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드로 다빈치 최후의 만찬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출생과 죽음까지도 밥 속에 녹아있다. 밥에는 온기가 있다. 따뜻한 밥을 나누면 사람 사이에 정이 생기고 마음이 열린다. 언제나 큰일은 밥을 동반한다. 결혼식, 장례식, 돌, 상견례 등 크고 작은 일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축하와 위로를 전한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집안의 대소사가 생기면 곳간을 열어 음식을 이웃들과 나누며 기쁨과 슬픔까지 함께 나누지 않았던가.

뿐만 아니라 마지막을 정리하는 것도 밥의 역할이다. 입대 전, 밥 한 끼. 이별을 앞둔 연인의 밥 한 끼, 졸업식 때 밥 한 끼. 먼 곳으로 떠나 전, 밥 한 끼. 사람과 헤어질 때 우리는 마지막으로 밥을 먹는다. 밥 한 끼에 불과하지만 그 밥상에 담긴 의미는 크고 엄숙하기도 하다.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인류가 기억하는 가장 슬픈 밥상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예수는 열 두 제자와 밥 한 끼 먹기로 한다. 죽음을 예감한 예수는 제자들에게 만찬을 준비하라 이르고 제자들의 발을 손수 닦아주면서 경건하게 마지막 밥 한 끼를 준비했다.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누가복음 22장 16절)”는 기록이 있다. 예수는 왜 이토록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밥 한 끼’ 하기를 원하고 원했던 것일까.

이 자리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준 뒤 자신의 살과 피라 말하고 이 떡과 포도주를 먹어야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요한복음6장 53절). 부모와 자식을 이어주는 증표는 살과 피이기에 그 살과 피를 나눌 수 있는 밥 한 끼를 예수는 그토록 원했던 것이다.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던 예수의 입장에서는 이 밥 한 끼가 얼마나 중요했을까. 마지막 밥 한 끼가 결국 제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의식이었기에 더욱 소중했으리라.

우연의 일치인 듯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에 수도원 식당 벽면에 그려졌다. 예수의 최후의 식사가 수도승들이 매일 밥을 먹는 수도원의 식당에 위치한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그림을 그리던 당시 전통적인 벽화는 화벽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그 위에 덧칠하며 급하게 완성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레오나드로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색칠한 벽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덧칠하는 방식으로 그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오랫동안 그림을 바라보고 물감이 마르길 기다렸다가 다시 그리는 동안 레오나드로 다빈치는 예수와 열 두 제자들의 습성 하나하나 파악하며 상상했을 것이다.

이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은 템페라 기법(계란 노른자와 물감을 섞어서 그리기도 한다)이다. 노른자가 섞인 벽화는 빨리 훼손되었고 여러 번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최후의 만찬>을 훼손시킨 또 하나의 원인은 습기로 꼽힌다. 1796년 나폴레옹 군대들이 이탈리아를 점령했을 때 벽화가 있는 수도원을 마구간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습기가 많아 썩기 시작한 벽을 보수작업 하면서 원작을 많이 손상시켰다.

훼손을 넘어 <최후의 만찬>은 폭격을 맞으며 그 시련의 정점을 찍는다. 예수의 마지막 모습을 벽화 속에 남겨두려는 시도 또한 예수의 일생처럼 쉽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1943년 2차 세계대전 당시 공중 폭격으로 식당 자체가 무너져 내리기도 했는데 한 수도장이 벽화 위에 천을 걸쳐 치명적인 훼손을 막기도 했다.

탈도 많고 사연 많은 <최후의 만찬>은 1977년 이후부터 보수 작업과 청소작업을 단행하여 깨끗하게 복원됐다. 그러나 레오나드로 다 빈치가 구현했던 색채와 본질은 복원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크다.

비록 복원된 작품이지만 그 안에 서린 기품과 감동은 줄어들지 않는다. 최근 훼손됐던 국보 1호 숭례문이 복원됐다. 새로운 숭례문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국보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오랜 시간 견디며 살아남아 준 예술은 후대에겐 건강한 밥이다. 특히 무한경쟁의 틈 속에서 허전한 내면을 살찌우는 보이지 않는 밥. 자본주의에 쫓겨 예술적 빈혈을 앓는 현대인들에게는 더욱 필요한 영양밥이다.

마음 속 순수한 영혼의 갈증을 태워주는 <최후의 만찬>

가족이 한 밥상에 앉기도 힘든 요즘이다. 아침은 아침대로 저녁은 저녁대로 각자의 스케줄에 쫓겨 바쁘다. 특히 우리 집은 아이가 떨어져 있어서 가족이 모여 앉아 밥을 먹는 것은 더욱 어렵다. 얼마 전 천명관의 소설을 영화화한 <고령화 가족>에서 가슴에 오래 남은 장면이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화 속 가족이 된장뚝배기에 각자 숟가락을 푹푹 찔러 찌개를 떠먹는 장면이었다.

한 가족이 밥을 먹으며 정을 나누는 모습은 우리만의 문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는 예수와 제자들이 밥을 먹으며 마지막 정을 나누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표면적으로는 마지막 밥상이지만 천재 화가라 불리는 레오나드로 다빈치는 그 안에 흐르는 슬픔의 정서 또한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자들의 표정과 모습이 제각각 다르다. 그림 속 주인공들은 한 자리에 있었지만 관심은 각각 다른 곳에 있다.

이는 인상학을 연구했던 레오나드로 다 빈치의 밝은 관찰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표정과 행동으로 인물의 성격을 파악하는 인상학을 통하여 레오나드로 다빈치는 사람의 성격과 나이에 따라 서로 다른 표정과 행동을 그리기 위해 인물들을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하나의 사건을 대하는 사람들의 다른 풍경, 한 자리에 있어도 인간은 각기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고 있었다.

때문에 <최후의 만찬> 그림 속 인물은 각자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 레오나드로 다빈치는 베드로, 유다, 예수 등 그림 속에 등장하는 한 인물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그림을 그려 나갔다. 세밀한 부분까지 그려내기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이 고뇌했는지 그림 속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림 실력과 디테일한 묘사만으로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훌륭한 화가로 존경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던 다양한 재능 때문이다. 건축, 천문학 등 모든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자신의 그림에 새로운 기법과 표현양식을 추가하고 있어 그의 그림은 다른 그림에서 볼 수 없는 구도와 상상력이 묻어난다.

그만의 독특한 구성은 후대에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최후의 만찬>은 식당의 건물 구조를 고려해 그린 것이기 때문에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이 작품을 만들 때 바닥에서 4미터 높이에서 스케치를 했는데 그가 작업한 높이인 4미터에서 최후의 만찬을 바라보면 그림의 중심에 있는 예수의 머리 부분으로 원근선이 모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낮은 위치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실제 공간과 그림 속의 공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는 레오나드로 다 빈치가 그림의 정면을 마치 사람들이 무대를 보는 것처럼 구성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을 경사지게 그려 식탁의 뒷면을 볼 수 있도록 했으며 원근선을 조정해 깊이감을 강조했다. 또한 수도원의 식당 왼쪽에 있는 실제 창문에서 빛이 비추는 것처럼 처리해 그림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그림을 단순히 그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이어지는 또 하나의 세계로 인식했던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세계관을 잘 드러내 주는 대목이다.

예술은 따뜻한 위로와 치유를 이루는 밥이다. 밥과 함께 나누는 어머니의 자애로움과 연인이 주는 지고지순의 헌신이 밥 한 숟가락에 담겨 있다. 전선에서 낙오된 배고픈 병사에게 주는 한 덩어리 주먹밥과 자장면이 먹기 싫다고 자식에게 퍼 부어 주시는 어머니의 무한 사랑, 가족의 밥 한 끼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바로 밥 한 끼에 담겨있다. <최후의 만찬>에서 밥이 주는 따듯한 감성은 우리 마음 속 부족한 영양분을 채워준다. 작은 말 한 마디에도 쉽게 흔들리는 요즘 마음의 좌표, 예술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조금 더 건강해지고 있다.

   
 
백영주 갤러리봄 관장

갤러리봄 관장
디트뉴스24 독자위원
캐나다 험버컬리지 Art History 전공
한양대  대학원 미술학 박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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