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가 내각 대신하는 정부
‘문고리’가 내각 대신하는 정부
  • 김학용 주필
  • 승인 2015.01.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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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용 칼럼]인정받지 못하면 더 독선적인 박근혜 대통령

작년 여름 지역의 한 모임에서 한 원로 인사는 “박 대통령은 응원을 받으면 정말 잘하는 사람이지만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더욱 독선에 빠질 사람”이라고 했다. 세월호 사고 후 지지율이 한창 떨어질 때이니 더 독선적으로 갈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보는 근거를 질문했더니 박 대통령의 어린 시절 불안했던 가정사를 들었다.

“인정받지 못하면 더 독선에 빠지는 대통령”

김학용 주필

요즘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 원로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예측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이른바 정윤회 사건이 터지면서 대통령 지지율은 30%대까지 떨어졌다. 취임 이후 최저다. 신년회견은 그런 상황에 처한 대통령의 독선이 확연히 드러난 자리였다.

신년회견은 대통령이 새해 계획을 국민들에게 보고하는 자리다. 대통령이 자신에게 유일한 ‘갑’인 국민들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성의있는 자세로 임해야 옳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민과 맞서는 듯한 태도로까지 비쳐졌다. 껄끄러운 질문에는 쏘아붙이듯했다. 신년인사 때부터 국민은 대통령의 ‘을’이었다.

대통령의 이런 태도가 여론을 악화시키고, 이는 다시 독선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 정부는 ‘독선→여론 악화→독선 심화..’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와 총리교체 실패 등을 거치면서 점차 이런 과정을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 건에 이르러서는 대통령이 평상심까지 잃은 듯한 모습이다.

단호한 어투에서 드러나는 대통령의 위기감

신년회견에서 보인 독선적 태도에서 나는 오히려 박 대통령의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대통령은 내 방식, 내 생각을 거듭 강조했으나 말은 꼬였고 제스처는 어색했다. 단호함을 보여주려는 듯한 표현과 말투였으나 대통령의 자신감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진짜 강한 사람은 여유가 있기 때문에 말이나 표정까지 강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러나 올해 회견에서 대통령은 그랬다. 자신의 주변에 대해 언급할 때 사용된 강한 부정이나 단호한 어투는 오히려 위기감만 나타내 보였다.

대통령에겐 때론 반대가 더 많더라도 추진해야 할 일이 없지 않고, 시대를 앞서는 결단과 추진력이 필요한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엔 그럴 만한 일이 없다. 대통령이 국민과 손발을 맞추지 못할 일이 없다. 대통령이 혼자서라도 가야 하는 길은 없다.

박 대통령이 혼자 가겠다는 길도 사실은 없다. 경제 살리기에 최선을 다하고, 남북대화에도 힘쓰며, 공무원 연금 등의 개혁에 노력하겠다는데 누가 반대하겠나? 방법론에서 의견이 다른 국민들은 있겠지만 대통령이 가려는 길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朴, 독선으로 가는 이유는 ‘사람 문제’

그런데도 대통령이 독선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은 결국 ‘사람 문제’다. 이번 회견의 가장 확실한 메시지는 비서관 3인방에 대한 확실한 엄호와 신임이었다. 국민의 63%는 정윤회 씨와 3인방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를 믿지 않고 있지만 대통령은 그들에 대해 절대적 신임을 표했다.

측근 문제이므로 누구보다 대통령 자신이 더 잘 아는 일일 수도 있고, 국민 여론에 맞춰 결정하는 것만 능사도 아니다. 그러나 정윤회 씨와 3인방 비서관 사건은 단순한 측근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의 방식에 관해 강하게 제기된 문제다.

‘3인방 문제’는 나라 일이 장차관이나 비서실장과 수석 등 여타의 청와대 보좌진과의 소통보다는 3인방 등 일부 측근과 비서진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불신이다. 이런 의문을 낳는 조짐도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회견에선 대통령과 장관 사이에 대화가 없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기자가 장관의 대면보고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자, 대통령은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대면보고보다 전화 한 통화가 편할 때가 있다”고 했다. 진영 장관이 노인연금 문제로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가 “서류로 올리라”는 문고리 3인방의 문턱에 막혀 결국 사표를 냈다는 소문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대통령도 그 많은 일들을 혼자 판단하고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장차관은 물론 청와대 보좌진과도 대화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와 얘기하겠는가? 외부에 대통령의 귀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라면 ‘문고리 권력들’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3인방 껴안고 가면 ‘문고리 정부’ 의구심 못벗어

박근혜 정부가 그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정윤회 씨 사건의 본질이다. 정 씨와 3인방이 대통령 몰래 정부 일에 개입해서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의혹 이상의 문제다. 대통령이 ‘문고리 권력’에게 둘러싸여 내각은 물론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구심이다.

이는 측근의 도덕성 차원을 넘는 ‘정부의 운영시스템’에 관한 중대 문제다. 내각의 도움을 받고, 청와대 보좌진의 조언을 들어도 제대로 처리하기 힘든 게 나랏일인데 어떻게 문고리 권력 몇 명과 나라 일을 결정하는가? 지금 박근혜 정부는 이런 비정상적인 정부로 의심받고 있다.

대통령이 3인방에 대해 확고한 신뢰를 보냄으로써 의혹은 더 커졌다. 대통령이 계속 ‘독선의 길’을 가는 한, 의구심은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대한민국은 ‘대통령과 비서진 몇 명이 이끄는 나라’가 되면서 대통령과 국민 사이는 더 멀어질 것이다.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건 3인방도 내각도 아니다. 국민이다. 대통령이 국민과 멀어지면 그는 더 이상 정부의 최고 책임자가 아니다. 그런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3인방은 또다른 ‘3인방’으로 교체가 가능하지만 국민은 바꿀 수 없다.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을 다른 사람들로 교체할 요량이 아니라면 3인방에 집착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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