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벨트 땅값 0원]

   
▲ 김학용 편집위원

정부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예산을 편성하면 부지 매입비는 세우지 않았다. 내년도 사업비로 당초 예정액의 3분의 1 수준인 2600억원을 배정하면서 땅값은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는 과학벨트 사업 추진 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가 편성 요청한 땅값의 일부 예산 700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과학벨트를 허공에 건설하겠다는 건 물론 아니다. 과학벨트가 들어오는 대전시가 땅값은 대라는 뜻이다. 아직 정부가 대전시에 공식으로 요구한 적은 없다. 시는 교육과학기술부를 통해 부지 비용 일부를 대전시가 보탰으면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부지 매입비의 30%를 부담하라는 요구가 정말이면 시는 최소 1000억 이상을 부담해야 된다. 정부 요구에 따르려면 시는 1년 정도 시 자체 사업은 거의 포기해야 한다. 시로서는 수용이 불가능한 요구다.

설사 대전시 재정에 좀 여유가 있다 해도 국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에 지방자치단체가 돈을 대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대전시가 돈을 댄다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운영과 관리에 대전시도 참여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정부가 그렇게 할 리도 없지만 국가기관 운영에 특정 지자체만 참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정부 “과학벨트 땅값은 대전시가 대라”

무엇보다 과학벨트는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낼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추진하는 명실상부한 국책과제다. 지방정부한테 손을 벌릴 명분이 없다. 사업의 혜택이 해당 지역에 주로 돌아가는 경우라면 지방정부가 약간 부담할 수도 있을지 모르나 과학벨트는 대전만이 아니라 전국이 혜택을 보는 전형적인 국가사업이다.

과학벨트로 득을 보는 만큼 대전시도 어느 정도는 기여해야 된다는 게 기재부의 논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에 유리한 국책사업에 대해선 지자체에게 돈을 대도록 하는 제도를 공식 도입해야 한다. 또 지역에서 돈을 받는 조건이면 사업을 공모해야 한다.

과학벨트는, 정부가 과학도시 대전이 과학벨트의 최적지라는 여론을 수용해 정한 것이지 대전시가 신청해서 이뤄진 건 아니다. 땅값을 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아직 국책사업에 지방자치단체가 돈을 댄 전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

국가 예산의 대부분(80%)을 중앙정부에게 배정하고 지방에는 쥐꼬리만큼(20%) 나눠주면서 국가가 시행하는 국책사업에까지 지방에 돈을 요구하는 것은 정부가 벼룩의 간을 내먹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형적인 국가사업.. 지방 부담 명분 없어

정부가 황당한 요구를 할 만한 배경은 있어 보인다. 우선은 이명박 정부는 과학벨트를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 과학벨트는 애초 ‘행정도시(세종시) 취소용’으로 기획되었지만 세종시 존치로 결론 나면서 마지못해 추진하는 인상이 짙다. 복지예산이 급증하면서, 0~2세아 무상보육도 도입 6개월 만에 중단할 정도로 예산이 쪼들리는 것도 배경으로 보인다.

그래도 과학벨트 사업예산을 일부라도 세우면서 부지 매입비를 배정하지 않은 데는 ‘땅값은 반드시 대전시가 대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가 담긴 듯하다. 이 부분에서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만일 과학벨트가 대구나 광주 지역에 배정됐어도 ‘땅값은 너희가 대라!’고 했을까? 호락호락한 충청도여서 정권 말까지도 깔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지역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지난 총선 때 과학벨트 부지 매입비의 10% 정도를 대전시가 대는 것도 원활한 추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작게 주고 크게 받아내자는 게 강 의장의 취지였지만 대전시에게 부담만 안긴 꼴이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정부는 강 의장의 말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부지 매입비 0원’은 집행부의 수장 MB가 충청도 신임 국회의장에게 보내는 얄궂은 화답이요 선물처럼 되었다.

‘대전시도 땅값 내자!’ 강창희의장 말 따르는 정부?

과학벨트 문제는 특정 정파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사안이 아닌 만큼 ‘초당적 입장’인 강창희 의장도 이 문제에 적극 나설 수 있다고 본다. 대전에 국회의장과 국회부의장이 한꺼번에 나와 ‘이제 대전이 힘 좀 쓰겠다’며 많은 시민들이 좋아했다. 그런데 자칫하면 ‘이게 뭡니까’라는 소리가 나오게 생겼다.

지난 총선에서 대전은 국회의원들의 무게감으로 치면 어느 곳 못지않은 지역이 됐다. 강창희 국회의장, 박병석 국회부의장을 비롯, 3선의 중진 이상민 의원, 초선이지만 광역시장과 한나라당(새누리당) 최고위원까지 지낸 박성효 의원, 활약상이 돋보이는 박범계 의원, 패기의 정치 신인 이장우 의원도 지역 문제에 더 힘을 써야 한다.

대전시로서는 과학벨트만큼 중요한 과제도 없다. ‘지역에 유리한 대선후보를 지원하겠다’고 말해온 염홍철 시장도 이젠 후보 선택의 기준이 나온 셈이다. 과학벨트를 가장 확실하게 밀어줄 사람이 그가 찾는 후보가 아닐까? 대전시장과 지역 정치권은 과학벨트가 정상 추진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 김학용 편집위원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