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서장 때 시위차량 240대 혼자 막아내.. 대전청 인사 기준 만드는 중

정용선 대전지방경찰청장
 정용선 대전지방경찰청장


정용선 대전지방경찰청장(49)은 경찰대를 수석졸업하고 동기(3기) 가운데 치안감(지방경찰청장급)으로 가장 먼저 승진했다. 대전청장 취임 100일 만에 벌써 성과가 나온 것인가? 대전 시민의 치안 체감 향상도가 전국에서 제일 높게 나왔다고 한다.

그는 ‘기획통’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기획통이라지만 100일 만에 시민들이 느낄 만큼 경찰행정이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정용선 대전지방경찰청장을 24일 만났다.

‘기획 업무’ 비중 높아지는 치안행정

-경찰 행정에서 ‘기획 업무’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것 같다. 왜 그런가?
"예전 경찰은 방범 순찰을 돌고 검거하는 게 다였다. 이제는 시민들을 보호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경찰이 해야 할 새로운 역할이다. 그런 차원에서 대전지방경찰청은 '안전하고 행복한 대전 만들기 운동'을 펴고 있다."

정 청장은 경찰을 의사에 비유했다. 유능한 의사라면 치료 못지 않게 병에 안 걸리게 하듯 경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범죄가 일어난 뒤에 처벌하기보다는 최대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서 범죄 자체를 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화와 분노가 너무 많지만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고 갈등을 해소하는 사회시스템도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범죄 예방과 검거의 비중은 어떤가?
“예방 60~70%, 검거 30~40% 정도가 아닌가 한다. 단기적으로 검거율이 높아지면 예방의 효과도 있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검거 활동을 소홀히 할 수는 없지만 예방 치안에 더 치중하고 있다.”

‘기획통’ 경찰청장이 낸 아이디어 ‘ㅎㅎㅎ 운동’

-‘ㅎㅎㅎ 운동’ 기획은 누가 했나? 청장이 직접 낸 아이디어인가?
“그렇다.”

‘ㅎㅎㅎ 운동’은 대전시민을 안전하고 행복한 대전으로 만들기 위해 '훌륭한 부모, 행복한 가정, 훈훈한 사회'를 만들자는 운동이다. 대전경찰청이 대전 지역 304개 기관 단체와 함께 펼치는 캠페인이다.

-기획통답다. ‘ㅎㅎㅎ 운동’엔 노래까지 있다. KBS 개그콘서트 멤버들도 참여했다는데 그들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내가 아는 분을 통해서 했다. 소녀시대가 만든 ‘하하하’라는 노래가 있다. 행사할 때 양해를 얻어 가사를 개사해서 사용했지만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승낙은 못 받았다. 그래서 작곡을 하기로 했고, 대전에 계신 분이 재능기부 차원에서 도움을 주셨다.”

-노래 반응은 좋은가?
“아직은 모른다. 그런데 중독성이 좀 있다고들 한다. 한번 들으면 자꾸 듣게 된다고 한다는데 결과는 더 봐야 할 것 같다.”

그런 캠페인 덕인지 대전지방경찰청은 경찰청이 전국 16개 지방청을 대상으로 실시한 ‘체감 치안향상도 조사’에서 1등을 했다. 주민들이 해당 지역 치안이 이전보다 얼마나 달라졌다고 느끼는지를 평가한 것이었다.

-대전경찰청이 1등을 한 이유가 있나?

“대전시민 153만 명 중 학부모가 45만이다. 이 분들 고민은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것과 안전하게 학교 다니는 것이다. 대전경찰은 학교 주변에 경찰관을 배치해 ‘1-2-3 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다. 교내외 폭력 추방, 무질서 추방, 불법 추방운동이다. 이게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본다.”

-대전 지역 학교폭력이 정말 줄었나?
“작년보다 37.4% 줄었다. 교육부가 학교폭력을 당했느냐 하는 피해 경험률 조사를 했다. 거기서도 작년 상반기엔 10%가 넘었는데 금년엔 2.5%로 나왔다. 4분의 1로 준 셈이다.”

치안 체감 향상도 1등한 대전지방경찰청

‘공원 안전화 시책’도 시민들의 치안 체감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대전경찰청은 주요 공원 36군데에 경찰관 2명씩을 배치하고 있다. 천변에서 산보하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위해 '자전거 순찰대'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시민 자전거 동호회도 참여, 경찰과 함께 치안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정 청장은 소개했다.

-대전경찰청이 1등 한 게 우연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경찰을 매일 학교에 내보내고 공원에 배치하기엔 인력 문제가 있지 않나?
"처음에는 '왜 안 하던 것을 하느냐?'고 불평들도 있었다. 그러나 청장인 나도 매일 아침 학교에 나가 폭력 예방근무를 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자전거 순찰대에 참여하는 걸 보고 불평이 수그러들었다. 학교가 달라지는 모습도 보였다. 과거엔 외면하던 학생들이 고맙다는 편지도 보내오고 어떤 학교에선 떡도 보내왔다. (고아원으로 보냈지만)."

대전경찰청과 각 경찰서의 내근 간부들은 전부 ‘학교폭력 예방’과 ‘공원 안전화’를 위한 근무에 동원되고 있다. 자발적인 참여라고 하지만 오래 지속되긴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인력이 문제다. 대전청의 경우 전국 평균의 70% 수준으로 경기도 다음으로 인력이 부족한 상태다. 정 청장은 정부가 경찰 인력 2만 명을 충원할 때 좀 더 보충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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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인사 기준 마련하는 중.. 청탁하면 무조건 탈락

-어느 조직이든 인사가 중요하다. 정 청장의 인사 기준과 원칙은 무엇인가?
"인사에서 중요한 것은 최대 공약수, 즉 모든 조직원들이 합리적이고 공정하다고 인정하는 공약수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 기준이 자의적이어서는 안 된다. 기준은 사전에 공개할 예정이다. 지금 만들고 있는 중이다. 또 인사 과정에서 지휘관의 자의성이나 외부 청탁이 반영되어선 안 된다. 나는 어디를 가든 청탁하는 사람은 우선 배제한다. 충남청장을 할 때도 청탁 않고 가만히 있으면 승진했을 텐데 (청탁하는 바람에) 안 된 사람이 있다. 결과를 공개했을 때 '그 사람이 승진되었다면 불만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결과의 공정성도 중요하다."

대전청은 하반기 인사는 안 하기로 했다. 정 청장은 “인사는 1년에 한번이면 된다"고 했다. "올해 말 인사의 기준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가안(假案)을 만들고 이에 대한 의견을 들어 보완한 뒤, 인사 기준을 확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청장이 생각하는 인사의 중요 기준은 있을 것 아닌가?
“인사는 크게 2가지(승진과 전보)다. 승진인사는 일정한 성과를 냈느냐, 전문성을 갖추고 있느냐, 인간성이 괜찮은가, 무슨 일이든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냐 마지못해 하는 사람이냐를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보 인사는 보직의 문제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더 봐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수사(搜査)라고 하면 형사법 시험을 봐서 평가할 것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인권침해 같은 것도 없을 것 아닌가?”

인사의 3가지 기준 '성과 전문성 열정'

-전문성의 구체적 평가 기준이 있나?
“정보나 경비 부서는 집시법으로, 수사 부서는 형사법으로 평가를 하고 있다. 부서마다 나름대로 기준이 있다. 그리고 본인이 업무를 개선한 게 있는지, 예를 들어 기획 분야라면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도 볼 것이다.”

-페이스북에 현대차 시위를 막으러 갔던 부하직원들이 다친 것과 관련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는 것은 범죄'라는 말을 남겼다. 정 청장은 소신 있게 발언하는 사람인가?
“경찰도 어떤 경우에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이 용기라고 본다. 바르고 옳은 것을 추구하는 용기다. 뭔가 했다가 개인적으로 불이익을 볼 수 있다 해도 옳은 길이라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지휘관으로서 불법폭력 사태에 대해 한 마디도 안 한다면 비겁한 것 아닌가?”

정용선 청장은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해서는 엄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때론 너무 강성 아니냐는 얘기도 듣는다고 한다. 2003년 당진경찰서장 시절 겪었던 화물연대 파업 사건은 그가 어떤 경찰인지를 말해주는 일화다.

화물연대 파업 차량 240대 혼자 막아낸 '악바리 서장'

당시 화물연대 파업으로 공권력이 무력화되다시피 했다. 경찰청에서는 불법행위를 방치해선 안 된다면서도 불상사를 우려해 공권력 투입을 주저했다. 그때 화물차 240대의 상경을 막으라는 지시가 정용선 당진경찰서장에게 떨어졌다. 기동대도 안 주고 막으라는 지시만 내려온 것이다. 정 서장은 밤에 서장 차를 몰고 가 송악 톨게이트를 가로막고 혼자 버텼다.

나중에 화물연대 대표가 정 서장에게 물었다. “그 밤중에 서장 혼자 있다가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랬느냐?” 정 서장은 "시위대가 뚫려서 망신을 당하나 시위대에 얻어 맞고 당하나 마찬가지다. 시위대를 막다가 망신당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는 불법 시위에 대해선 엄정대처를 주장하면서도 농민집회 등엔 유연한 입장이었다.

-정 청장은 ‘곱상한 외모’만 보면 공부만 잘해서 경찰 간부가 된, 문약(文弱)한 경찰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외모와는 다른 것 같다. 경찰대에 간 이유가 있나?
“시골에서 자랐다. 어린 마음에 공부를 안 하면 부모님처럼 힘든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집안이 어려워서 경찰대를 갔다. 경찰대학의 ‘대학’ 두 글자만 보고 들어갔다. 승부욕도 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문과였으나 수학을 잘했다.”

   
 



고등학교 땐 수학을 잘했던 승부욕 강한 학생

-경찰대 동기 중에서 치안감을 가장 빨리 달았다. 비결이 있나?
“2가지 잣대를 가지고 공직생활을 하고 있다. 하나는 양심과 실천이고, 또 하나는 존중과 배려다. 부서나 관서의 입장보다 대한민국(국가적인)이나 경찰청장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시책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필요하면 (상부에) 직언도 했다. 공직자로서 때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직언을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미움을 받은 적도 있었다고 보지만 (그래도 위에서) 그런 부분들을 잘 받아주신 것 아닌가 한다.”

성실함도 그의 고속 승진 비결 같다. 요즘 그의 입술은 부르터 있다. 어제 아침엔 새벽 3시 50분에 일어나 '트위터의 제왕' 이외수에게 ‘ㅎㅎㅎ 운동 노래’를 보내 리트윗을 부탁했다. 그는 ‘워크홀릭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업무에 집중하는 타입이다.

   
정 청장의 부탁으로 소설가 이외수씨가 리트윗 해준 ‘하하하 송’.

-우리 경찰이 개선할 점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경찰은 굉장히 우수하고 열심히 한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공무원 생활을 똑같이 30년 해도 교원이나 일반부처 공무원과 비교했을 때 경찰 공무원들은 퇴직금이 작다. 직급과 보수가 연동되니까 그렇다. 눈비 맞아 가면서 고생하고 때론 아스팔트 위에서 땀 흘려가면서 근무복이 몇 번 젖었다 말랐다 할 정도로 고생한다. 처우를 개선해주어야 직원들이 서로 자긍심을 갖고 일한다. 적정한 인력이 있어야 서비스도 치안활동도 더 잘 해나갈 수 있다. 다행히 정부가 2만 명 증원과 처우개선을 약속했기 때문에 기대하고 있다.”

-경찰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개개인으로서는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시민의 심리나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대안을 마련할수 있어야 한다. 물론 국민 생명과 인권을 귀하게 여겨야 하며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도 경찰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다.”

정 청장은 관공서나 병원 등의 장애인 주차장 법규가 잘 지켜지지 않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났다. “장애인 전용 주차장에 장애인 아닌 사람이 갖다 대는 바람에 병원에 예약을 해놓은 장애인들이 차 댈 곳이 없어 2시간씩 기다렸다는 얘기도 들었다. 간담회에 가면 장애인들이 그런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눈물로 하소연한다.”

장애인 주차장은 경찰에서 딱지를 뗄 수 없어서 해당 기관에 고발하기도 한다며 법규 준수를 당부했다.

정치 할거냐? 물었더니 “저는 술을 안 먹는다”

정 청장은 '정치 한다는 소문이 있다'고 하자 "저는 술을 안 먹는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경찰청장이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역사를 보고 국민을 보고 일하는 게 공직자의 올바른 자세다. 자신의 '기회'를 생각해서 조직을 흔들리게 해선 안 된다."

그는 지금은 대한민국 경찰을 진정으로 존경받는 경찰로 만들고 싶은 '뼈속까지 경찰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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