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직선제와 대학 자유

   
    김학용 편집위원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고, 자유는 학문의 절대적 조건이다. 대학에서 자유가 빠진다면 앙꼬 없는 진빵이다. 국립대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의 자유는 독립이 가능할 때 누릴 수 있다. 국립대는 정부로부터 독립되어야 하지만 경제적 예속을 피하기 어렵다. 많은 국립대들은 대학으로서 자유로워야 하면서도 정부의 예속을 벗어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져 있다.

우리나라 국립대는 지난 20여 년 간 비교적 자유를 누려왔다. 민주화 바람이 불어닥치면서 도입된 총장직선제는 대학의 자유를 보호해주는 효과적인 장치였다. 과거 군부 시절에 비하면 학문의 자유도 신장되었다. 연구 주제가 수상하다고 뒷조사를 당하고, 이념이 다른 연구물을 발표를 한다고 해서 탄압 받는 교수는 이제 없을 것이다.

폐단 많은 총장직선제 폐지는 옳다

총장직선제는 이런 성과를 가져왔지만 부작용도 낳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선거꾼이 총장으로 선출되는 사례가 줄을 이었다. 대학을 잘 경영할 인물이 아니라 표만 잘 얻는 '득표 기술자'가 뽑혀 대학을 어지럽히곤 하였다.

대학이 선거판이 되면서 조직의 분열과 구성원간 갈등도 심화시켰다. 대학 경쟁력이 뒷걸음치는 대학도 많았다. 충남대도 그 중 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직선으로 뽑힌 충남대총장 가운데 제대로 된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장직선제는 고수되어야 하는가?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총장직선제가 폐지될 경우 대학의 정부 예속이 더 심해질 가능성은 있으나 '학문의 자유'까지 다시 위축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대학총장선출위원회 같은 데서 뽑을 경우에도 문제점이 없지는 않을 것이나 직선제의 여러 폐단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교수회는, 총장직선제 폐지가 대학 법인화로 가는 수순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립대 법인화는 별개의 문제이고 나중의 문제다. 법인화를 막기 위하여 폐단이 큰 직선제를 계속할 수는 없다.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직선제는 이제 폐지해야 한다. 그 대안은 대학 스스로 찾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처럼 교과부가 대학을 협박하여 강제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안 된다. 교과부는 직선제를 폐지하지 않는 대학에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끊고 '부실대학'으로 낙인찍는 비열한 수법까지 쓰고 있다. 교과부 말을 안 들으면 대학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학생들에게 돌아갈 돈도 줄어들게 돼 있다.

이에 충남대도 교과부에 굴복, 사실상 직선제 폐지 절차를 밟고 있다. 교수와 직원들은 오늘부터 3일간 학칙개정 투표를 실시한다. 사실상 총장직선제 폐지에 대한 찬반 투표다. 교수회를 비롯한 상당수 교수들은 직선제 폐지에 여전히 반대하고 있지만 교과부 요구를 거부하는 데 따른 '후환'을 걱정하는 구성원들도 많다.

부산대 등은 버티는데 충남대는 ...

부산대 등 4~5곳의 대학은 아직 교과부에 굴복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충남대는 왜 그리 쉽게 정부에 굴복한 것인가? 어차피 막아낼 수 없는 요구라면 빨리 항복하는 게 낫다는 게 정상철 충남대총장의 생각일 것이다.

대학과 정부가 갈등을 겪을 때 대학총장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총장은 대학을 대표하여 교과부에 맞설 수도 있고 반대로 앞장서 굴복할 수도 있다. '문예춘추' 기자 다치바나 다카시에 따르면 일본 대학들도 우리처럼 정부에 휘둘려 왔다. 그는 대학총장 책임이 크다고 보았다.

“서구 대학의 전통을 보면 국립대라도 가장 중시되는 것은 학문의 자유(대학의 독립 자치)이며, 학장(총장)은 국가(정부)와 대학 사이에 대립이 생길 경우 대학을 대표하는 자로서 행정기관(일본은 문부성)의 당국자와 격론을 벌여야 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학장(총장)은 문부 행정의 말단 기관에 지나지 않으며 권력을 상대로 대학을 대표하는 자리라기보다는 권력을 대표하여 대학을 감시하고 질서 유지에 힘쓰는 자였다.”『천황과 도쿄대』

직선제가 폐지될 경우 더욱 우려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총장들이 많다. 작은 대학일수록 그런 편이다. 충남대는 어떤가? 그래도 국립대 랭킹 4~5위권에 든다는 대학 아닌가? 그런 대학 치고는 총장이 좀 약해 보인다. 총장직선제를 대체할 방안 마련도 시도 해보지 못하고, 총장에 당선되자마자 투표 절차도 생략하고 허겁지겁 교과부와 MOU부터 맺어,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대학을 위기에서 하루속히 구해야겠다는 충정의 결단일 수 있다. 그래도 대학은 대학다워야 한다. 부실대학 딱지를 피하고 정부 지원금을 놓치지 않는 것도 필요하지만, 대학이 교과부의 횡포에 쉽게 항복하는 것은 대학다운 모습이 아니다. 더 치열하게 논쟁하고 강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는 '대학의 자유'에서 비롯되는, 대학만이 가지는 대학의 기질이다. CEO 총장 시대에도 쉽게 버려선 안될 대학의 특성이다.

정 총장의 ‘모호한 전략’ 소신 부족 때문인가?

오늘부터 실시되는 투표의 제목이 '총장직선제 개선'을 위한 투표다. 안건 제목으로 보면 총장직선제를 유지하고 더 발전시키기 위한 투표로 오인하기 쉽다. 정 총장이 선거 과정에서 직선제 폐지 반대하는 공약을 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총장 측에선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이런 점들은 정 총장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선 '모호한 전략'을 쓰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 들게 한다. 얼렁뚱땅 수법이 때론 효과적일 수도 있으나 대체로 소신이 부족한 사람들이 쓰는 방법이다. 정 총장이 대학을 살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 방식에 대해선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 김학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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