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상덕 전 서산시 자치행정국장 ‘공무원 생활기’

 

   
 정상덕 전 서산시 자치행정국장. 2012년 6월말 명예퇴직으로 36년 간의 공무원생활을 마감했다.

“이런 사람에겐 공무원 매력있는 직업”

‘9급에서 3급까지 대한민국 공무원 36년사(史)’

정상덕 전 서산시 자치행정국장이 36년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최근 펴낸 ‘공무원 생활기(記)’다. 지금쯤 퇴직하는 연배의 공무원들이 겪어온 공직의 삶이 녹아 있다. 그를 만나 지방공무원의 애환과 보람을 들어봤다.

-36년 공무원 생활한 거 후회는 없나요?
“없죠. 공무원은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지방공무원도 권한이 많아요. 그 권한을 잘 활용하면 보람있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직업을 선택하라고 해도 공무원 할 겁니다.”

-공무원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했나요?
“1976년 서산군 부석면사무소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3년 만에 군청 본청에 들어갔더군요. 예전에 읍면에서 군청으로 들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하던데.
“이강호 면장님이라고 군 출신이 계셨는데 저를 굉장히 잘 보셨어요. 일을 시켜보고선 가는 곳마다 칭찬을 하셨어요.”

-그 분이 군청 가서 칭찬을 하니까 군에서 뽑아 간 거군요?
“그런 셈이죠.”

본청의 텃세 “군서기와 면서기는 종자가 다르다”

-군청에 처음 들어갔을 때 계장 한 분이 쌀쌀맞게 굴었는데, ‘신참 길들이기’였나요?
“당시에는 면서기와 군서기는 ‘종자’가 다르다고 했어요. 읍면에서 군청에 전입한 공무원은 얕잡아보는 분위기가 심했죠. 본청 텃세가 심했어요. 까다롭게 구는 분도 있었구요.”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면에서 들어가니까 다들 누구 백으로 온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복지계장님 하시던 분도 처음엔 쌀쌀맞게 대하더군요. 내가 그만 둘 각오까지 하면서 당당하게 나가니까 오히려 나를 경계했어요. 그러다가 그 분과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인사 담당자에게 잘 말해주겠다며 돈을 요구한 공무원도 있었다면서요.
“나중에 보니 그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공무원 사회가 다 그렇게 부패한 것은 아니죠. 지금도 공금을 유용하는 공무원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었던 겉 것 같아요.”

-예산부서 과장님에게 면박을 당한 이유는 뭡니까?
“지금은 전자문서로 결재를 받지만 당시는 컴퓨터가 없어 결재판을 들고 다니면서 회계부서나 예산부서의 협의를 받아야 예산을 지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군청에 올라와서 예산부서에 가면 그렇게 면박을 주고 그랬어요. 자기한테 인사를 소홀히 하는 줄 알고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국장이 펴낸 36년 공무원생활기(記). 면사무소 9급공무원으로 시작해 3급까지 올랐던, 지방공무원으로서의 삶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전입 직원 못살게 굴던 예산부서의 위세

-예산부서가 힘이 세다는 게 그래서 나온 말이군요?
“예산을 집행하려면 예산부서와 지출부서의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예전엔 각 부서 담당자가 일일이 결재를 받으러 다녔고, 그 과정에서 예산부서 사람들이 위세를 부렸죠.”

-상사가 마음에 들어하는 부하가 다른 부서로 옮기고자 할 때, 이를 먼저 상사에게 알려야 합니까? 자칫하면 상사가 서운할 수도 있는데.
“상사는 부하의 장래를 위해서 보내줘야 합니다. 부하의 입장에서는 옮기고 싶다고 얘기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으나 상사에게 직접 얘기를 해야 합니다. 안 보내주려고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불만을 나타내는 것 좋지 않습니다.”

상사와 기안 갈등 때 시차 두고 풀어야

-기안(起案)을 가지고 상사와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안 갈등은 어떻게 풀었나요?
“아무리 상급자라도 자기 기안을 고치면 기분이 좋을 리 없죠. 그러나 기안은 지식보다 경험이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짓지 말고 상급자의 의견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정말 상사의 기안에 문제가 있다면 어쩝니까?
“그 때는 시차를 두고 진행하는 게 좋죠. 상사의 기안이 맘에 안 들더라도 일단, ‘알았습니다. 검토해보겠습니다’ 하면서 일단 덮어둡니다. 그런 뒤 시간이 좀 지나서 문제점을 설명하면 대부분은 수긍합니다.”

-과거에는 인사 내용을 구내 스피커로 방송했네요.
“인사안이 확정되면 그 내용을 구내방송으로 불러줬습니다.”

-예전에는 내무과에서 예산권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까?
“인사 예산 기획 감사권을 내무과에서 다 가지고 있었죠. 막강했죠.”

도청 앞에서 시군공무원들 모여 예산작업 왜?

-지방의회가 없을 땐 시군예산 승인권을 도에서 가지고 있었죠?
“예전에는 컴퓨터가 없어서 예산서를 전부 손으로 썼습니다. 각 시군공무원들은 군수에게 결재를 받은 예산안을 가져와 도지사에게 예산승인을 받았죠. 시군 예산승인권을 도지사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청 앞에 모여서 12월 한 달 정도 예산작업을 했습니다. 충남도청 앞에 대한여관이라고 있었습니다.”

-도청 앞에서 예산 작업을 한 이유는 뭡니까?
“시군이 예산을 통일해야 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군 예산담당 공무원들이 다 모여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도가 사실상 조정 역할도 했죠. 또 불합리한 점은 도에서 조정하는 역할도 했구요.”

-군청 소속 공무원이 승진하면 읍면으로 내려갑니까? 지금도 그런가요?
“지금도 그렇게 합니다.”

-면으로 내려간 뒤에는 시장 군수에게 ‘잊혀진 인물’이 될까 걱정되지 않나요?
“과거엔 그랬죠. 시군에는 자리 나는 경우도 별로 없습니다. ‘백’이 있어야 군청으로 들어올 수 있었죠. 저 같은 경우는 그런 백이 없어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시험을 보니까 자기가 노력하면 전입할 수 있죠?
“그렇죠. 그러나 시험 점수가 좋아도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시군에서 안 데려오려고 합니다. 저도 인사국장을 했지만, 착하면서 능력도 있어야 먼저 들어올 수 있죠.”

-인성과 실력 중 어디를 더 보나요?
“예전엔 행정이 복잡하지 않았으므로 능력은 좀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죠. 지금은 ‘백’이 좋아도 실력이 없으면 픽업이 어렵습니다. 실력이 없으면 본인 스스로가 견디기 힘들고 동료이나 상사들도 힘들게 만들죠.”

-실력 없는 공무원은 더 힘들어졌군요.
“행정이 복잡해지고,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도 높아졌어요. 시민들이 공무원들 위에 있잖아요. 공무원들에게 철밥통이라고 하지만 근무 환경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문화공보실 발령 받아 기자들도 많이 상대했는데.
“기자들은 주관이 확실하고, 개성이 있는 편이죠. 그러나 친해지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합니다.”

 

 

   
 

기피부서 있을 때 인사 소외 당하지 않으려면

-자치단체장들은 ‘어려운 부서에서 열심히 하면 과감하게 발탁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요직과 기피부서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민선 이후 요직이나 아니냐 하는 점은 좀 퇴색되었으나 지금도 없다고 보기 어렵죠. 인사 기획 예산부서는 여전히 요직입니다. 시장 군수는 자신을 가까이서 모시면서 식사도 자주하고 시장 군수가 쓰는 돈 결재하는 공무원과는 아무래도 가까울 수밖에 없죠.”

-기피부서 직원들이 소외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만 많고 알아주지 않는 부서라고 해서 불평만 하고 일을 게을리하면 자신만 손햅니다. 공무원 생활 하루 이틀 하는 것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해서 인정을 받는 수밖에 없죠.”

-그런 부서에 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저는 보고 거리를 만들어서 보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혼자만 열심히 하면 윗분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인이 어려운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윗사람에게 알릴 필요가 있어요.”

-요직과 기피부서를 경험해보니 결과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예산 회계 인사 등의 부서가 지원부서로 이른바 요직입니다. 이에 비해 사업부서는 정말 어렵습니다.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고 감사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게 사업부서죠. 지원부서는 그런 게 별로 없습니다.”

승진, 외부 청탁은 안되지만 내부에서 호소는 인정

-공무원들에게 승진은 어느 정도 중요합니까?
“단적으로 말하면,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승진입니다. 승진이 돼야 봉급도 오르고 명예도 높아지죠. 승진을 접어놓고 보람만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열심히 하는 데도 승진이 늦는 경우가 있습니다. 승진 청탁을 안 해서 그런가요?
“인사 업무를 봤던 경험에서 말하면, 청탁 승진은 사라지고 있다고 봅니다. 민선 체제가 되면서 없어졌습니다. 민선단체장은 청탁을 잘 들어주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데도 승진이 안 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외부 인사 청탁은 많이 없어졌나요?
“그렇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내부에선 승진을 호소해도 됩니까? 그런 경우가 많습니까?
“자신이 데리고 있는 직원을 좋게 얘기해주면서 ‘이 직원은 이런 고생도 하고 열심히 하기 때문에 이번에 승진시켜줘야 합니다’라고 윗분들에게 얘기를 하면 대개 좋게 받아들여집니다.”

-열심히 하는 직원의 상사는 평소 그런 얘기를 해줘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직원의 어려움을 윗분들이 잘 알 수 있어요. 또 본인이 인사 고충을 윗분들에게 직접 얘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외부에다 청탁하는 것은 윗분들도 안 좋게 생각하지만 본인이나 그 상사가 직접 말하는 건 좋게 생각합니다.”

-속으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얘기를 하라는 말이죠?
“그렇죠. 저도 국장 할 때 그런 직원이 있으면 메모를 해놓고 다음 인사 때 참고를 했어요. 속으로 꿍하면서 ‘당신, (인사 담당)국장, 과장 얼마나 하나 보자, 그 자리 등기 냈느냐?’ 하면서 외면하는 직원들도 있어요. 그런 직원을 보면 언짢죠.”

-승진을 위한 효과적이 방법이 있나요?
“맡은 일을 열심히 해서 상사에게 인정받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정기인사 때면 부서장들이 서로 달라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그런 직원은 커트라인(승진후보자명부 이내)만 넘으면 승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방공무원 사회가 민선 인후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민선 자치단체장은 지역민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무원보다 지역 주민들 편을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민원이 관선 때보다 굉장히 늘었죠.”

실적주의가 민선 이후 엽관주의로 바뀌어

-책에는 ‘실적주의’에서 ‘엽관주의’로 바뀌었다고 쓰셨습니다. 엽관주의 때문에 힘들어 하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시장 군수 본인이 그런 맘을 먹어서가 아니라 주위에서 그렇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거 때 상대 후보에 줄을 섰던 사람에 대해서 왜 그냥 놔두느냐고 하면 당선 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들어주기도 합니다.”

-간부 공무원은 다음 선거에 누가 당선 되느냐의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군요.
“그렇죠. A후보가 시장에 당선되었다면 B후보를 따르던 공무원들을 예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물갈이가 되고,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서산시 같은 경우는 그게 심하지는 않았으나 다른 시군을 보면 본청에서 읍면으로 쫓겨나기도 합니다.”

-9급에서 출발, 자치행정국장까지 하셨는데 어떤 직급이 가장 어려웠습니까?
“직원 하다가 계장이 되면 실무만 해선 안 됩니다. 직원들의 외풍도 막아줘야 합니다. 과장이 되면 범위가 넓어지죠. 그런 역할을 잘하느냐에 따라 그 계나 과가 잘 돌아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죠.”

   
 정 전국장이 명예퇴임식 때 아내로부터 받은 편지와 아들딸 부부한테 받은 감사패

국장 업무가 어려운 이유들

-국장이란 자리는 어떻습니까?
“국장이 되면 직원들뿐 아니라 윗분들도 챙겨야 합니다. 시장님이 판단하는 과정에 참여도 하고, 미흡한 부분은 보충도 해드리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선 직언도 해드려야 합니다.”

-국장 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혼자서 방을 쓰니까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장은 (직원들로부터) 공격을 많이 받죠. 책임은 많고 권한은 없는 편입니다. 지방의원들한테도 만만한 사람이 국장이고, 언론인들에게도 만만한 사람이 국장이죠. 시민들도 시장님만 상대하려 하고 국장은 우습게봅니다. 저는 국장을 3년 하고서 명퇴했어요.”

대부분 공무원들은 1년간 공로연수 기간을 거쳐서 퇴직하지만 정 전 국장은 바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1년씩 공로연수 하는 게 눈치도 보이고, 물러날 바에야 깨끗하게 물러나는 게 낫다 싶어서였다.

공무원 하려면 능력보다 인성 갖춰야

-이 책을 쓰기 위해 공무원생활하면서 메모해둔 게 있었나요?
“메모는 없었습니다. 제 인사기록카드를 복사해놓은 게 있었습니다. 그걸 보니 과거의 일이 생각나더라구요. 퇴직하고 집에 3개월 간 있으면서 제 과거를 정리해 봤죠.”

-공무원 하려는 젊은이들에게 무슨 얘기 해주고 싶나요?
“무엇보다 인성이 갖춰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 받아서 못합니다. 사명감과 봉사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겐 공무원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공무원은 굉장히 매력있고 멋있는 직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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