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교육청, 체육시간 늘리고 예능대회는 폐지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교육당국이 “학교폭력 대책 일환으로 예체능교육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대전시교육청은 개학을 앞두고 “중학교 체육수업 시간을 늘리라”고 일선 학교에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개학을 눈앞에 둔 학교 현장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갑작스러운 체육시간 확대 방침에 개학 전까지 체육강사를 구하느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위클리디트’ 취재 결과 대전시교육청과 충남도교육청은 체육시간 확대 방침 속 수십 년 째 계속된 학생 예체능경연대회를 올해부터 돌연 폐지하기로 했다.
한쪽에서는 체육시간을 늘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음악·미술대회를 폐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위클리디트’는 학교폭력 대책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지역 교육청의 예체능교육 정책의 실상과 문제점을 집중 점검했다.

◇개학 10여일 앞두고 “체육시간 확대하라”

최근 개학을 앞둔 대전지역 중학교에 비상이 걸렸다.
대전시교육청 동·서부지역교육지원청은 지난 17일 긴급 교감회의를 소집해 교과부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의 후속조치인 ‘중학교 체육수업 시수 주당 4시간 확대’ 지침을 전달했다. 당장 3월 새학기 부터 현행 체육수업(학교별 주당 2-3시간) 외에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을 필수로 넣어 체육시간을 주당 4시간으로 확대하라는 지시다.

이에 일선 중학교는 긴급 교직원회의를 소집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개학을 앞두고 이뤄진 갑작스런 지침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각 학교는 새학기 스포츠클럽 운영을 맡아줄 체육강사를 구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대전시교육청 홈페이지 ‘학교인력채용공고’란에는 스포츠강사를 찾는 각 학교 게시물로 도배되어 있다.

대전 A중학교 관계자는 “새학기 교사 배치와 과목별 수업 편성이 다 끝났는데 갑자기 개학을 앞두고 체육수업을 확대하라고 해 황당하다”며 “체육활동이 필요한 데는 공감하지만 너무 졸속으로 교육정책을 펼치고 있어 현장에선 답답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최소한 한 달만이라도 시간을 두고 추진했다면 교육청 단위로 스포츠강사를 선발해 현장에 배치할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학교별로 시급 3만원의 강사를 구하려니 전쟁”이라며 “학교폭력으로 몸살을 앓던 중학교가 이젠 교육당국의 졸속 땜질 처방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전교조 대전지부도 지난 21일 성명을 발표하고 “대전시교육청의 중학교 체육시수 증가 지침은 졸속 행정”이라고 비난했다.
전교조 대전지부 관계자는 “국영수 중심의 학력경쟁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체육수업 한두 시간 늘린다고 달라질 건 없다”며 “대전시교육청은 현장의 어려움을 반영해 타 지역 교육청처럼 중학교 체육시수 증가 지침을 거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시·도교육청은 학교 현장의 의견을 수렴, 교과부가 각 교육청에 내려보낸 ‘체육수업 확대’ 시행을 유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1일 일선 학교에 “체육수업 확대 편성을 임시 중단하라”는 긴급 공문을 발송했다. 갑작스런 지침으로 인한 인력 부족과 무리한 수업시수 편성 등의 어려움을 받아들인 것이다.
전북도교육청도 22일 혼란이 우려된다는 판단에 따라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체육수업 확대를 유보하라고 지시했으며, 경기도교육청도 최근 성명을 내고 “교과부의 의견 수렴 없는 체육수업 확대 지침은 학교현장의 혼란만 초래 한다”며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충남도교육청도 무리한 체육수업 확대가 아닌 창의체험활동(동아리활동) 확대로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로 했다.
충남교육청 관계자는 “충남지역 학교는 시·군별 학교 규모가 다양하고 강사 수급의 어려움이 커서 일괄적으로 체육수업을 늘리기는 힘들다”며 “체육수업 확대 대신 동아리활동 지원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체능 교육 확대한다면서 음악·미술대회는 폐지(?)

문제는 학교폭력 대책 일환으로 펼쳐지고 있는 예체능교육 확대가 체계적인 로드맵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대전지역 음악교사들은 교육청 공문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대전시교육청이 20여년 넘게 진행해온 대전 초·중·고 학생음악경연대회를 올해부터 돌연 폐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합창, 현악, 관현악, 국악 등 다양한 부문으로 나뉘어 치러지는 학생음악경연대회는 올해로 23회째를 앞두고 있었다.

갑작스런 대회 취소에 일부 교사들은 “성적 위주의 학교생활에서 그나마 학생들이 합창과 악기연주를 통해 소질과 특기를 발굴하고, 정서를 함양시켰는데 올해부터 음악경연대회가 폐지된다고 하니 황당하다”며 “이같은 방침은 대전시교육청이 학교폭력 근절 대책으로 발표한 ‘예체능 교육을 통한 문화예술 기회 확대’와는 역행하는 행정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자체에서도 다양한 예술제와 체육대회 등이 많이 열리고 있다”며 “학생들을 강제 동원해 의무적으로 대회에 참가하게 하는 것 보다는 학교나 지역단위에서 자율적으로 경연대회를 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 음악경연대회를 폐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충남도교육청도 올해부터 도교육청 초등예능경연대회를 폐지하기로 했다.(중·고등학교 대회는 계속 진행)
합창과 합주 등의 음악과 미술 실력을 겨루는 예능경연대회는 올해로 22회째로,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는 학생과 담당 교사들에게 호응이 높은 예술축제였다.

이와 관련 충남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적으로 열리는 경연대회가 지나치게 경쟁이 과열돼 올해부터 초등부문 예능대회를 폐지하기로 했다”며 “대회를 없앤다고 해서 예능계 지원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며 앞으로도 학생 예술 동아리와 오케스트라 지원 등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계획성 없는 예체능교육 확대와 지원에 대한 교육계의 우려는 크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체육, 음악, 미술 등 예체능수업을 찬밥 취급하며 전인교육의 토양을 무너뜨린 교육당국이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체육수업을 확대하는 등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백년지대계인 교육이 원칙과 계획성 없이 흔들리고 있어 교육자로서 너무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