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에게 뒤집어씌운 ‘사과’
부하에게 뒤집어씌운 ‘사과’
  • 김학용 편집위원
  • 승인 2011.11.0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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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목민학] 염홍철 시장의 변명
   
   김학용 편집위원

대전시는 도시철도2호선의 기종(機種)을 비밀리에 바꿨다가 지난주 사과했다. 예비타당성(예타) 신청을 하면서 기종을 자기부상열차에서 모노레일로 변경하고도 이를 숨긴 데 대해 비난이 잇따르자 염홍철 시장이 사과한 것이다.

“미숙했다” “정직하지 못했다”는 말로 자세를 낮췄다. 시장은 “민관정위원회와 기자들에게 정확하게 브리핑해야 맞는데 정확하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간 것 같은 인상을 받고 있다”고 했다. 시장은 그러면서 “그런 행정은 좋은 행정이라 말할 수 없다. 그 점에 대해서 담당자를 상당히 꾸짖었다”고 말했다.

대전시가 잘못했고 그래서 사과도 하는데 그 원인은 부하직원에게 있다는 말이 되고 말았다. 그 다음날 신문방송은 일제히 ‘시장의 사과’로 제목을 뽑았지만 사실은 ‘시장의 변명’에 불과한 회견이었다.

정녕 염 시장은 ‘좋은 행정을 못하는’ 부하직원을 둬서 사과 아닌 사과를 하게 된 것일까? 2호선 기종 변경을 숨긴 사람이 정말 그 부하 공무원일까? 그 공무원은 기종변경을 숨길 아무런 이유가 없다.

-부하 공무원에게 책임 돌린 시장-

‘2호선’은 그 부하 공무원 이전에 염 시장 자신의 문제다. 누구보다 시장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예민한, 그래서 가장 신경 쓰는 현안이다. 잘못하면 시장 자신이 책임을 면키 어려운 중대 사업이다. 기종 변경은 불가피한 일이라 해도 ‘민관정협의회에 반드시 보고해야 할 사안이다.

그것을 뭉갤 것이냐 말 것이냐 언론에 공개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를 부하 공무원 맘대로 결정했다? 바보가 아니면 그럴 공무원이 없다. 나는 대전시에 바보 공무원이 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염 시장은 그날 회견에서 “최종 책임자로서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표현도 썼다. ‘일차적 책임자’는 따로 있다는 뜻이고, 그가 바로 시장이 꾸짖었다는 담당자 아니겠는가? 도시철도 문제에 관한 한 일차적 책임자도 최종책임자도 시장 자신이다. 적어도 이 문제는 공무원이 시장의 뜻을 받들어 수행하고 있는 데 불과할 것이다.

디트뉴스 보도대로 지난달 18일 염 시장이 담당 국장과 함께 기재부(기획재정부)를 방문했다가 자기부상열차론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이틀 뒤 모노레일로 변경해서 ‘예타’를 신청한 게 사실이라면 기종변경은 시장 자신이 최종책임자로서 뿐만 아니라 일차책임자로 한 일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는 문제도 시장 자신이 결정한 일로 보는 게 상식 아닌가?

시장은 그날 “(대전시가 또는 담당공무원이) 어물쩍 넘어간 것 같은 인상을 받고 있다”고 했지만, 시장이야말로 ‘사과’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사실은 부하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 어물쩍 넘어가려 한 회견으로 보인다.

시장은 왜 애꿎은 부하 공무원 탓을 하면서 ‘사과’ 아닌 ‘변명’을 해야 했는가? 물론 모든 현상에는 그 원인이 있는 법이다.

-시장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공무원 맘대로?-

재정적 행정적 낭비를 가져오고 있는 ‘2호선 논란’은 염 시장이 전임 시장의 정책과 억지로 차별화 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2호선은 1년 4개월만에 ‘전임시장 안(案)’ 그대로 되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염 시장 자신이 제안했던 ‘자기부상열차 안(案)’이 거부되면서 마지막 남은 ‘기종 차별화’마저 물거품이 되고 있다. 이로써 2호선 추진방식을 놓고 벌인 전·현직 시장간 승부는 현직 염시장의 ‘완패’로 결론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기종변경 사실을 즉각 알리지 못한 이유 아닐까? 또 기종 변경을 민관정협의회에 알려 논란이 벌어지면서 원치 않는 모노레일로 변경하는 것조차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걱정도 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부하 공무원보다는 시장이 훨씬 걱정할 일이고 숨기고 싶은 일이다. 공무원은 기종변경을 숨기는 ‘안 좋은 행정’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기종변경은 결코 숨길 수 없는 사안이고, 따라서 숨길 의도도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알려질 내용이지만 기종 변경으로 시장 자신의 ‘2호선’이 또 한번 오락가락한 꼴이 된 사실을 발표하는 것이 못마땅해 머뭇거렸던 것 아닌가 한다.

시장 자신의 말처럼 자기부상열차냐 모노레일이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기종은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장이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멀쩡한 부하직원을 ‘안 좋은 행정’이나 하는 사람으로 망신을 주면 안 된다. 그런 시장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도시철도 문제도 도청부지활용 문제도 그런 시장이라면 해결 난망이다.

-‘기종변경 은폐’보다 중요한 도덕성 문제-

   
 

그야말로 ‘만에 하나' 담당 공무원이 정말 바보처럼 시장 모르게 한 일이라면 꾸짖는 정도가 아니라 사표 받을 감이다. 그게 아닌 데도 애꿎게 부하 직원을 끌고 들어간 것이라면 공자가 혀를 찼을 것이다.

공자(孔子)는 염시장의 말처럼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즉 과오는 즉시 고치라는 말도 했지만, “군자(君子)는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구하고 소인(小人)은 남에게서 구한다”고 했다. 잘못도 없는 부하에게 뒤집어씌우는 상관은 소인일 뿐 아니라 상관 자격도 없다.

염 시장은 기종변경 은폐에 대해 사과한 다음날 아침 페이스북에 “글쓰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인 작가 교수 기자들에게 독자로서 하는 주문”을 올렸다. “사실대로 썼다는 것은 책임 회피이고 진실을 찾아내야”라고 썼다.

기자는 ‘기종변경’을 왜 은폐했는지에 대한 내밀한 진실까지 알고 싶지는 않다. 기종변경을 비밀에 부치자는 결정을 시장이 꾸짖었다는 담당공무원이 한 일이며, 시장 자신은 정말 모르고 있었고, 그래서 아무 언질도 하지 않았는가? 그에 대한 ‘사실’을 알고싶다.

이것은 기종 변경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150만 시민의 대표에 대한 신뢰와 도덕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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