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시론 한일수]

   

▲ 한일수 대전충남민언련공동의장

두리한의원원장

이정희 의원이 나직한 목소리로 국회의원 후보를 사퇴한다고 발표하던 모습은 그가 일개 국회의원에서 일거에 대선주자 급의 정치인으로 위상이 바뀐 극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와 비견할 것은 노무현이 전두환에게 명패를 집어던지는 청문회장과 문재인이 통곡을 속으로 삼키며 꿋꿋이 노무현의 장례를 치르던 장면 정도이다.

사람을 볼 때 굳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자가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언제나 섬광처럼 되살아나 그 사람을 믿고 따르게 만드는 힘이 된다. 지도자가 되는 사람은 그런 장면을 통해 대중에게 선택받고 그들을 자연스럽게 리드하게 되는 법이다.

정치인 박근혜의 최대 장점이자 치명적인 약점은 그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박정희에 대한 막무가내의 복고적 향수의 총화다. 박정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미 지나가서 없어져버린 과거에 붙들린 자들이고, 박정희가 우리를 잘살게 해줬다는 강고한 신념에 마취된 자들이다.

노무현 문재인 이정희의 공통점..박근혜와 다른점

종교를 이성으로 비판할 수 없는 것처럼, 이들의 박정희 사랑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사랑과 추억과 존경이 물화되고 체화된 존재가 바로 박근혜다. 그는 살아 있는 박정희이고 지금 살아서 만날 수 있는 과거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에게 사람들이 열광하고 지지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과거에 붙들린 사람들은 확정적이고 고정되어 있다. 그들의 숫자는 불어나지 않는다. 연령적으론 장년 이상, 지역으론 영남에 고착된 열광적 지지자들만으론 집권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한 번 탈당한 한나라당을 제 발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가 갖고 있는 힘에다 한나라당(이젠 새누리당이 됐지만)의 외연이 보태지지 않는 한 친박연대 이상의 힘을 보여줄 수 없다. 한나라당이 갖고 있는 힘과 그녀의 파워가 온전히 합해질 때 집권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인데, 전임이 워낙에 국민의 지지를 잃은 터인 데다 한나라당 지지세가 과연 집권에 이를 정도로 충분히 큰지는 매우 의문이다. 하지만 크게 낙담할 필요는 없다. 그녀가 늙어 죽기 전까지 김종필 이회창이 충청지역에서 받았던 정도의 지지와 환호는 꾸준히 이어질 테니까.

그에 비해서 문재인, 그리고 이정희는 자신의 지지층을 확대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도 그랬다. 이들의 장점의 기본은 정직함이며, 대중은 그들의 정직함과 놀라운 활동력을 통해 감동받았다. 한국 유권자를 움직여 대권을 잡고 싶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들에게 마음의 빚을 잔뜩 지워야 한다는 사실을. 김대중과 노무현이 비주류로서 집권에 이른 단 한 가지 비결은 정치인생 내내 국민에게 부채감을 키우는 쪽으로, 다시 말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했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볼 때 그것은 늘 정치적 손해였지만, 결국 그들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그들에게 진 빚을 갚자는 유권자들의 자발적인 투표였다. 물론 김대중은 김종필과, 노무현은 정몽준과 연대했지만, 그것은 외연을 넓히는 정도였지 대통령 당선의 핵심 요인이랄 수는 없다.

그래서 문재인이 과연 대선에서 승리할 것인지는 아직 의문부호가 붙는다. 그는 노무현 지지층의 지지는 고스란히 물려받겠지만, 더 나아가 범야권의 대표주자가 되려면 아직 많은 고비를 넘어야 하고, 국민에게 감동을 더 많이 안겨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임종석을 물러나게 하고 한명숙을 다독이고 이정희에게 불출마 결단을 끌어낸 요즘의 정치적 액션은 몹시 긍정적이다.

이정희가 과연 대선주자 급 정치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18대 국회의원 시절 이정희를 두고 야권 최고의 전략가라는 이해찬은 13대 국회 시절의 노무현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희의 의정활동은 진실로 눈부셨고, 그이 덕분에 매우 많은 국민들이 진보정당에 대해 갖고 있던 불편한 선입관을 많이 지울 수 있었다. 그리고 터져 나온 문자 메시지 사건과 출마 강행의 며칠을 지나 국회의원 후보직을 사퇴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정희 의원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출마보다 쉬웠다는 사퇴 선언은 축복

사람들 마음을 쥐고 흔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것이 연출이란다면 그는 가히 국립극단 전임 연출가 이상의 탁월한 기획가인데, 나는 연출이 아니란데 내 한 표를 던진다. 진실의 힘이 아니고선 이런 장면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았다. 단박에 대통령 이정희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국회에서 그리고 장관으로 참석한 각료회의에서 우리는 즐겁게 이정희가 쏟아내는 발언과 정책을 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인생이란 수많은 우연이 모여 만든 필연이다. 출마보다 사퇴가 쉬웠다고 말하지만, 이정희의 사퇴선언 한마디는 그녀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었다. 전국적인 야권연대가 성공해서 반드시 이명박 정권의 폭정을 심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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