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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시장의 시청앞 사무실
퇴임시장의 시청앞 사무실
  • 김학용 주필
  • 승인 2014.06.2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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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으로 가면 어떤가?
  김학용 주필  
 김학용 주필

올라가면 내려오긴 힘든 산이 있다. 꽤 높은 벼슬을 한 사람들이 오르는 ‘인생의 산’이다. 어떤 시인은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내려올 때 보았다고 노래했지만, 내려올 때라도 진정 그 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려오기 힘든 고관의 ‘인생의 산’

얼마 전 염홍철 시장은 이 시를 빌려 “물러날 때가 되니까 과거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내려놓으니 모든 것이 제대로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퇴임 후에 쓸 사무실을 시청사 코앞에 얻은 걸 보면 그가 정말 내려놓은 게 맞는지 궁금하다. 그는 대전시청 바로 앞에 개인 사무실을 얻었다고 한다. 

벼슬에서 물러나는 퇴관(退官)의 걱정은 대개 ‘염량세태(炎凉世態)’에 있다. 자신의 세력을 보고 모여들던 사람들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으면서 잊혀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다. 벼슬을 할 만큼 한 사람도 끝까지 정치판에 얼씬거리는 이유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랐어도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는 게 이치다. 시도지사를 두 세 번 했어도 임기가 다 했으면 물러나야 한다. 물러날 때는 깔끔해야 한다. 내려올 때 정말 ‘꽃’을 본 사람이면 벼슬에 미련이 있는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퇴임 시장의 시청앞 사무실 오해받기 쉬워

염 시장이 시청사 코앞에 개인 사무실을 내는 것은 오해받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시장을 세 번이나 하고도 미련이 남았는가?” 하고 생각할 것이다. 시장에서 바로 물러난 사람이 시청 바로 앞에 사무실을 내고 매일 출근하는 걸 누가 정상이라고 여기겠는가?

무엇보다 후임 시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람은 후임자가 부담없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전임 시장이 시청을 떠나지 않고 주변을 맴도는 것은 새 시장에겐 적지 않게 신경 쓰이는 일이다. 시청 앞 사무실은 마치 후임 시장 감시를 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지적을 염두에 둔 듯, 염 시장은 “앞으로 정치는 물론이고 모든 공직을 맡지 않고 시정에 대한 간섭이나 관여 역시 없을 것”이라며 “오로지 평범한 시민으로 남겠다”고 했다. “일체의 언론 홍보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며 전직 시장으로서 실무자(시 공무원) 등을 곤란하게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여관' 떠나지 못하고 그 옆에 차린 천막?

염 시장은 자신이 시장에 다시 출마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눈치볼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물론,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없는 전직 시장의 눈치까지 살필 공무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직 시장을 이젠 끈 떨어진 사람이라고 여겨, 보란 듯이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다. 시청 공무원들에겐 전직 시장이 시청 주변에서 맴도는 게 불편할 수밖에 없다.

옛 선비들은 벼슬을 여관(旅館)처럼 생각했다. 물러날 때가 되면 미련없이 훌쩍 떠나는 것을 선비의 아름다움으로 여겼다. 여관을 자기 집처럼 여겨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수령(守令)들은 아래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게 다산(茶山)의 충고였다. 염 시장이 시청 앞에 얻은 사무실은 여관을 떠날 수가 없어 여관 옆에 차린 천막처럼 보일 수도 있다.

염 시장이 굳이 시청 바로 앞에 사무실을 얻었는지에 대해선 들은 바 없다. 시청 주변은 사무실 임대비도 가장 비싼 편이다. 원도심에서는 말만 잘해도 거저 주겠다는 주인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왜 굳이 가장 비싼 시청 앞인가?

새 시장 압박용 의심 살 수도

그가 아무리 ‘정치적 해석’을 경계해도 우선은 ‘정치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염 시장은 새 시장이 자신의 정책을 이어받도록 압박하는 효과를 바랄 수 있다. 말하자면 새 시장은 함부로 내 정책을 건드리지 말라는 ‘시위용’이다. 염 시장 자신이 추진해온 도시철도 2호선이나 와인축제 등은 새 시장에 의해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새 시장은, 전직 시장이 코앞에서 버티고 있으면 아무래도 신경이 더 쓰일 수밖에 없다.

또 전임자들은 후임자에 의해 자신의 실책이나 허물이 드러날까 걱정한다. 이런 문제에도 전임자가 시청 앞에 진을 치고 앉아 있는 게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염 시장이 자신의 허물 때문에 시청 앞에 사무실을 얻었다고 보지는 않으나, 시청 앞을 고집하면 그런 오해까지 받게 돼 있다.

물론 전임시장과 후임시장이 사이좋은 형제처럼 고민을 나누면서 정책을 상의하는 사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염 시장은 의도했든 안했든 새 시장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줬으니 그런 협조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리를 떠난 사람은 그 업무에 대해 논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공동 시장제’가 아니라면 사무실을 시청 가까이 둘 이유는 없다.

'여론정치'와 분열 갈등 우려

시장을 그만둔 사람이 시청 옆에 사무실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면 시정에 도움이 안 된다. 사무실이 시청 옆에 있는 한, 시청 기자들이 한 번이라도 더 전임시장을 보게 되고 그러면 잡다한 문제에도 ‘입방아’가 나오게 돼 있다. 시청 공무원들과 전임 시장의 접촉 빈도가 높아도 마찬가지다. 이게 활발해지면 ‘여론정치’가 되고, 분열과 갈등의 또다른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는 물러난 시장이 할 일이 아니다. 염 시장은 시장을 물러나면 더 이상 정치를 할 생각이 없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 원로의 길을 가야 한다. 원로는 기자들을 자주 만날 이유가 없다. 공무원도 자주 접촉할 필요가 없다. 염 시장 본인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하지만 의문이 간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시청 부근을 고집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임대료가 더 비싸고, 오해의 소지가 큰 데도 불구하고 시청 부근을 고집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새 시장에 대한 ‘무언의 압박’을 위한 것이든, ‘여론정치’를 위한 것이든, 그도 아니면 단순히 ‘염량세태 해소법’이든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정당한 이유는 아니다. 

원도심 살리기 노력 진정성도 의심받아


임기 내내 원도심 활성화를 외친 만큼 원도심에 두면 뒷말이 나올 이유가 없다. 원도심 문제 해결은 아직도 까마득한 상황이다. 원도심 상인들이, 전임 시장이 마땅한 이유도 없이 둔산에 사무실을 낸다는 소문을 듣는다면 그의 원도심 살리기 노력은 진짜가 아니었다고 의심하지 않겠는가?

시도지사 같은 고관들은 물러난다고 해도 완전한 사인(私人)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죽을 때까지 ‘전직 시장’ ‘전직 도지사’라는 꼬리표가 붙게 돼 있다. 사무실 하나 얻는 것도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염 시장은 시청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말고 사무실을 다른 데로 옮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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