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김갑수] 충청권 현안 챙기다 욕먹는 것도 영광이다
강창희 국회의장, (자료사진) |
‘헌정사 64년 만에 나온 충청권 출신 입법부 수장에 대한 지역의 요구와 기대는 정당한 것일까, 아니면 무리한 것일까?’
강창희 국회의장에 대한 비판조의 기사를 쓸 때마다 느끼는 고민 중 하나다. 해머와 최루탄이 등장했던 18대 국회와는 달리 무난하게 흘러가고 있는 19대 국회임에도 강 의장에 대한 충청권의 기대감은 조금씩 실망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가장 큰 이유는 지역 현안에 대한 강 의장의 역할 부재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강 의장이 충청권 현안에 손을 놓고 있진 않겠지만 ‘보이는 역할’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6월 국회를 앞두고 고조되고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부지매입비를 비롯해 도청이전 특별법 개정안과 세종시 특별법 개정안 등 충청권 입법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벨트 부지매입비의 경우 미래창조과학부가 전액 국고부담으로 예산을 편성하더라도 기획재정부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적어 강 의장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게다가 도청이전 특별법 개정안의 경우 대전 중구를 지역구로 둔 강 의장이 대표 발의한 것이어서 앞장서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27일 대전시의회 의장과 충남도의회 의장 등이 강 의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도청이전 특별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는데, 강 의장의 입장에서는 어안이 벙벙해졌을 법하다.
거꾸로 보면 강 의장이 자신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대전시당 위원장인 박성효 의원(대전대덕)이 강 의장과 박병석 부의장 주축으로 충청권 현안 해결을 위한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던 것에 대해 강 의장 측이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해는 되지만 서운하다는 지적이 많았었다.
충청권 의원들 사이에서도 강 의장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충청권 출신 국회의장으로서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줘야 되는 것 아니냐?”거나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도 불러서 과학벨트 문제를 짚어야 하는데 뭐하고 계신지 모르겠다”는 등이 그것이다.
강 의장 주변에서는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대놓고 충청권을 위해 나서다 보면 역풍을 맞을 게 뻔한데 그럴 순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충청권을 위해서 역할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와 눈길을 끈다. “과거 영남 출신 국회의장들은 표시 안 나게, 때로는 역풍을 무릅쓰더라도 지역을 챙겼는데, 충청권 출신 국회의장이 처음이다 보니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개인적으론, 강 의장이 지난 1년 간 보여준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여당엔 한 번 듣고, 야당엔 두 번 듣고, 국민에겐 세 번 묻겠다”는 강 의장의 원칙 역시 충청인의 남다른 기질을 잘 대변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충청인의 요구와 기대를 채우기 위한 강 의장의 노력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국회의장이 기획재정부 장관을 불러 과학벨트 부지매입비 문제를 해결하라고 다그쳤다는 이유로 중앙언론의 비판을 받더라도, 충청권 출신 정치 거물이자 원로로서 한 번쯤 무릅써야 할 일 아닐까 싶다.
게다가 과학벨트는 충청권의 현안이 아니지 않은가? 처음 먹어 보는 고기일지라도 씹어는 봐야 한다. 그래야 다음 사람이 맛을 음미하며 삼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