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부여군 부군수  
라 창 호  전 부여군 부군수  


올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 가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때, 우리 가곡 ‘그리운 금강산’ 선율이 울려나오자 눈가를 훔쳤다 한다. 통일구상을 밝힌 자리에서 ‘맑고 고운 금강산’이 떠올라서 일까, 불쌍한 북한 주민들이 생각나서 일까, 속내는 당사자만이 알 일이지만 금강산이 가곡처럼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임을 부인할 순 없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총격피살사건으로 인해 금강산 관광이 단절되어 지금은 갈 수 없지만 정부에서 금강산 관광을 장려했던 2000년도에 금강산에 갔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구룡폭포와 상팔담으로 가기 전 옥류동 입구 금강산 관광안내도 앞에서 북한 안내원이 했던 말이다. 그는 “북조선은 언어 주체성을 잃지 않고 우리말을 지키고 있는데 남조선은 영어를 많이 써 언어 주체성을 상실했다”고 신랄히 비판했던 것이다.

맑고 고운 금강산처럼 아름다운 것이 우리말과 글이다. 우리는 표음문자를 가졌기에 새울음소리에서부터 자연 현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표현해 낼 수 있다. 또 우리말에는 아름다운 단어와 형용사가 많다. 그런데 지금 우리말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북한의 방송을 듣자면 우리말이 저렇게 거칠고 험할 수가 있는가 생각되어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북한이 외래어 안 쓰는 일은 잘하는지 모르지만 우리말을 못되게 쓰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는 우리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쓰는 말도 거칠어서 걱정이다. 어린 학생들이 상스러운 욕설을 입에 달고 있고, 일반 사회인은 물론 신문, 방송에서 조차 외래어를 남용한다. 이미 우리말화했거나 바꿔 쓸 마땅한 말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쓰는 것은 그렇다 해도 외래어를 너무 남발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요즘 새 정치 새 정치하는데 ‘콘텐츠’가 뭔지 모르겠어” 한다. 그냥 ‘내용’을 모르겠다하면 되지 않을까. 일상생활에서도 외래어를 흔히 사용하는데, 보고서 백데이터, 자료 업데이트, 수준 향상은 업그레이드하는 등등. 뿐 아니라 인프라, 비전, 메리트, 네트워크 등도 자주 듣는 말이다. 두 방향으로 일을 추진하거나 처리하는 것을 두고는 투 트랙 운운 한다. 심지어 아파트의 이름도 외래어를 써서 한 번 들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우스갯말로 며느리들이 시어머니가 찾아오기 어려운 이름을 선호해서 그렇다는데, 외래어로 이름을 붙여야 그럴싸해 보이고 우리말로 이름 붙이면 값싸 보인다는 그릇된 사고가 아니었으면 한다. 길거리의 상호들도 외래어가 많은데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

공무원들이 작성하는 문서나 업무계획도 외래어를 많이 쓴다. 계획서마다 외래어 없는 면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화에서도 외래어를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남 탓할 것 없이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도 그랬다. ‘바다 음식물 축제’ 해도 될 것을 굳이 ‘씨 푸드 페스티벌’이라 했고, 문서에 오류가 없는지 살펴보라 하면 될 것을 ‘스크린 해보라’ 하고, ‘회의서류 디스플레이 했느냐’는 둥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또 하나는 신문과 방송에서 조차 외래어를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신문지면을 보면 외래어가  많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안타까운 세월호 참사가 난 후 ‘앵그리 맘’이라는 신조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그냥 ‘성난 엄마’라 하면 안 되나? 이 뿐 아니다. 투톱이니 투잡이니 잡쉐어링이니 포퓰리즘이니 스펙이니 매치플레이니 트라우마니 코스프레니 온통 외래어 투성이다. 신문은 외래어보다는 좋은 우리말을 발굴해 써야 마땅하다. 사회 지도기능이 있지 않은가.

TV 방송 프로그램은 더 가관이다. 파노라마 플러스, 뉴스투데이, 파워매거진, 스포츠 다이어리, 모닝와이드, 뉴스 퍼레이드, 나이트 라인. 모큐드라마, 리얼리티 카메라, 뉴스와이드 등등. 이것이 정녕 우리나라 방송 프로그램 맞는가하는 의심까지 든다. 어느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든가 ‘밤을 잊은 그대에게’ 같은 이름은 얼마나 정겹고 아름다운가.

지금부터라도 신문과 방송은 물론 온 국민들이 외래어 사용을 지양하고, 아름답고 고운 우리말을 써야 한다. 우리말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우리말을 사랑하고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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