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박근혜 정권 창출해 놓고 대우 못 받는다면?

   
25일 인수위 경제1분과 업무보고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사진: 인수위 홈페이지)
18대 대선이 마무리 된 지 한 달 여 동안, 기자는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충청인의 표심을 어떻게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심해 왔다. 이명박 정권 내내 세종시 수정안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등으로 겪어온 충청인의 고통이 이번 대선 결과와 도저히 매칭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됐다. 그것은 바로 “충청인에게 있어, 이번 대선은 ‘정권승계’가 아닌 ‘정권교체’였다”는 것이다.

복기해보자. 역대 정권 중 이명박 정권처럼 충청인과 악연을 이어온 정권이 또 있을까? 12번이나 약속했던 행정중심복합도시 원안추진을 뒤집질 않나, 자신이 직접 공약한 과학벨트 충청권 건설 역시 말을 바꾸질 않나, 돌이켜 보면 정말 힘든 5년이었다.

충청인의 대선 표심은 ‘정권승계’ 아닌 ‘정권교체였다

최근 정부 세종청사에서 한 이 대통령의 발언 역시 기가 차다. 세종시 수정안으로 인해 자족기능 확충이 늦어진 것에 대한 본인의 잘못을 시인하지는 못할망정, 비효율 문제를 언급하며 “이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말한 것은 황당할 따름이다.

이에 반해 세종시 수정안에 맞서 원안 추진을 주장해 온 박근혜 당선인은 충청인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이 사실이다. 그 스스로 “세종시에 정치 생명을 걸었다”고 말한 것 역시 일리 있는 얘기다.

이를 두고 민주통합당이 “숟가락만 얹었다”고 공격했으나, 집권여당의 실질적인 소유주로서, 현직 대통령과 완전히 등을 지는 것은 부담이 컸을 수밖에 없다. 그 정도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얘기다.

때문에 충청인들은 이번 대선에 앞서 심각한 고민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이 한 짓을 생각하면 반드시 심판을 하긴 해야 하는데, 과연 누가 적임자인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후보를 밀자니 어딘지 모르게 먼 느낌을 받았을 수 있다. 신행정수도를 공약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연민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로 인해 10년 간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면 아찔했을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 야당 후보였더라면 충청권에서 몰표 나왔을 것

그러다보니 대전의 경우처럼 거의 절반씩 차지하는 결과가 도출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주요 지방지들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정권교체에 대한 바람이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담컨대 박 당선인이 야당 후보였더라면 충청권에서 몰표가 나왔을 것이다.

세종시민들 역시 무엇이 진정한 정권심판인지 헷갈렸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난 19대 총선에서 이해찬 후보를 당선시킨 것과 같은 맥락일 수도 있다. 두 선거 모두 정권심판의 의미와 함께 명품 세종시 건설에 대한 기대감이 담겨 있을 거란 얘기다.

이처럼 “충청인의 대선 표심은 정권교체였다”는 전제를 달았을 때, 박 당선인에 대한 실망감의 실체와 정도가 좀 더 쉽게 다가오게 된다. 한 마디로 “정권을 만들어 놓고 제대로 된 대우조차 못 받는 신세”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분이기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에서부터 최근 국무총리 지명에 이르기까지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은 충청인이 볼 때 이도 저도 아닐 수밖에 없다. 세종시 망국론을 폈던 독설가가 인수위 대변인을 맡은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성과 내고도 밥 못 찾아 먹을 판…“팬클럽 가지고 대선 치르지”

김용준 후보자의 본적이 충남 부여라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 것도 자존심이 용납지 못하는 대목이다. 충청인 누구나 “그래, 바로 저 사람이야!”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단 한 사람이라도 발탁됐는지 의문이다.

“성과를 이뤄내고도 제 밥을 찾아먹지 못해서는 안 된다”(홍문표 충남도당 위원장)는 얘기는 그런 면에서 절박하게 다가온다.

새누리당 일각에서 논공행상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고, 박 당선인 역시 “낙하산은 없다”고 말한 것을 놓고 지역 정치권 인사는 “그럴 바엔 팬클럽만 가지고 대선을 치르지 그랬냐?”고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25일 광주를 방문한 황우여 대표의 발언은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당직 배분에 있어 호남의 현장에 있는 인재들을 발굴, 배치하겠다”는 것인데 충청인은 그야말로 영남에 밀리고, 호남에 치이는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러다가 또 다시 “대통령 잘못 뽑았네”라는 얘기가 나올지 모르겠다.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은 이번 대선에 대한 충청인의 표심을 정확히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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