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창호의 허튼소리]

편지의 내용이 가장 짧았던 것은 19세기 중엽에 빅톨 위고와 출판업자 알베르 라크루아 간에 오간 편지가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장발쟝으로 많이 알려진 레미제라블을 쓴 빅톨 위고가 소설이 잘 팔리는지 여부를 알고 싶어 출판업자 알베르 라크루아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단지 ? 뿐이었다. 이 편지를 받은 알베르 라크루아는 책이 잘 팔린다는 답장을 보냈는데, 그 내용도 달랑 ! 뿐이었다.

펀지를 보내 궁금증을 묻는 사람도 재미있고, 받은 편지 내용에 맞춰 답장을 보낸 사람도 재치 있다.   

                                                                                                      

흔히들 충청도 사람은 말이 느리다고 하는데, 과거에 이런 우스갯말까지 있었다. 우리나라 산들이 벌거숭이 민둥산일 때, 어느 부자(父子)가 땔감을 구하러 산에 갔다. 젊은 아들은 산 위쪽에서, 아버지는 산 밑에서 나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이 잘못해 큰 돌덩이가 굴러 내리자, “아버지-, 돌 내려가 유-우” 하고 외쳤다. 하지만 말보다 돌이 먼저 내려가 아버지가 돌에 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충청도 사람들도 말을 짧게 줄여 쓰고 행동도 빠르다 한다. 산 위의 아들이 “아버지! 돌!”하면, 산 밑에서 아버지가 “피했다!”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복날에 충청도 사람들이 보신탕 먹는 우스개 얘기다. 충청도 사람들은 “보신탕 먹을 수 있어?”라고 묻지 않고, 그냥 “개 혀?”하고 묻는다. 먹을 수 있으면 “혀”하고, 못 먹으면 “못 혀”한다. 아주 짧은 문답이다.

빅톨 위고와 알베르 라크루아 간에 오간 편지만큼은 못해도 그에 버금간다 하겠다.

 꼭 충청도 사람들만이 말을 줄여 쓰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중복이 지나고 아직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니 보신탕과 관련한 얘기를 더 해본다. 이것 역시 잘 알려진 우스개다. 복날 점잖은 기관장들이 보신탕집에 갔다. 종업원이 주문을 받자 그 중의 나이 많은 분이 먼저, “나는 개”했다. 보신탕을 주문한 것이다. 그러자 그 옆에 분도 “나도 개”했다.

그 이후로는 주문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종업원이 아직 주문하지 않은 분을 바라보며 “선생님도 개죠?”하면 “예”하고, 또 다른 분에게 “선생님도 개죠?”하면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종업원은 더 이상 물을 것도 없다는 듯이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개죠?“했다는 것이다. 듣기에 따라 점잖은 분들이 모두 개가 된 것이다. 종업원이 주문을 빙자해 평소 어깨에 힘깨나 주는 사람들을 골려줬다는 얘기도 있고, 점잖아야할 사람이 먼저 말을 함부로 꺼내서 자초한 화라는 얘기도 있다.

 말에도 품격이 있다. 말하는 사람의 인품이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말을 줄여 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 줄여 씀에 엉뚱한 면도 있는 것 같다. 식당 메뉴판을 보면 쉽게 알아볼 수 없는 메뉴들 까지 있다. 짬짜면 같은 경우는 짬뽕과 짜장면이 한 그릇에 반씩 나오는 메뉴임을 짐작해 알 수 있지만, 칼만밥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칼국수를 시키면 만두와 밥을 곁들여 내놓는 메뉴라는데, 이 정도면 줄여 씀이 심하고 알아먹기도 어렵다.

 영어도 마찬가지로 줄여 쓰는데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예를 들면, 스테인레스 식기는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레스 금속 재질로 만든 그릇인데 어느 때부터인지 스테인(녹) 식기라고 하다가 지금은 더 줄여서 그냥 스텐이라고 한다.

슈파마켓도 그냥 슈퍼라 부르는데 줄이기 전과 줄인 후의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천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동네 작은 가게도 무슨무슨 슈퍼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식당에서도 ‘물은 셀프입니다’라거나 ‘커피는 셀프’라고 써 붙인 문구를 볼 수 있는데, 셀프는 셀프서비스를 줄인 말이다. 이 같이 뜻과 의미가 달라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외래어를 무리하게 줄여 쓰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차라리 우리말로 ‘물은 본인이 드십시오’라거나, ‘커피는 스스로’라고 써 붙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쓰다가 아무런 의식 없이 줄여 쓰면 앞으로도 똑같은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말 줄여 씀도 사리에 맞고 품격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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