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잔치 도시철도공사

   
 

계약직 한자리도 시장 이름부터 유력인사 이름 난무

#. 온 나라가 충격과 혼란에 빠진 IMF때였다. 전업주부였던 후배는 많든 적든 남편의 월급은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나오는 음료수처럼 날짜만 되면 저절로 나오는 걸로 알았다. 남편은 살벌한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피하는가 했더니 월급이 체불되기 시작했다. 당시 대한민국에 이런 집이 한 두 집이 아니었지만 더 이상 남편만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침 한 대형유통업체에서 모니터링 요원을 모집했다.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를 했고 졸업 후 기업체의 사보 만드는 일도 해보았기에 그거라면 약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해외 유학파 석/박사 출신까지 포함된 지원자들의 엄청난(?) 학력을 보고는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모니터링 한 꼭지에 5만원, 한 달 다 해봐야 20만~30만 원 정도의 수입이 되는 일자리였다. 그 후배가 모니터링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함께 느꼈던 공포감은 지금도 어제의 일 같다.

#. 국내 굴지의 유통업체 시니어사원 모집에 구름 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만 56-60세 연령층을 대상으로 계산과 배송업무 일부를 담당하는 ‘온라인피커’를 뽑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경쟁률은 6.7대 1을 기록했다. 400명 채용계획에 2670명이 지원한 것이다. 특히 석/박사 학력 소지자가 70여 명,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 등 기업체 간부급 이상 경력자도 400여 명 가량 지원했다고 한다. 지난 주 한 매체에서 읽은 기사내용이다.

마치 15년 전 후배가 겪었던 일과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그 중에는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이 일을 쿨하게 택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여유로운 이들 보다는 당장 먹고 살기위해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절박함 때문에 초조한 마음으로 문을 두드린 이들이 훨씬 많지 않았을까 싶다. 밥을 벌어주는 ‘일자리’. 그것은 젊은이들에게나 조기 은퇴자들에게나 절체절명의 현실적 과제이다. 시급 4500원짜리 아르바이트 자리를 놓고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판에 정규직 일자리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고 다만 1년이라도 신분이 보장되는 비정규직 일자리에도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심화되는 양극화와 경제위기로 사는 것이 점점 팍팍해지면서 이렇듯 작은 일자리 하나를 놓고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80%의 아픈 현실이다.

#. 대전도시철도공사의 비정규직원 대량해고와 관련해 낙하산 인사가 횡행했던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져 여론이 들끓으며 시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도시철도 위탁역 비정규직원 가운데 도시철도공사 직원 부인 4명이 역무원으로 근무하다 문제가 되자 사표를 낸 것이다. 그동안 직원채용을 둘러싸고 관련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들의 친·인척 채용에 대한 소문만 무성했었는데 일부가 사실로 확인 된 것이다. 공기업의 아르바이트 자리도 ‘빽’이 없으면 못한다는 세간의 풍문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명단이 드러나 사표를 낸 이들 외에도 일부 시청 고위직 공무원들도 연루되어 있다는 구체적 정황도 나오고 있어 비난여론이 더 거세지고 있다. 위탁역이어서 누구를 채용하던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고 또 그까짓 비정규직 일자리 몇 개를 놓고 뭘 그렇게 난리냐고 할 수도 있다.

지난해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염홍철 대전시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대전시 모 사무관의 부인이 시 산하 기관의 계약직에 고용됐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계약 기간이 채 1년도 되지 않는 단기직이었기에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여론이 빗발쳤다. 시민들은 작은 일자리 하나에도 애면글면 하고 있는데 그래도 먹고 살만한 그것도 썩 괜찮은 직업을 가진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들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도덕적 해이와 몰염치에 분노한 것이다.

사실 대전도시철도공사만이 아니라 대전시 산하기관의 인사를 둘러싸고도 온갖 잡음이 일고 있다. 일부 기관장 인선도 그랬지만 산하재단, 공사, 사업소 등의 비정규직 채용까지도 폭발 직전의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나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채용공고 전부터 시장을 비롯한 유력인사의 이름이 나도는 등 뒷말이 무성하다. 이대로 가면 불만이 임계점에 다다라 내부고발자가 구체적 명단을 제보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번 기회에 대전시는 도시철도공사만이 아니라 다른 기관들의 채용실태도 한번 파악해보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