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위협하는 ‘통합 청주시’

   
 김학용 편집위원

 대전과 충북이 경쟁을 벌이면 충북이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나 그렇게 여길 만한 사례는 있다. 호남고속철도 분기점 싸움이었다.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의 분기점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를 놓고 벌인 지역 간 대결이었다.

7~8년 전, 대전-충남-충북은 분기점을 놓고 ‘노선 전쟁’을 벌였다. 지금의 호남선처럼 대전(서대전)을 통과해야 한다는 대전안(案), 천안을 분기점으로 하자는 천안안, 그리고 오송을 분기점으로 삼자는 오송안이 있었다. 대전 충남은 대전안과 천안안으로 갈라졌으나 충북은 똘똘 뭉쳐 오송안을 주장했다. 호남고속철 주 이용자인 호남권은 서울~호남을 직선으로 잇는 천안안을 선호했다.

대체로 경제성에서 보면 대전안이 효율적이었고, 선호하는 사람들(호남권 포함)의 인구수로 보면 천안안이 유리했다. 오송안은 그야말로 충북을 위한 노선이었다. 고속철은 가급적 직선화해야 하고, 더구나 이용 인구가 충분하지도 않은 지역을 경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오송안은 가장 불리했다.

그러나 충북은 오송안을 관철해 냈다. 정부는 2005년 오송 분기로 최종 확정했고, 2008년 오송역을 착공해 2010년부터 KTX가 정차하고 있다. 오송 분기는 충북이 대전과 충남은 물론 호남권까지 이겨 얻은 것이다. 

지도자의 역할과 중요성 보여준 오송역 유치

도대체 충북은 어떻게 싸운 것인가? 그때도 충북 사람들은 정말 드세고 집요하게 투쟁했다는 얘기가 들렸지만 좀더 구체적인 얘기는 얼마 전에야 알게 됐다. 충북의 승리에는 ‘지도자들’이 있었다.

충북 사람들에게 ‘호남고속철의 오송 분기’ 투쟁은 ‘경부고속철의 오송 통과’에 이은 두 번째 싸움이었다. 오송은 호남고속철은커녕 먼저 개통된 경부고속철 노선에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당초 경부고속철은 서울~천안~대전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으나 충북지사를 지낸 당시 정종택 국회의원 등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서울~천안~오송~대전 노선으로 바뀌었다.

경부고속철이 청주(오송)를 통과하도록 한다는 대선공약이 있었으나 정 의원은 오송이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분개했다. 정 의원을 비롯한 박종원 전 한국병원장 이상록 유치위원장 등은 경부선 철로를 경운기로 막아  부강터널을 봉쇄하자는 ‘거사안’을 냈고, 이에 행동대원들이 현지에 나타나 사진을 찍는 등 소동을 벌였다. 이 사건은 청와대까지 보고되면서 관계자까지 분노했으나 이를 계기로 노선이 수정됐다. 정 의원이 낸 터널봉쇄 작전은 단순한 협박카드였다고 하나 여당의원한테 나온 아이디어였다는 게 놀랍다.

호남고속철의 ‘오송역 분기’도 충북 원로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얻어낸 승리였다. 오송역유치위원회의 거듭된 요청에도 건교부가 요지부동의 태도를 보이자, 이상록 위원장 등은 “폭탄으로 공공시설물을 파괴하겠다는 공문까지 보내자”며 강경 입장을 보였다. 그는 감옥 갈 각오까지 했었다고 회고했다.

   
  호남고속철 노선도

청주 “이젠 대전이 아니라 우리가 교통요충지”

오송역 유치 비화는 지역 지도자의 역할이 지역의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고 있다. 과연 대전에는 지역을 위해 지방도로라도 막고 나설 만한 시장, 국회의원이 있었는가? 대전을 위해 폭탄 얘기라도 꺼낼 수 있는 원로가 있었는가? 시장으로 뽑아주고 국회의원 배지 달아주면 챙기고 즐기는 데 정신이 팔려, 호남고속철도노선을 빼앗기고도 미안한 마음조차 없었다.

폭력과 불법은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지역을 위해서라면 그렇게라도 하겠다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어야 지도자다. 그런 지도자라야 주민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고 지역을 위해 뭔가 할 수도 있다. 충북은 그런 지도자를 가졌다. 충북이 대전을 이기는 가장 실질적인 요인이다.

오송 분기역은 충북이 그렇게 쟁취한 것이다. 청주와 청원이 통합하기로 함으로써 청주가 ‘교통의 요지’로 부상하게 됐다. ‘교통도시 대전’은 옛말이 되고 말 것이다. 충북은 “이제는 대전이 아니라 청주(오송)가 교통의 요지”라며 교통도시로서 장래 계획을 짜는 데도 분주하다. 오송을 충북선을 통해 동해안과 유라시아 대륙철도로 연결하는 구상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충북개발연구원을 통해 수도권~청주~구미로 이어지는 ‘제2경부고속철도’ 안도 제안했다. 물론 여기엔 대전이 빠져 있다.

충남도청 떠나고 ‘교통도시’ 내주는 불안한 대전

고속철도가 반드시 지역 발전을 가져온다는 보장도 없지만 교통수단이 아무리 발달해도 교통과 물류의 편리성은 도시가 갖는 중요한 강점이다. 대전은 100년 간 보유해온 강점을 이웃 도시 청주에게 넘겨줘야 할 운명이다. ‘교통’과 함께 오늘날의 대전을 만든 ‘충남도청’도 연말이면 대전을 떠난다.

대전은 ‘도청’과 ‘교통’을 동시에 잃을 처지다. 인구가 줄면서 대전 경제가 쪼그라들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대전의 위기다. 대전의 또 다른 상표, ‘과학’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대전의 미래와 연결시키는 건 여전히 과제다.

청주가 청원과 통합하면 83만 명에 달하고 100만 인구도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통합 청주시의 면적(967㎢)은 대전(539㎢)의 거의 2배다. 청주는 대전보다 땅도 넓고 공장도 훨씬 많다. 이미 오송 오창을 중심으로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거기에다 고속철도가 교차하고 대전에는 없는 국제공항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충북이 아니라 ‘보통시’ 청주가 ‘광역시’ 대전에 직접 도전해올 태세다. 이시종 충북지사와 한범덕 청주시장은 청주 청원 통합 결정 이후 “이젠 통합 청주시가 충청의 맹주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허장성세는 아닌 듯하다. 그간 대전과 충북의 대결도 사실은 대전-청주의 대결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전은 충남과 갈라지고 있으나 충북과 청주는 앞으로도 한 몸이다.

'보통시' 청주가 '광역시' 대전에 도전장을 내다

최근 충북은 대전시가 제안한 지방은행 설립과 메갈로폴리스 구상안에 딱지를 놓았다. 대전과 입장이 좀 다르고 추진 방법에 문제가 있긴 해도 정치적으로 화답할 수도 있는 안건이었다. 그런데도 퇴짜를 놓은 데는 대전을 맹주로 대접하지는 않겠다는 뜻도 있는 것 같다.

대전이 청주를 형님으로 모실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우선 청주처럼 지역의 지도자들부터 제역할을 해야한다. 대전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내자리’ ‘내돈’이 아니라 진정 대전을 지키겠다는 마음이어야 한다. 소통 흉내만 내면서 표(票)만 신경 쓰는 시장의 머리 속에선 대전의 미래가 설계될 수 없고, 청주의 도전도 이겨낼 수 없다.

충북과 대결하고 청주와 싸우란 얘기가 아니다. 대전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을 이웃과 비교해 보니 참으로 한숨이 나와서 하는 말이다. / 김학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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