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는즐거움] 리안의

아무리 재미있어도 그렇지 어제 본 영화를 오늘 또 본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 한 번 보면 이미 알 만한 내용은 다 알게 되는데 무슨 새로운 재미가 있다고 같은 영화를 학교공부 복습하듯이 반복해서 보겠는가. 그런데 또 봐도 재미있고 또 봐도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 물론 그런 영화는 흔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영화라고 해서 실제로 반복해서 보는 관객도 드물다. 모든 게 처음 시작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새해 정월 초하루에 유별난 소문도 없이 조용히 개봉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리안, 2013, 미국)는 예상을 벗어나 정말 2013년 신년부터 반복관람의 매혹으로 다가왔다.

극장의 조명등이 꺼지고 스크린에 영화타이틀이 뜨면서 몽롱한 환상을 예고하는 듯한 기묘한 색감의 동물원 정경이 스틸사진처럼 스쳐갈 때까지만 해도 그저 아이들의 동심을 기분좋게 자극하는 예쁘고 고운 동화적 풍경을 예상했다. 주인공인 인도소년 파이의 이름에 얽힌 사연이나 파이가 나고 자란 동물원이 팔려나가면서 그의 가족이 부득불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된 사정을 쫓아가면서도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정도의 다채로운 성장담이 펼쳐지리라 예측했다.

그런데 어느 틈에 시선은 스크린의 바다 위 물결을 타고 함께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폭풍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던 화물선이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발음을 내며 세차게 밀어닥치는 폭풍우와 높게 치솟는 파도 속에서 속절없이 휘둘린다. 가족이 잠들어 있는 동안 혼자 잠이 깬 호기심 많은 우리의 주인공 파이는 바다폭풍을 만만히 보지 말라며 경고하는 형의 목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갑판위로 나가 깜깜한 밤바다가 바람과 뒤엉켜 펼치는 거센 파도의 향연을 신이 나서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으로 파이는 변변한 작별인사도 없이 가족과 영영 이별을 하고 만다. 선원들의 손에 떼밀려 엉겁결에 올라탄 구명보트에 몸을 싣고 애타게 가족의 이름을 부르다가 그는 결국 바다 아래로 둔중하게 가라앉는 화물선의 모습에 망연자실한다. 그는 이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홀로 남게 된 것은 아니다. 동물원의 어린 시절 그 맑은 눈빛 때문에 맹수인지도 모르고 소통을 하려했던 호랑이 리차드 파커가 구명보트에 동승했다. 가뜩이나 망망대해에서 혼자 버티기도 힘든 마당에 조금만 방심해도 자신을 먹잇감으로 알고 달려들 호랑이가 떡하니 구명보트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바다에 빠져 죽지 않으면 짐승의 허기를 채울 고깃덩이가 되어야 할 운명에 놓인 파이로서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재수 옴붙은 절체절명의 조건 아래서 그래도 파이는 절망보다 생존의 희망을 선택한다.

구명보트 짐칸에서 우연히 발견한 생존지침서를 손에 꼭 쥐고 파이는 조금씩 조금씩 상황에 적응해가며 두려움의 대상인 리차드 파커와 생존의 공간을 나눠쓰기에 이른다. 그런 와중에 언제고 눈앞에서 사라져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순간이 도래한다. 파이는 물고기를 잡으러 물에 뛰어들었다가 구명보트에 오르지 못하게 된 스타일 구긴 호랑이를 배 위에서 바라보며 득의의 미소를 짓지만 이내 연민의 마음으로 고민한다. 구조의 손길로 호랑이를 배에 태우고 이 마음여린 소년은 먹을거리를 작은 뗏목에 모두 옮겨놓은 채 스스로 다시 진퇴양난의 자리로 돌아온다.

   
▲ 리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바로 그 지점에서 관객의 시선을 온통 환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고요한 밤바다의 정경이 펼쳐진다. 무수한 작은 별빛들이 깨알같이 흩어진 유리조각처럼 반짝거리는 하늘, 그런 하늘을 저 위로 마주 보면서 바다는 호수처럼 고요히 정적을 품고 깊은 내면 어딘가에 숨기고 있었을 푸른빛들을 조금씩 수면으로 떠올려 내보내기 시작한다. 푸른빛 바다를 더욱 푸른 빛깔로 채우면서 드넓은 하늘보다 더욱 광활하게 빛의 물결 속에 흠뻑 젖어들게 하는 숱한 해파리떼.

가족을 잃은 슬픔과,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의지할 수 없게 되면서 겪는 극심한 고독과, 한 순간도 생명을 보존하려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칼끝같은 위기들 사이의 어느 먼 지점. 이 모든 것들을 숨쉴틈 없이 견뎌오고 견뎌가는 어린 소년에게 휴식의 선물처럼 다가온 그 장면을 어찌 관객은 감탄의 시선으로 보지 않을 수 있을까?

숨막힐 듯 눈부시게 다가온 장면은 그 자체만을 뚝 떼어낸 채로 관객의 시선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장면이란 거기에 이르기까지 영화가 다채롭게 전개해온 이야기와 이미지들이 모이고 쌓여서 좀 더 높은 밀도감을 이루며 시간의 정점을 마련했을 때의 충만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를 다시 한 번 관람하고 싶었다면 바로 그 눈부신 장면을 처음부터 다시 하나의 과정으로서 체험하고 싶었다는 얘기와 같다.

영화 보는 즐거움은 첫 번의 관람으로 느닷없이 생기고는 한다. 그리고 그뿐인 경우가 많다. 재미있는 영화를 두 번 보고도 같은 정도의 재미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첫 감흥의 되살림, 첫 감흥이 도달하지 못한 또다른 영화의 묘미들을 발견하는 쪽이라면 반복관람은 눈앞의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영화 보는 즐거움의 첫 물꼬는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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