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세종특별자치시 초대 정무부시장 내정을 보며

   
원로를 원로의 자리에 있지 못하게 만든 유한식 시장의 속내는? (사진: 변평섭 내정자)
정치권에 크고 작은 이슈가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다.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은 칼끝처럼 예리해 때로는 정국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정한 총리 또는 장관 후보자들이 각종 의혹에 휩싸였을 때는 “인사청문회가 아닌 죄송청문회”라는 ‘촌철살인’으로 공감대를 형성했고, 최근 논란이 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해서는 “나사가 빠졌다”며 현 정부에 대해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12월 대선에 출마한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두 손 들고 환영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이를 놓고 보면 “원로는 원로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릅답다”는 누군가의 말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녔는지 잘 알 수 있다.

실현 가능성이 1%도 없는 얘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세종시 초대 정무부시장 내정 소식에 대한 기자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유한식 시장이 대전·충남 언론계의 원로인 변평섭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72)을 정무부시장에 내정했다.

유상수 행정부시장이 밝힌 내정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 언론인으로서의 오랜 경륜과 무게감, 그리고 폭넓은 인맥과 함께 세종시의 전신인 연기군에 대한 애정과 원안 사수를 위한 노력 등이 그것이다.

변 내정자에 대한 평가를 떠나 왠지 모르게 ‘억지춘향’ 느낌이 강하다. 오랜 경륜과 무게감, 폭넓은 인맥이 핵심 이유라면 이만섭 전 국회의장에게 대선출마를 권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그 직책의 고하(高下)를 떠나 세종시가 안고 있는 과제들과 미래지향성 등을 종합적으로 놓고 볼 때 어색하기 짝이 없다.

세종시 원안 사수 과정에서의 변 내정자의 역할 역시 무시할 순 없겠지만, 필요충분조건이 되진 못한다. 63빌딩이 완공되고 나면 거푸집 작업을 하던 인부도 “저 건물 내가 지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세종시 원안 사수의 공을 특정인에게 돌리는 느낌이 있어 씁쓸하다는 얘기다.

정무부시장의 역할을 놓고 볼 땐 더욱 그렇다. 국비확보를 위해 정부 주요 부처와 국회를 뛰어다니는, 한 마디로 세일즈맨이 돼야 하는 자리다. 우리끼리는 그렇다 손치더라도 지역 사정을 전혀 모르는 중앙부처 관계자나 타 지역 국회의원들이 볼 땐 어떨지 생각하면 아찔한 느낌도 든다.

변 내정자가 꼭 정무부시장을 맡아야 자신의 역량을 세종시 발전을 위해 쏟을 거란 얘기도 말이 안 된다. 자문위원 등 다른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 “유한식 시장의 한계”라거나 “차라리 논공행상(論功行賞)이나 제대로 하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혹여 대 언론관계를 고려한 인선이라고 한다면 큰 오판이 아닐 수 없다. 출입 기자들에게 직접 물으면 쉽게 알 수 있을 일이다.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국회의원으로, 유한식 전 연기군수를 세종시장으로 각각 뽑아줬다. 그 표심을 충분히 이해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중앙 무대에서 무시할 수 없는 또는 잔뼈가 굵은 인사가 아니라면 아예 지역주민과 동고동락(同苦同樂)했고 미래를 향해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인물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유한식 시장이 이끄는 ‘세종시호(號)’의 출항이 이래저래 산뜻하지 못하게 됐다. 굳이 원로를 원로의 자리에 있지 못하게 만든 유 시장의 속내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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