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식의 이슈토론] 박근영 대전 국악협회 회장, 서용석 대전 국악협회 이사

신천식 행정학-도시공학박사 (이하 ‘신’): 국악전용공연장의 이름이 시민들의 관심거리입니다. 어떤 이름이 적절한 지에 대해 국악계의 전문가 두 분을 모시고 명칭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박근영 대전국악협회 회장 (이하 ‘박’): 안녕하십니까. 한국 국악협회 대전광역시 지회장을 맡고 있는 박근영입니다. 현재 대전무형문화재 제17호 판소리고법보유자이고, 대전국악문화회관의 국악연구단의 자문위원입니다. 이 지역에서 국악을 직업으로 삼고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국악의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서용석 대전 국악협회 이사 (이하 ‘서’): 안녕하십니까. 서용석입니다. 대전 국악협회 이사이면서 예풍실내악단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충남대학교에서 공학을 전공하면서 탈춤과 민요를 배우다가 박근영 회장님께 고법를 배우고 목원대 환경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 이후에 남원의 국립국악원의 단원으로 근무를 했고 부여의 충남국악단에서 근무했습니다. 현재 대전에서 단체를 운영하면서 대전국악발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신: 국악이 왜 우리의 소중한 가치이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인지요?

서: 꼭 우리 것이라서 국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국악에는 가락이나 리듬과 같은 우리의 민족성이 있습니다. 이런 민족성이 사라지면 전반적으로 정체성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 음악을 지켜야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악이 어렵고 서양 문화에 비해서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우리가 국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서 그런 것뿐이지 접하셨던 분들은 나이가 들어서 다시 찾습니다. 국악은 우리의 몸에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 박 회장님의 경우에는 선대로부터 고법을 익히셨다고 소개하셨는데요.

박: 실제로 저희 아버님께서는 고법이 직업이셨구요. 원래는 할아버님께서 취미로 하셨는데요.집안에 소리를 하시는 분이 계셨고, 공연도 자주 하셨습니다. 집안에서 그런 행사를 하다보니 아버님도 자연스럽게 국악을 듣게 되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평생 고수를 하시면서 대전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으시고 제가 그 뒤를 이어 국악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 서용석 이사님의 경우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다가 뒤늦게 국악에 입문하신 경우인데요. 희귀한 사례 같은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서: 예전에 고향에서 동제를 지낼 때 아버지께서 군무를 추시고, 그때는 동네 어른들이 동제를 지내면 모두 이 악기 저 악기 꺼내서 분장을 합니다. 그런 기억들이 있고요. 학교에서 장구를 치고 민요를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요. 처음 장구를 치는데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요. 장구를 치다보면 집에 가기 싫고 결국 졸업하고 나서도 다시 찾게 되고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계기가 되어서 이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신: 국극단을 들어본 것 같은데요. 앞에서 호드기라고 하는 것을 불고 재주넘는 사람을 쫓아다녔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런 국극단은 아직 존재합니까?

박: 여성 국극단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마당에서 공연하는 대신 극장 안에서 공연을 하는데요. 저 역시도 실제로 그런 광경은 집에서 밖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국악을 하셨지만 국악을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의 한밭대학교 공대를 졸업했고 포항제철에서 근무도 했습니다. 여러 상황을 거치면서 국악을 전공하게 됐고 현재 석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실제로 음악을 좋아하고 늘 음악과 함께 있었지만 가장 큰 방해가 아버님이셨습니다. 한밭대학교 재학시절에 그룹사운드 (Black stone)에서 공연을 해서 팸플릿을 갖다 드리면 칭찬이 아닌 매가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에 반대에 부딪혀 다른 길을 걷다가 결국 25살 때 포항제철을 관두고 음악을 몰래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버지께서 사주신 기타와 기타교본입니다. 더구나 북은 5~6살부터 아버지 밑에서 가르침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께서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것을 굉장히 반대하셨습니다.

신: 반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박: 그 당시만 해도 실제적인 수입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국악이라고 하면 한량이라고 했지 직업으로서 보지는 않았습니다. 교육기관이 생기고 각종 국악 공연들이 무대화 되면서 직업으로서 대접을 받지만 아버지 세대에는 국악을 배우면서도 직업으로서 존중하지는 않는 경향이 심했습니다. 아마 그런 것 때문에 반대하신 것이겠지요.

신: 지금 국악 전용공연장이 들어서는 자리가 한밭수목원인데요. 서구 둔산의 요지입니다. 국악이 가진 특수성 때문에 그곳에 위치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안영동 쪽으로 위치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당초 공연장을 건립할 때부터 이슈가 되었는데요. 국악전용공연장이 건립되고 그것이 추진될 때는 많은 국악인과 국악동호인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박: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염홍철 시장 재직 당시에 위치 문제로 굉장히 시끄럽다가 비로소 이 자리로 오게 되었는데요. 실제로 디트뉴스의 토론을 몇 번 봤습니다. 하지만 시민의 접근성 때문에 이 장소로 간 것은 아닙니다. 기상청에 문의한 결과 같은 안영동은 하천을 끼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정습도이기 때문에 습도가 아주 높고, 둔산동은 이동습도이기 때문에 습도가 낮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연정국악원은 연정 선생님의 악기 등의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데요. 국악기는 습기에 약해서 안영으로 가게 되면 연정국악원에 있는 자료들이 쉽게 훼손될 수 있는 게 염려되었습니다.

신: 국악자료라고 하는 것은? 악기에 변질이 온다는 말씀이신가요?

박: 악기는 물론이고 문헌도 마찬가지이지요. 국악기는 가공을 하지 않는 1차 생산품입니다. 나무를 깍든가 줄을 꼰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서양악기 보다 훨씬 습기에 약합니다. 그래서 현재 위치가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신: 국악공연장이 대전의 한 가운데, 요지 중의 요지에 들어서는데요 그것은 그만큼 세금을 내는 시민들의 기대치가 높고 국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현재 대전시의 국악동호인이나 인구는 어느 정도입니까?

서: 풍물단체는 2천명 정도 되고요. 민요나 기타 단체를 포함하면 1천명입니다. 동호인까지 포함하면 더 많겠지만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지속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들로 따지면 그 정도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 현재 국악협회 대전 국악지부에 등록된 회원숫자는 얼마나 됩니까?

박: 국악협회는 전문단체이기 때문에 정회원은 전국대회에 3위 이상 입상자나 이수자나 전공자입니다. 하지만 국악인원은 협회 측에서 보면 각 도마다 풍물단이 있고, 각 도에서 풍물을 가르치고, 각 문화원에 국악을 보급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실제적으로는 국악인은 대전시내 절반의 인구도 될 수 있습니다. 제가 해마다 공연을 해보면 저희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눈높이가 높고 훨씬 많은 분들이 국악을 즐깁니다. 대전이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국악의 불모지라는 불명예를 달고 있었습니다만 국악공연장이 생김으로서 공연의 질이나 시민들의 관심에 의해서 더욱 더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대전의 국악인이 몇이냐를 수 적으로 헤아리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신: 국악의 대중화는 대전시에도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국악 전용 공연장이 탄생하게 되었는데요. 국악 전용 공연장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요. 또 국악공연장이 지방 마다 다 있습니까?

박: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나서 정부에서 최초로 대전광역시에 국악전용극장을 만든 것입니다.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지요.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는 대전광역시가 국악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전 국악전용극장이 생김으로 해서 전국의 국악인들이 지방에 더욱 발전 된 공연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신: 국악은 마당이나 공원에서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요. 국악전용공연장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박: 예전에는 어디든지 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삶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소음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공연이 무대화 되면서 현장에서 했던 음악이 조금씩 다듬어져서 고급화 되고 무대화되었습니다. 우려되는 점은 그러한 토속적인 것들이 자꾸 없어지는 것입니다만 본질은 국악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열리는 것이지요. 언제든 그 공연장을 가서 작품 활동을 하거나 음악을 향유하고 감상하는 장소가 공식적으로 생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악전용공연장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 또 하나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대전이 100년 밖에 안 된 도시라서 향토성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향토적인 것이 가장 정체성을 가지는 것인데 회덕, 진잠, 유성은 과거부터 살아있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지명이거든요. 대전역 근처의 역사로 보자면 분명히 역사성이 있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대전이 과학이나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에 비해 국악이 빠져있었습니다.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에서는 국악공연을 할 수 없는 장소라는 말까지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런 면에서 국악의 전당을 짓는 다는 것은 대전이 국악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지역에 가서도 대전에 국악전용공연장을 짓는 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신: 국악 전용 공연장이라고 하는 것은 연구나 교육활동, 보급을 위한 다양한 활동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전문 연구, 교육기관 및 공연장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지요. 서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 지역이 분명히 역사성이 있습니다. 한밭으로 바뀌고, 대전으로 바뀌는 대전이라는 명칭만 가지고 따지면 불과 백 여 년이지만 당연히 문화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삶을 영위한 지는 오래되었지요.
 그런데 모든 국악인들의 소원인 국악전용공연장의 이름을 가지고 ‘연정’을 넣어야 하느냐 빼야 하는가의 명칭사용에 대해서 시민들이 혼란스럽게 여기는 이유가 뭔가요.

서: 공공시설을 지은 것이냐, 공공기관의 건물을 지은 것이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시설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임대를 하든지 사용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아니면 기존에 있는 연정국악원의 연주단이 있는 연정국악연구원이라는 기관의 시설물을 짓는 것인지요. 물론 지금은 연정국악연구원과 시민회관이 합병되면서 시설과 기관이 합병되었기 때문에 두 가지를 같이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신: 연정선생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박: 연정 임윤수 선생님이 모 신문사 기자 생활을 하고 계셨을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님과 장구를 놓고 요즘 말하는 레슨을 하는 것도 직접 봤습니다. 그 분이 그 당시에도 우리 음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연정 선생님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연정 선생님은 기자 신분이면서도 우리의 자료를 방대하게 수집하셨습니다. 그 공적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정선생님이 국악을 연주하신 분도 아니고, 국악을 공부하셔서 이론을 만드신 분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국악을 좋아하는 분으로서 많은 자료를 수집하셨고 그것으로 인해 대전시 국악연정연구원이 탄생하게 되는 배경이 되는 분입니다.

신: 저도 연정선생님 살아계실 때 뵌 기억이 있는데요. 그 분의 성격이 깔끔하시면서 후배관계자들이 잘못할 때는 호되게 꾸짖으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국악전용공연장 명칭에 연정을 떼느냐 붙이느냐 가 핵심 사안인 것 같은데요. 지금 ‘연정’이라고 하는 이름이 대전연정문화회관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서: 애초에는 1981년에 대전시에 연정 선생님의 자료를 기증하면서 대전연정국악연구원이라는 기관을 설립하고 2003년에 연주단원을 뽑게 되었습니다. 원래 목표는 음악의 보존, 육성입니다. 그러면서 2005년도에 시민회관과 병합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대전연정국악문화회관으로 된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연정’이라는 이름이 계속 온 것입니다. 이에 대전연정국악문화회관은 공공기관인지 공공시설인지 불분명합니다. 그 두 가지 속성을 다 겸하고 있거든요.

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 기관의 역할과 기능, 때로는 기관이 속한 지역을 나타내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희가 ‘연정’이라는 이름을 떼는 것과 붙이는 것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박: 대전시 연정국악연구원이 생긴지는 30년이 넘었고 현재 대전국악전용극장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대전국악전용공연장의 이름에 ‘연정’이 들어가게 되면 다른 지역에도 ‘연정’을 붙이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된다면 대전시에 국악전용극장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대전연정국악원의 건물이 세워진 것입니다.

신: ‘연정’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단체나 기관이 다른 지역에도 있습니까?

서: 공주에 충남연정국악원이 독립단체로 있습니다. 연정 선생님이 대전에 계시다가 공주로 가시면서 공주시에서 국악원을 세워서 원장으로 재직하게 되신 것이지요.

신: 그렇게 되면 연정국악원이 대전과 공주에 있게 되는 것이네요.

서: 다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연정국악연구원은 기관으로 생긴 것이기 때문에 공공시설을 만든 것이라면, 국악전용공연장은 공공시설이라는 것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공문화회관 등록현황을 보면 이곳에 180여개의 공연장이 있는데 지역 명칭 외에 들어간 것이 ‘국립국악원’, ‘세종문화회관’, ‘서울남산국악단’, ‘국악회관’ 등 인명이 들어간 것은 ‘세종국악당’과 영동의 ‘난계국악당’, 고창에 신재효 선생님의 ‘동리국악당’이 있어요. 연정 선생님이 자료를 수집하고 기증하고 국악에 관심을 가져주신 것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그 분을 기릴 것이냐의 것은 다른 문제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난계 박연 선생님이나 동리 신재효 선생님의 경우에는 역사 문화적으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거든요. 공연장의 명칭에 사람 이름이 붙을 때는 자기 지역과 연고된 사람에 대해서 역사 문화적 인물에는 붙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연정 선생님에 대해서는 그 업적을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기릴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많다는 것 입니다. 공공시설인 국악전용공연장으로 시민들에게 공개할 것이라면 여기에는 그냥 대전을 뜻하는 지역명칭을 넣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신: 물론 연정 선생님의 업적이 대단하시지만 난계나 동리 등에 비춰봤을 때는 연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비교하기가 어려우니까 그런 정도가 아니라면 연정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과하다는 것인가요?

서: 과하다기 보다 목적이 다른 것이지요. ‘난계국악당’이나 ‘박연국악당’의 경우에는 박연 선생이나 동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그 목적을 위해 지은 것이지요. 하지만 국악전용공연장의 경우에는 시민들에게 개방할 수 있는 공공시설을 짓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목적부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신: 현재 준공된 국악전용공연장의 경우 그 활용 목적이 연정 선생님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것이라면 ‘연정’을 붙이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박: 국악당을 지을 당시 자문위원으로 있었는데요. 활동 당시 연정국악원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문회의를 할 때 항상 ‘대전국악전용극장’ 으로 있었는데요. 갑자기 ‘연정’이라는 이름 문제가 제기 되었습니다. 이것은 시민회관과 연정국악연구원이 합쳐지면서 연정국악회관이 되어서 여기까지 끌고 온 것입니다.
 연정 선생님의 공은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 기릴 수 있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바는 대전에 지어진 대전국악당에 대전이라는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국립국악원에도 명칭이 국악의 대표적인 예학당, 우면당 등으로 되어있습니다. 연정 선생님을 기린다고 한다면 대전 국악당 안에 있는 연정홀 등으로 쓰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시설물 자체에 ‘연정’을 붙인 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서: 연정선생님을 기리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연정국악연주단에 대전시립연정국악연주단으로 넣는 다든가 그 자료를 활용해서 대전국악연정자료실, 대전국악연정도서관, 더 크게 된다면 대전연정국악박물관 등 다른 자료를 많이 모아서 운영하면 연정선생님이 기여한 부분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 현재 국악연정회관에 속한 국악연주단의 이름이 대전연정국악연주단입니까? 뭐라고 부릅니까?

박: 조례상으로는 대전국악연정문화회관 국악연주단입니다.

신: 그렇다면 대전국악연정문화회관에 속한 국악연주단이네요. 그러면 ‘연정’이라는 이름을 쓰지 말자는 것이 국악연주단이 공연장을 주로 쓰고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연장이 적어질까봐 ‘연정’ 사용을 반대하시는 것인가요?

박: 아니죠. 대표성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서: 처음에 생길 때부터 국악연주단이 사용하는 건물을 만들겠다고 했다면 저희 시민단체가 관여할 바가 아니죠. 그런데 공공시설을 만들겠다고 했기 때문에 저희 시민단체가 관여를 하게 된 것이죠.

신: 공공시설에 ‘연정’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 적절치 않고, 도서관이나 박물관 건립이나 일정공간의 이름을 연정으로 붙이는 괜찮지만 건물의 이름에는 ‘연정’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말씀이시죠?
 이 부분에 있어서 사실 아쉬운 것이 대전연정국악연구원의 관계자분이 나오셔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텐데 그 분들이 출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전하기는 조금 어렵구요.
 앞으로 국악전용공연장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식의 활동을 펼쳐나가야 하는 것입니까? 연정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대전광역시 차원의 활동을 못하나요?

서: 연정을 붙인다고 해서 회관의 활동에는 상관이 없지만 회관의 이름으로서 대표성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이지요. 시민회관이나 그런 기관들이 예전에는 관리와 임대에는 부분에 그쳤는데 더 간다면 예술의 전당에서 기획공연도 하잖아요. 그렇다면 국악전용극장에서 연주단과 별개로 그런 기획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시의 운영에 달린 것이고, 이번 대화주제는 명칭의 문제인데요. 명칭의 문제로만 본다면 그런 명칭을 붙이는 게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신: 국악인들의 이익이나 집단적인 의사를 수렴하고 대표할 수 있는 곳이 협회 아닙니까? 협회에서 국악인들의 의견을 한번 모아본 적 있으세요? 어떤 의견이 나왔습니까?

박: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국악전용공연장이 연정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용했을 때 국악계의 회원들의 경우에는 ‘그럼 우리 자리는?’ 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저희 국악협회도 회원과 이사까지만 해도 1년에 공연이 100회 이상입니다. 그들도 연습실이 필요합니다. 그들도 공간이 필요하구요. 연정은 관 단체입니다. 저희는 민간단체이구요. 저희 생각으로는 ‘연정’을 붙인다는 것은 연정이 그 안에 들어가서 관리를 하겠다는 것이거든요.

신: 대전국악연정연구원 중심으로 그것이 운영될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계시다는 것이지요?

서: 국립국악원은 기관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국립국악원 공연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립 창극단은 국립극장의 소속단체이지만 국립창극단이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설과 기관을 분리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만약 연정을 붙여서 연정국악연구원을 부활하게 하는 단계로 보느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로 국악을 하는 시민단체들과 협력해서 다른 모색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신: 국악협회 대전광역시 지회 회원들은 ‘연정’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것은 독점적인 운영이나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민간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그래서 이름 자체에서 ‘연정’을 빼자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지요.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연정 선생님이 국악에 끼친 공은 인정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인이 시간과 막대한 재원을 투자해서 수집한 것을 기증한다는 것은 앞으로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 뜻을 받들기 위해서도 국악전용공연장의 이름에 연정이라는 이름을 넣으면 어떻겠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습니까? 도서관이나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것은 예산문제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닙니까?

박: 현재 자료실이 있으니까 그것을 조금 더 확장하면 되는 것이지요.

서: 자료실이라고 하지 말고 연정국악도서관 등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박: 연정의 위치에서 보면 좀 애매하지만 실제로 조례를 보면 현재 ‘국악연주단’으로 되어있습니다만 원래 시작은 ‘국악연구원’이었습니다. 그것은 연정선생님의 뜻을 기리는 일을 하는 것이었고요. 지금은 ‘국악연주단’으로 되어있는데 연주만 하는 것이 연주단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기획을 해야 하고 교육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구원이라는 개념을 하루속히 부활하는 것이 시급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대전 연정국악문화회관 관장은 국악인이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분이 오시든지 국악을 전공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외람되지만 몇 분을 제외하고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이 오셔서 국악인들에게 잘 해주겠다시는데 무엇을 잘 해주시겠다는 건지.. 이런 문제도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설부분과 국악관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악관으로 독립이 먼저이고 ‘연정’을 붙이고 안 붙이고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국악인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대전연정국악문화회관의 종속단체인 국악연주단이 아니고 그 자체를 국악 단체로서의 연정국안연구원이 되어야합니다. 공공단체와 섞이는 바람에 기준이 아주 애매모호합니다.

신: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정리 부탁드립니다.

박: 이름을 어떻게 짓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명칭을 씀으로 해서 우리 국악인들이 활동하는 장소가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미 건물은 세금으로 만들어 진 것이기 때문에 이 시설물은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정’이라는 단체 이름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중요한 부분들이 제외되거나 박탈되지 않고 우리 후손까지도 자랑스러운 시설물로서 길이 남길 바랍니다.

서: 저는 애초에 연정국악연구원에 연정이라는 명칭이 들어갔지만 공공시설인 시민회관과 합쳐지면서 시설물에까지 ‘연정’ 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연정 선생님의 호가 붙여진 것은 연주단 내지 국악 관련 단체와 기관에 붙여진 이름이었으니까 연주단이나 장외시설물에 붙였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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