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법 세번째 공보판사 임명.."이완구 김신호 사건 기억"

   
벌써 세번째 공보업무를 맡게 된 대전지법 장동혁 판사. 장 판사는 언변과 외모때문에 정치적인 행보를 예상하는 시선이 많지만 정작 본인은 손사래질을 쳤다.

대전지법 공보관에 임명된 장동혁 판사는 공보업무가 처음이 아니다. 장 판사는 2011년 공보관을 지냈고 앞서 2006년에는 형사 합의부 판사로 있으면서 형사 사건에 제한적인 공보를 맡았다. 사실상 세번째 공보관 업무를 맡은 셈.

장동혁 판사, 대전지법 세 번째 공보관

장 판사는 6일 오전 기자와 만나 "언론인들과 서로 믿고 소통하는 게 제 소신이자 철학"이라며 "앞으로 언론인들과 신뢰를 갖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장 판사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1969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장 판사는 대천고를 졸업했다. 고교 2학년초까지는 그저 그런 학생이었지만 2학년 2학기 때부터 공부에 대한 마음을 먹고 학업에 매진해 3학년때는 전교 4등안에 들었다고 한다. 4등안에 있던 동기들이 서로 도와주며 공부를 했고 그 결과 장 판사와 함께 공부한 친구들 대부분 서울대에 진학하는 기쁨을 맛봤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장 판사의 선택은 사법시험이 아니었다. 법학과가 아닌 불문과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탓에 일찍 취업전선을 희망했던 장 판사는 행정고시를 준비했고 4학년때인 1991년 행시(35회)에 합격했다. 교육 분야 행시에 합격한 그는 첫 발령지인 부여고에서 1년 동안 근무한 뒤 군대를 전역하고 교육부로 발령됐다.

하지만 장 판사는 미련이 남았다. 어려서부터 법조인의 꿈을 갖고 있던 그는 가정 형편때문에 법학을 포기했었지만 더 늦기전에 사법시험에 도전하려는 마음먹고 1999년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이해 8월부터 사시를 준비했고 2000년 3월 사시 1차 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이듬해인 2001년 2차 시험도 합격(사시 43회, 연수원 33기)하면서 장 판사는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된다.

2004년 대전법원에 발령된 그는 민사와 형사, 행정, 가사, 소년소녀 등 다양한 재판을 섭렵했다. 특히 장 판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형사합의부인 대전지법 제1형사부에 근무할 때다. 당시 2006년 지방선거가 끝난 뒤 잇따라 선거사범이 기소됐고 선거사범 재판부인 제1형사부에서 주심판사로 많은 선거 사건을 경험했다.

이완구 김신호 선거법 재판 담당했던 장 판사

대표적인 사건이 이완구 전 충남지사와 김신호 대전시교육감, 이기봉 전 연기군수 사건 등이었다. 이들 사건은 모두 지방선거 등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것으로 배석판사이던 장 판사는 이들 사건의 주심을 맡아 피고인들을 심문했었다.

장 판사는 당시 사건과 관련해 "힘들었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다. 많이 배웠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장 판사는 가정지원으로 옮겼다가 다시 대전지법으로 발령된 뒤 2011년에는 법원 공보를 맡기도 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장 판사는 많은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아쉬움 때문이다. 비록 가정 형편 때문이지만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법조인의 길을 잠시 접어두고 행정고시로 선회했다가 법조인이 된 10년이 장 판사 스스로에겐 "10년을 돌아와 느끼는 회한이 많다"고 털어놨다.

장 판사는 "용기있게 선택했더라면 빨리 올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너무 늦게 오려고 했던 방향으로 오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면서도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동안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그만두는 그날까지 열심히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장 판사는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정치적인 계획에 대해 "항간에 제가 정치적인 꿈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제 성격을 모르는 것 같다"며 "정치가 제 성격과는 안 맞는 것 같아 아직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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