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불행을 겪고 있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자식을 군에 보내면서 부모가 한결같이 당부하는 말이 있다. “부디 몸조심해라”. 이 말은 전쟁터로 끌려가던 시대나 평화로운 이 시대나 똑같이 변하지 않은 당부의 말이다. 군에 가서 불행을 당하는 젊은이들이 지금도 여전히 잇따르기 때문이다.

신세대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미니홈페이지에서 뜻하지 않은 ‘독자’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집필하신 책에 제가 나옵니다. 자식을 군에 보내놓고 추운 날씨에 걱정하는 부모님의 애틋한 심정을 표현하셨지요. 바로 거기 육군 수송학교에서 교육받았던 주인공이 저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이모티콘이 익살스럽게 붙어 있는, 짧지만 감개무량한 글이었다.

과거 내 글 속에 등장했던 군인이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방명록’에 나타나다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가 누구인가.『아들을 군에 보낸 아버지들』제하의 글 속에 그가 등장한다.
 
― 내 직장 사무실에는 공교롭게도 자식이 병역의 의무를 치르는 아버지가 셋이 있다. 한 직원의 아들은 육군 특전사에 근무하고, 그의 또 다른 아들은 신병교육 중이다. 다른 한 직원의 아들은 현재 육군 수송교육대에서 훈련 중이다. 그리고 나의 둘째 아들은 서울에서 의경으로 복무 중이고, 큰 아들은 ROTC훈련을 받고 있다.

날씨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요즘, 세 아버지의 아침 출근인사는 자연히 날씨로부터 시작된다. 특전사 아들을 둔 직원은 간밤에 아들한테 전화 받은 이야기부터 한다.

“참을성이 많은 녀석인데 어젯밤에는 ‘되게 춥네요!’ 하기에 ‘겨울이 이 정도는 돼야지, 춥다 춥다하면 더 추운 거다!’라고 딱 잘라 말했지요. 하지만 아비의 속은 어떻겠어요?” 이어서 신병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우리 집사람은 아침마다 찬물에 손을 넣어 보고는 ‘아이고, 이렇게 차가운데, 군대 간 우리 아들은 얼마나 고생할까’하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린답니다.”

이에 의경으로 복무하는 아들을 둔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아침마다 매연과 칼바람의 길거리에서 교통 소통시키는 의경들을 보면 나는 아무리 추워도 자동차 히터를 틀지 못합니다. ‘춥다’는 말도 함부로 내뱉지 못합니다.”

누구나 부모 마음은 이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로서 아무런 역할도 해 줄 수 없다. 사랑이 담긴 편지 한 통, 내 자식과 같은 전·의경이나 군인들을 만나면 “수고한다”는 말밖에는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음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 졸저에세이《아들아, 대한민국 아들아》에서

이 글에 등장했던 옛 직장 동료의 아들이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이젠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아버지의 과거 직장 동료 홈페이지에 반가움이 가득 담긴 안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 지난 2일 논산 육군훈련소에서는 새해 들어 첫 입영행사가 열렸다. 영하의 추위 속에 전국 각지에서 입영 장병들과 친지들이 모였다. 사랑하는 아들을 군에 보내는 부모의 눈물 어린 애틋한 장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과거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우리 고장 대전과 충남에서는 공교롭게도 군 복무 중인 20세 두 젊은이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전해져 가슴을 아프게 했다.

지난 2일 태안군 격렬비열도 해상에서 발생한 태안해양경찰서 소속 차 모(20)이경의 실종 사건과, 대전에서 음주운전 단속 중 뺑소니 사고로 중태에 빠진 둔산경찰서 소속 하 모 의경(20)의 가슴 아픈 소식이었다. 

바다에서 실종된 차 이경은 해양경찰관이 되기를 희망해 대학 1학년을 마친 뒤 지난해 11월 전경에 지원 입대한 신병이다. 음주운전단속을 마치고 경찰서로 복귀 하던 중 음주운전차량에 사고를 당한 하 의경은 현재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연초에 전해지는 이 두 가지 불행한 사고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 왔다. 자식은 부모의 품안에 있을 때 ‘내 자식’이다. 자식이 군에 입대하면 ‘국가의 아들’이 된다. 금쪽같은 자식에 대해 ‘관리책임’이 있는 국가는 가정에서 자나 깨나 염려하는 부모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안전’을 보장해 줘야한다. 

그런데 왜 이런 사고가 끊이질 않는가. 학업을 중단하고 황금 같은 시기에 입대한 자식들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겪고 있는 가족들에게 ‘관리책임’이 있는 국가기관의 ‘보호자’들은 무릎 꿇고 빌어야 한다. 평소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얼마나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돌아봐야 한다. 

영하의 추위에 몸을 아낄 수 없는 곳에서 복무 중인 이 나라 수많은 젊은이들의 안전을 위해 국민들은 기도밖에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 본 칼럼은 금강일보《윤승원의 세상風情》2012년 1월 12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 윤승원 / 수필가. 대전충남수필문학회장. 
금강일보 논설위원. 
010-7422-7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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