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세종특별자치시 초대 정무부시장 내정을 보며
원로를 원로의 자리에 있지 못하게 만든 유한식 시장의 속내는? (사진: 변평섭 내정자) |
이명박 대통령이 내정한 총리 또는 장관 후보자들이 각종 의혹에 휩싸였을 때는 “인사청문회가 아닌 죄송청문회”라는 ‘촌철살인’으로 공감대를 형성했고, 최근 논란이 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해서는 “나사가 빠졌다”며 현 정부에 대해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12월 대선에 출마한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두 손 들고 환영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이를 놓고 보면 “원로는 원로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릅답다”는 누군가의 말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녔는지 잘 알 수 있다.
실현 가능성이 1%도 없는 얘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세종시 초대 정무부시장 내정 소식에 대한 기자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유한식 시장이 대전·충남 언론계의 원로인 변평섭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72)을 정무부시장에 내정했다.
유상수 행정부시장이 밝힌 내정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 언론인으로서의 오랜 경륜과 무게감, 그리고 폭넓은 인맥과 함께 세종시의 전신인 연기군에 대한 애정과 원안 사수를 위한 노력 등이 그것이다.
변 내정자에 대한 평가를 떠나 왠지 모르게 ‘억지춘향’ 느낌이 강하다. 오랜 경륜과 무게감, 폭넓은 인맥이 핵심 이유라면 이만섭 전 국회의장에게 대선출마를 권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그 직책의 고하(高下)를 떠나 세종시가 안고 있는 과제들과 미래지향성 등을 종합적으로 놓고 볼 때 어색하기 짝이 없다.
세종시 원안 사수 과정에서의 변 내정자의 역할 역시 무시할 순 없겠지만, 필요충분조건이 되진 못한다. 63빌딩이 완공되고 나면 거푸집 작업을 하던 인부도 “저 건물 내가 지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세종시 원안 사수의 공을 특정인에게 돌리는 느낌이 있어 씁쓸하다는 얘기다.
정무부시장의 역할을 놓고 볼 땐 더욱 그렇다. 국비확보를 위해 정부 주요 부처와 국회를 뛰어다니는, 한 마디로 세일즈맨이 돼야 하는 자리다. 우리끼리는 그렇다 손치더라도 지역 사정을 전혀 모르는 중앙부처 관계자나 타 지역 국회의원들이 볼 땐 어떨지 생각하면 아찔한 느낌도 든다.
변 내정자가 꼭 정무부시장을 맡아야 자신의 역량을 세종시 발전을 위해 쏟을 거란 얘기도 말이 안 된다. 자문위원 등 다른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 “유한식 시장의 한계”라거나 “차라리 논공행상(論功行賞)이나 제대로 하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혹여 대 언론관계를 고려한 인선이라고 한다면 큰 오판이 아닐 수 없다. 출입 기자들에게 직접 물으면 쉽게 알 수 있을 일이다.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국회의원으로, 유한식 전 연기군수를 세종시장으로 각각 뽑아줬다. 그 표심을 충분히 이해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중앙 무대에서 무시할 수 없는 또는 잔뼈가 굵은 인사가 아니라면 아예 지역주민과 동고동락(同苦同樂)했고 미래를 향해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인물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유한식 시장이 이끄는 ‘세종시호(號)’의 출항이 이래저래 산뜻하지 못하게 됐다. 굳이 원로를 원로의 자리에 있지 못하게 만든 유 시장의 속내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