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김갑수] '충청의 맹주' 되려면 신뢰부터 회복해야

  지난 3월 초 부여청양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이완구 전 충남지사. (자료사진)  
지난 3월 초 부여청양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는 이완구 전 충남지사. (자료사진)

직업상 여러 선거를 관전해 봤지만 이번 4.24 부여·청양 국회의원 재선거처럼 재미없는 경우는 처음이다. 새누리당 후보인 이완구 전 지사의 당선이 너무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이미 이 전 지사의 원내 진입을 기정사실화하며 충청권 정치지형의 변화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광역단체장 출신에 3선 의원이라면 최소한 당권주자 이상의 무게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역 정치권에서는 기대 못지않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충청 기반 정당이 사라진 이후 지역의 목소리를 충실히 대변할 만한 정치 세력과 정치인에 대한 갈증이 있어왔던 터라 이 전 지사의 등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 전 지사 스스로가 그동안에 보여줬던 스타일을 바꿔야 할 거란 얘기도 나온다.

지역 정치권, 이완구 원내 진입에 기대와 우려의 시선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New 이완구 플랜’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내용인 즉 이 전 지사에게 ‘충청의 좌장’을 맡기기 위해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아직 맛보지 못한 ‘충청도 정권 창출’이라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 전 지사 스스로 노력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신뢰 회복’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기자가 볼 때 이 전 지사가 신뢰를 잃게 된 계기는 두 가지다.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하며 지난 2009년 12월 도지사직을 던졌을 때 일부 언론에서는 “사퇴가 아닌 탈당을 했어야 한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당시 기자는 동의하지 않았다.

만약 이 전 지사가 탈당을 했더라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내의 강력한 저지선이 흔들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전 지사 역시 선진통일당의 대표가 됐을지 모르지만 그 이상을 노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가진 사퇴 기자회견 이후 충남도청에서 벌어진 상황은 이 전 지사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사퇴를 만류하는 여러 단체들의 집회는 이 전 지사의 결단이 충청인의 의분(義憤)과 결기(決起)에 의한 것이 아닌, 개인의 정치적 자산 쌓기로 비쳐진 측면이 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대전·충남 곳곳에서 진행된 출판기념회도 이 전 지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됐다. “어디로 출마하든 자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준 반면 “정치인이 너무 잰다”는 비판과 함께 해당 지역의 한나라당 인사들 사이에서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 사실이다.

‘신뢰 상실’ 자초한 측면 커…‘New 이완구 플랜’이 필요한 이유

이 전 지사가 다발성골수종으로 19대 총선 불출마를 측근을 통해 밝혔을 때 이를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던 것도 이런 사정들 때문 아닌가 싶다.

이 전 지사 스스로 “아플 때는 ‘진짜 아프냐?’고 하고, 다 나았더니 ‘정말 괜찮냐?’고 한다”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불신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듯하다.

그런 이 전 지사가 10일 새누리당 대전시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부여·청양 공약 발표와 함께 “과거 김종필 전 총재가 기록했던 득표율 80.99%를 깨는 게 목표”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장수가 전장(戰場)을 이탈해 나들이를 나온 모양새일 수도 있다.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은 좋으나 선거는 선거다.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옷깃을 여미는 듯한 자세가 기본이다. 선거를 기록갱신의 장으로 언급한 것은 경솔하며 오만으로 비쳐지기 쉽다.

이 전 지사가 진정 ‘충청 좌장’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앞뒤 재지 않고 “나를 따르라!”고 외친다면 ‘튀는 돌’이 될 뿐이다. 이 전 지사와 머리를 맞대야 할 충청권 의원들 역시 절대 만만한 인물들은 아니다.

이 전 지사의 역할과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기자 역시 인정하고 기대하지만, ‘New 이완구 플랜’을 통한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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