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공무원노조에서 상급 공무원들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베스트(best) 공무원'을 뽑으면서 ‘워스트(worst) 공무원’까지 뽑는 곳이 적지 않다. 며칠 전 충남도공무원노조도 ‘베스트’ 3명과 함께 ‘워스트’ 3명을 선정했다. 대전시공무원노조도 작년 말 ‘으뜸 공무원’과 ‘최하위 공무원’을 10명씩 뽑았다. 용어는 달라도 베스트와 워스트의 의미는 같다.

양쪽 다 베스트만 공표하고 워스트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충남도의 경우 워스트의 소속 부서까지 밝혀 그들이 누군지 알게 될 것 가능성이 크다. 이름과 부서를 공개하지 않더라도 줄곧 비밀로 유지되기는 어렵다. 노조 간부들이면 워스트 명단을 다 알고 있을 것이고, 그 내용을 통보받는 총무과나 비서실에서도 알게 될 것이니 비밀은 유지되기 힘들다. 말 많은 공무원 사회에서 ‘워스트 명단’은 관심 정보일 텐데 비밀이 유지될 수 있겠는가?

물론 후배도 선배를 평가할 수 있고 부하 공무원도 상관을 얼마든지 평가할 수 있는 시대다. 일처리나 도덕성 등에서 배울 만한 선배들을 ‘베스트’로 뽑아, 따라 배우는 것은 후배로서 기특한 일이다. 하지만 ‘가장 나쁜 상관’까지 가려내는 것은 잘못됐다.

노조의 상관 평가는 업무보다는 인물에 대한 호불호 평가가 되기 십상이란 점에서 워스트 선정은 비인간적이다. 어떤 평가든 1등과 꼴찌가 있고, 경기에선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평가 기준 안에서다. 따라서 꼴찌나 패자가 되더라도 그 상처는 제한적이다. 업무가 시원치 않아 승진이 늦은, ‘사람좋은 사람’도 적지 않고, 경기에서 진 패자가 오히려 인기를 얻기도 한다.

워스트 선정은 인격 망가뜨리는 폭력

하지만 공무원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워스트 선정’은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여론 평가식이라는 점에서 업무 꼴찌나 경기 패자와 차원이 다르다. 워스트 선정은 인격을 망가뜨리는 폭력이나 다름없다. 승진까지 좌우하는 - 결코 장난일 수 없는- 인기투표로 누군가를 ‘워스트’로 가리는 것은 평가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다.

노조 지도부 가운데도 이런 부담 때문에 워스트 선정을 꺼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전시노조가 재작년엔 ‘워스트 상관’ 대신 ‘워스트 행태’로 뽑았던 것도 그런 이유다. 노조원들 중에도 ‘베스트 상관’ 선정엔 참여하면서 ‘워스트’ 선정은 거부하는 노조원이 많다. 대전시노조의 경우 투표자의 절반 이상은 워스트 선정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평소 불만이 있는 상관이라 해도 차마 ‘못된 인간’이란 징표를 남기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다.

워스트로 뽑히는 사람 중엔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한 상사들이 적지 않다. 아래 사람들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공은 가로채는 상관답지 못한 위인들이 적지 않다. 필요없이 부하를 못살게 굴거나 자기만 똑똑한 독불장군형 상사도 워스트에 오르는 유형들이다.

이런 상관 아래서 일하는 부하가 겪는 고초는 짐작이 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고 그 상관을 고발하고 싶을 것이다. 아래 사람들의 권익 단체인 공무원노조한테 ‘워스트’ 선정을 거듭 요구하는 노조원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은 데도 이유는 있다. 노조의 워스트 선정은 ‘문제적 상관’들에 대한 일종의 대응 수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워스트 선정이 상관들의 못된 행태를 얼마나 개선시키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워스트 선정 이후 상관들의 행태가 좀 변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지만 그런 상사는 나오기 마련이다. 그게 인간사다. 효과가 있다고 해도 수단이 직장 동료의 삶까지 파괴시키는 방법이면 써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이런 ‘워스트 작업’에 동조하는 인사권자들이 적지 않다. 대전시에선 작년 워스트 리스트에 올랐던 사람이 좌천됐다고 한다. 당사자가 좌천 이유를 따지자 워스트에 포함된 사실을 알려줬고, 그 가족까지 알게 됐다고 한다.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고 해도 본인은 물론 가족이 겪는 상처는 못된 상관한테 겪는 부하의 상처보다 훨씬 클 것이다.

안희정 지사는 워스트 공무원 어떻게 보나?

충남도 노조도 워스트 공무원을 도지사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안희정 지사는 워스트 공무원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하다. 인사권자는 ‘워스트 정보’는 아예 외면하는 게 낫다. ‘업무 평가’가 아닌 ‘인간 평가’로서 못난 간부들을 ‘낙인찍는’ 작업에 동참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사권자라면 워스트가 아니라도 못난 간부에 대한 정보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고 인사에 반영할 수 있지 않은가?

과거 선비들은 윗사람으로서 아래 사람의 잘못을 고치려 할 때 대놓고 지적하기보다 넌지시 타이르는 방법을 썼다. 그것을 풍교(風敎) 또는 풍화(風化)라 한다. 반대로 아래에서 윗사람의 잘못도 지적할 수 있었다. 이때는 풍간(風諫) 또는 풍자(風刺)로써 하였다. 이때 풍(風)은 풍(諷)과 통용된다.

풍간(風諫)은 풍간(諷諫)이고 풍자(風刺)는 풍자(諷刺)와 같다. 권력에 대한 풍자도 그것이다. 풍교든 풍자든 넌지시 꼬집는 방식이다. 아래 사람이 못된 상관을 고치는, 좀 더 재치있고 품위있는 현대식 ‘풍간’은 없을까? 투표로 가장 나쁜 상관을 골라내는 방식은 너무 자극적이고 비인간적이다. / 김학용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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