기 때문에 가족에게조차 물어보는 게 힘들었어요.”

가족에게조차 주눅들 수밖에 없었다. 제사 같은 집안 일로 여러 가족들이 모일 때면 이 씨는 더 위축됐다. 그러니 집 밖에 나가 다른 사람과 어울린다는 것은 꿈도 못 꿨다. 바깥세상이 두려웠다.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자신을 빼낸 한글 공부

지금 보면 집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몸의 장애’보다는 한글조차 배우지 못해 얻게 된 ‘마음의 장애’가 스스로를 집에 가두었다. 이 씨가 복지관에 한 번 나가보라는 지인의 말에 용기를 내면서 그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복지관에 나가면서 장애인 야학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거기서 세종도 이순신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학교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까지 마치고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장애인 야간학교 수업 장면, 학비는 무료지만 일선 교사들이 정규학교처럼 가르치고 있다.

전에는 은행에도 시장에도 혼자 갈 수 없었다. 혼자 일을 보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슈퍼에 갈 때 듣게 되는 ‘리터(L)’라는 뜻도 궁금했으나 누구한테도 묻지 못했다. 이젠 달라졌다. 작년 말에는 일본 여행을 위해 필요한 여권을 혼자 만들었다. 관청에서 가서 한글은 물론이고 영어와 한문까지 자신의 손으로 또박또박 적어 넣었다. “내가 내 여권을 만들 수 있다니!” 너무 기뻐 야학 선생님들에게 여권을 가지고 가 자랑했다.이씨는 역사 공부가 재미있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서 역사 드라마가 그에게도 취미가 되었다. “옛날 같으면 남들과 얘기할 때 자꾸 고개를 숙였지만 이젠 대화에 끼어들기도 합니다.”

못한 공부의 한을 푸는 ‘젊은 할머니’

늦깎이 공부를 하면서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천지개벽만큼이나 달라졌다. 지금도 한창 달라지는 중이다. TV를 볼 때도, 지하철 안에서도, 길을 지날 때도 알 수 없는 기호로 가득하던 세상이 그의 눈 속으로 시원하게 빨려 들어오고 있다. 그녀에게 공부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이런 기쁨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또 있다. 손녀를 둔 ‘젊은 할머니’ K씨(66)도 작년부터 어려서 못한 공부의 한을 풀고 있다. 그녀는 초등학교만 나왔다. 대학교까지 다닌 오빠 동생들과 다른 운명의 길이었다. 집안의 어려움 때문이었지만 못한 공부는 한으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공부를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자서전까지 냈다.

K씨는 영어를 배워 손녀에게 구연동화를 들려주는 게 꿈이고, 이씨는 대학에 진학해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돕는 게 소원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들의 꿈이 꺾일 수도 있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이 공부하는 학교에 어려운 일이 생겼다. 옛 서구청 별관을 빌려 쓰고 있는 ‘모두사랑 장애인야간학교(교장 오용균)’다. 이 씨, K씨와 사정이 비슷한 48명이 공부하고 있다.

이 학교는 교실로 쓰는 건물을 비워줘야 할 상황이지만 아직 대책이 없다. 돈 때문이다. 이 건물의 소유주인 대전시교육청이 건물 부지를 매각하는 작업을 추진하면서 건물 철거를 계획 중이다. 오는 3월 말까지는 건물을 비워달라는 게 교육청의 요구다.

구 서구청 별관 건물에 들어 있는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 3월말까지 건물을 비워줘야 할 상황인데 갈 곳이 없다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이경희씨와 동료들

학교에선 교육청이 이사 비용의 일부를 지원해주길 원하고 있다. 건물 임대 보증금으로 1억5000만 원 정도 도와주면 교실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돈을 달라는 건 아니고, 보증만 서달라는 요청이다.

시교육청은 난색을 표한다고 한다. 이 학교가 청소년교육시설이 아닌 데다 법인이 아니라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교육청의 지원이 불가능한 학교는 아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서울 대구 부산 인천 부산 울산 등의 장애인 야학에 대해 그 지역 교육청에서 5천~1억5천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대전도 전임 김신호 교육감은 지원을 약속했었다.

전국의 장애인야학 가운데 대전은 교육의 질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교사 전원이 일선 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교사들이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학생들도 보조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연간 운영비 1억5천만 원 가운데 시교육청 보조금 2800만원을 제외한 부분은 회원들이 월 1만~2만원씩 내는 회비로 충당되고 있다. 이 학교 교사들은 무료봉사에 회비까지 내고 있다.

학교가 끝내 새 교실을 찾지 못하면 학생들은 갈 곳이 없다. 이와 비슷한 교육기관은 사설 학원도 공공기관도 없다. 이 학교가 문을 닫을 수 없는 절박한 이유다. 어려움 속에서도 2000년 개교 이후 지금까지 운영돼오고 있는 이유일 수도 있다.

이 학교는 지금도 이씨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문맹의 인생 감옥’에서 홀로 고통을 겪다가 소문을 듣고 찾아오고 있다. 남들처럼 못 배운 게 한으로 남았으나 마땅히 찾아갈 곳이 없는 장애인이나 어르신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는 학교다.

학생들은 2월2일 개학을 앞두고 설렘보다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학교가 없어질 거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맘을 졸이고 있다. 시교육청이 그들의 걱정을 하루속히 덜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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