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선 전 국회의원.

한국에서 아파트는 부의 욕망과 개발지상주의 토건문화가 만든 대표적인 획일문화 중 하나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주거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측면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대전시를 위해서 또 대한민국을 위해서 빠른 시간 내에 해소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지금 대전에는 성냥갑 같은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에 이어 지나치게 독창적이다 못해 괴기한 주상복합아파트가 무분별하게 지어지고 있다. 에너지 효율은 물론 주거민의 건강마저 해칠 뿐 아니라 도시 전체를 엉망으로 만드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마저 지어지고 있다. 이는 넓은 한밭이라는 지형적 특징을 살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심 전체의 균형 있는 발전에는 철저하게 동문서답하고 있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대전이 아파트 해결책의 중심에 설 수 있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시민들의 가장 큰 자산인 아파트 버블에 대한 대비를 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대전이 그 해결의 중심에 설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아파트 구매는 “사고 나면 오른다"는 투기적 목적이 강렬하게 작용했었다. 토건산업을 위한 저금리 정책은 아파트 가격을 올렸고 투기를 조장하게 된다. 그런데 인구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구조이다. 인구와 가구수의 문제에서 비교적 형편이 나은 대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집이나 아파트 아닌 방(房)에 반응하는 젊은 세대 

여기에 '88만원 세대'라고 부르는, 아파트를 구매하기 어려운 지금의 20대들이 등장했다. '3무 세대'라는 그들의 자조적 표현처럼, 돈 없고, 집 없고, 결혼이 없다. '집', '아파트'가 아니라 '방'이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 것이고, 그 흐름은 "일단 지으면 된다"라는 토건논리에 거대한 반전을 만들었다.

언젠가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면, 금융비용을 부담해서라도 일단 집을 사야 한다는 30~40대에겐 실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시민들의 가처분 소득은 증가하지 않고 저축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경제위기에서도 경쟁이 극심한 한국사회에서 자식들의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예비 저축이라고 할 수 있는 보험해약률은 늘고 있고... 사람들은 지금 보험을 깨서 생활비로 생활하고 있다는 뜻이다. 교육보험을 깨서 사교육비를 대는 것인데 가장 큰 자산인 아파트 가격의 폭락은 시민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까?

아파트 문제 대책 세우지 않는 경우와 가격 유지 정책을 펼 경우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가정 중 하나는 경제당국이 참을성 있게 별도로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 지금의 부동산 버블은 시장의 장기적인 조정 국면을 거치면서 아파트와 주택은 본래 주거의 목적에 따라 건설과 공급이 조절될 것이다. 그런 정상적인 경제로 가기 위해서 지금까지 누적된 토건기반의 경제가 심히 우려되긴 하지만 언젠가는 터질 폭탄일 뿐이다. 이 경우 상당기간 고통을 시민들이 분담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이 쓴 잔을 마시려 들지 않을 것이긴 하다.

두번째 가정은 아파트 가격유지를 위한 인위적인 정책을 펴는 경우이다. 이 경우 일본의 토건경제가 붕괴하던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도 90년대 동경도와 나머지 지역의 경제적 격차가 발생했고, 세계화와 함께 지역에 있던 중소기업들이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탈지역화' 현상이 생겼다.

외형만으로 보면 지금의 한국의 상황과 아주 비슷하다. 그래서 '리조트법' 등을 통해서 지역에서 골프장과 리조트를 짓게 하였고 중앙정부도 이러한 토건으로 지역경제를 부양하려고 하였다. 결과, "무슨 일을 해도 되지 않는다"는 일본의 악명 높은 '잃어버린 10년' 혹은 일왕의 연호를 따 '헤이세이 공황'이라는 것이 벌어지게 된다. (*후속 기고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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