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독재 시대]

   
▲ 김학용 편집위원

한화 김승연 회장은 신(神)이었다. 검찰이 찾아낸 한화그룹 문건에는 “CM(체어맨)은 신(神)이다”라고 써 있었다고 한다. 경제계의 신은 지난주 ‘경제 민주화’의 이름으로 구속됐다. 책임은 없이 무한 권력을 행사해온 재벌회장에게도 마침내 제동이 걸렸다.

지방행정에도 재벌회장 같은 신들이 존재한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다. 시도지사와 시장 군수 구청장은 지방공무원 세계에선 신이나 마찬가지다. 옷을 벗을 정도의 형사상 범죄를 짓지 않는 한, 단체장들에겐 어떤 책임도 물을 방법이 없다. 단체장이 불법적으로 인사를 해도 책임지는 일이 없고, 예산 회계 사고가 나도 공무원들만 물어내야 한다. 단체장 명령을 받은 사안도 책임은 공무원에게 그치고 만다.

단체장은 책임지는 법이 없지만 권한은 100% 행사한다. 아무리 작은 일도 단체장 뜻에 따라 결정된다. 공무원 조직은 특별권력관계여서 불법이 아닌 한, 상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따라서 부당한 지시도 단체장의 뜻이라면 받들어야 한다.

재벌회장은 신(神)... 지방자치단체장도 신

무엇보다 단체장은 막강한 인사권을 쥐고 있다. 인사와 승진은 대부분의 공무원에겐 삶의 전부다. 공무원으로서의 명예와 수치가 인사로써 엇갈리고, 퇴직한 뒤 받는 연금의 크기도 승진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단체장에게 한번 찍히면 짧게는 4년(임기), 길게는 10여년 간 그 공무원은 희망을 갖기 어렵다. 공무원 인생도 끝장나고 만다. 한 지방공무원은 “관선에서 민선으로 바뀐 이후 단체장의 전횡이 훨씬 심해졌다”며 “지방공무원들에게 단체장은 신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말했다.

4년마다 실시되는 지방선거가 단체장에 대해 책임을 묻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단체장의 횡포를 막기는 어렵다. 엉터리 행정을 해도 그것 때문에 낙선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단체장은 일을 잘해서 평가받겠다는 생각보다 소속 정당의 지지도에 더 관심을 갖는다. 지지도가 바닥이면 일을 더 열심히 해서 평가받겠다는 생각보다 당을 갈아탈 궁리를 한다. 이런 단체장들은 ‘행정독재’를 하게 돼 있다. 대전시도 ‘행정 민주화’가 절실한 곳임을 보여주는 황당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전임 대전시장의 측근으로, 염홍철 시장 취임 이후 사직을 종용받아오던 모씨는 현재 대전문화산업진흥원에서 직위해제 된 상태로, 출근을 못하고 있다. 노동위원회가 직위해제는 잘못이라며 복직결정을 내렸으나 진흥원은 즉각 그를 검찰에 고소하면서 또다시 직위해제 시켰다. 검찰 고소건도 무혐의 처분을 받은 걸 보면 불법적인 보복인사가 분명해 보인다.

죄없는 직원도 잘라내려는 ‘대전시의 신(神)’

진흥원은 그의 보직을 박탈한 뒤 선거 때 염 시장 부인을 수행하였던 사람을 겸직시켰다. 이 과정에서 진흥원은 국비사업의 관리부실로 2억원 정도를 날려버렸다. 대전시 측은 시장의 지시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삼척동자도 안 믿을 말이다. ‘대전시의 신(神)’인 시장이 아니면 죄없는 직원을 잘라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진흥원장은 자신을 임명한 시장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재벌이든 행정이든 독재와 독선은 오만하기 마련이며 불법 적법을 가리지 않는다. ‘행정독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대표적인 견제기관인 지방의회의 상당수는 단체장 손에 넘어가 있고, 심지어 공무원 노조까지 단체장 수중에 들어가 있다.

두 달 전 대전시공무원노조는 디트뉴스를 항의 방문, “시장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하위직 공무원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해달라”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를 댔다. ‘우리 시장님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노조의 진의는 아니라고 보지만 대전시의 ‘행정독재’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단체장은 ‘행정독재’를 은폐하기 위해 부하직원들에게는 직언을 주문하고, 시민들에겐 ‘소통행정 이벤트’를 벌인다. 대개는 쇼일 뿐이다. 직언을 주문해도 응하는 공무원이 없는 것은 시장 말을 진심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소통행정도 시장 자신을 위한 매표(買票)의 수단일 뿐이니 주민들에겐 실속이 없다.

시민들 눈 귀 가리려 언론 장악 나선 시도지사

단체장이 자신의 엉터리 행정을 숨기려면 시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속여야 한다. 단체장에게 언론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일부 단체장은 도움을 넘어 아예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 언론사 수입의 지방자치단체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시도지사도 재벌처럼 언론을 돈으로 다룰 수 있게 됐다.

이제 지방언론은 주요 스폰서인 시도지사의 입맛에 맞춰 보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체장한테 불편한 기사는 킬(kill)시키고, 단체장이 원한다면 왜곡을 해서라도 실어줘야 한다. 지방행정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지방언론이 시장의 졸개가 되어 가고 있다.

지방언론이 무너질수록 ‘지방행정 독재’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도대체 무엇으로 이를 막아야 하는가? 재벌회장을 구속한 것처럼 자치단체장을 따끔하게 경고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그래도 언론이 힘을 내야 하고 시민단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단체장에 대한 심판권을 가진 시민들이 주인 노릇 제대로 하겠다는 자세일 것이다. /김학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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