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시

   

겨울이면 더욱 차분해지는 곳이 있다. 불교문화유적이 가득한 서산. 믿음의 여부를 떠나 한해의 마지막을 앞두고, 또 시작하면서 반성과 다짐의 시간을 갖기 위해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기 때문이다. 서산에는 마음이 활짝 열린다는 이름의 ‘아름다운 절집’, 개심사와 함께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마애삼존석불 등 ‘마음의 순례지’ 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무학대사가 그곳에서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바다에 뜬 절, 간월암에 가면 아름다운 일몰,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간월도 포구에는 태조 이성계에게 진상하였다는 어리굴로 지은 굴밥과 겨울의 별미 새조개 등 입이 호강하는 행복도 맛볼 수 있다. 일상에 찌든 마음을 씻고 지난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여행의 목적지, 서산이다.

# 개심사 소나무숲길에 마음 열리고

“ 개심사(開心寺)에 가면 정말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진눈깨비가 흩뿌리는 12월의 어느 날, 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서산의 개심사를 찾았다. 가야산 한줄기가 삐쳐 나온 상왕산 자락에 자리한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14년에 창건된 13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고찰이다. 당우가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자그마한 절로, 가야산에 자리한 다른 사찰들처럼 웅장함은 없지만 아기자기한 멋은 비할 곳이 없다. 그래서인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의 저자 유홍준 씨는 우리 땅에서 가장 사랑스런 절집의 하나로 손꼽기도 했다.

   
개심사 초입을 알리는 돌비석을 지나면 돌계단이 이어지고 소나무 특유의 송진 냄새가 진동하는 숲을 만나게 된다<사진 한국관광공사>

개심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개심사 초입임을 알리는 ‘개심사’, ‘세심동(洗心洞)’ 이라 새겨진 두 표석을 따라 울창한 소나무숲길로 들어선다. 5월 초록의 숲은 아니지만 채도 낮은 낙엽들이 두툼히 깔린 12월의 숲길도 꽤 운치가 있다. 소나무밭 사이로 굽이진 산길, 그리고 구불구불한 200계단길은 개심사 경내까지 이어지는데 오르막이 꽤 심하다. 허나 누구하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다.

그 표정에는 고단함 보다는 오히려 정겨움과 설렘이 가득하다. 개심사, 그 이름이 가진 뜻처럼 닫혔던 마음이 저절로 열려서일까? 한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자연 그대로의 맛을 살린 길을 오르며 심호흡 몇 번 하니 실로 가슴 속 답답했던 것들이 하나둘 풀리는 느낌이다.

# 외나무다리 건너 만나는 피안의 세계

   
경지(鏡池)라는 연못은 개심사의 상징과도 같다.

드디어 절집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절 입구 돌계단에 발을 디디니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는 듯 늘어선 소나무 가지가 그늘을 드리운다. 그리곤 사각형의 길쭉한 연못과 외나무다리가 눈앞에 그려진다. 개심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자, 개심사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이 연못은 피안과 현세를 나누는 경계의 의미가 있다. 연못 위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비로소 부처님의 품안에 든다는 의미다. 떨어진 낙엽이 비치는 연못 정취가 제법이다. 연못 위 외나무다리도 멋스럽다.

바로 경내로 들어서기보다 연못가에 마련된 작은 벤치에 앉아 지난 일들을 잠시 떠올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보는 것도 좋다. 운치 가득한 연못의 정취, 청신한 솔바람과 그윽한 솔향기에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고 오래도록 머물게 될지도 모를 일. 조심조심 외나무다리를 건너니 해탈문, 안양루, 심검당, 대웅보전이 차례로 다가온다. 특히 좁다란 해탈문을 지날 때면 어느새 마음의 문이 거의 열린 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된다.


# 소박하지만 대범한 … 마음을 끄는 절집

   
자연 그대로의 미학이 돋보이는 개심사의 건물들. 아름다운 대웅보전, 그리고 심검당의 모습
   
심검당의 모습
   
 아름다운 대웅보전,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 또한 개심사이다. 처음으로 보이는 대웅전은 규모가 크진 않아도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는데, 다포계와 주심포계 양식을 함께 갖춘 건물로 건축사적 가치도 높다. 개심사 경내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바로 대범함과 소박함을 함께 전해주는 독특한 분위기의 심검당이다. 단청을 하지 않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휘어진 목채를 그대로 기둥과 대들보로 쓴 것도 그러하다.

특히, 부엌으로 드는 문과 어울린 기둥과 들보가 백미다. 상왕산 개심사라는 예서체의 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안양루에 오르니 아담한 절집의 풍경과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판의 글씨는 안양루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마음을 글씨에 그대로 담아낸듯하다. 개심사는 참으로 자그마한 절이다. 여타의 절처럼 관광 온 사람으로 북적대지도, 요란하게 꾸며진 당우도 없다.

그렇지만 충남의 4대 사찰로 불릴 만큼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저절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곳으로 이끌게 한다. 개심사는 조용히, 그리고 홀로 떠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을 위한 쉼표 여행지로 제격이다.

# 부드러운 백제의 미소, 마애삼존불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난 백제후기 작품인 서산마애삼존불의 미소

개심사에서 나와 간월암의 일몰을 보기 위해 간월도로 향한다. 간월도로 가는 길에는 마애삼존불을 만날 수 있다. 운산면 가야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마애삼존불은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난 백제후기의 작품으로 얼굴 가득히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어 당시 백제인의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 위에 서 있는 본존인 석가여래입상, 좌측에 보살입상, 우측에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고 석가여래입상은 머리 뒤의 보주형 광배와 미간의 백호공, 초생달 같은 눈썹, 미소 짓는 그 입술이 친근감을 준다.

개심사와 함께 서산의 대표사찰인 부석사는 저녁놀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부석사의 모든 전각들이 서향을 하고 있는데 안면도 등 바닷가가 가까이 있어 태안반도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고, 서해바다로 떨어지는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산 부석사이다. 특히 안개 낀 도비산의 정취는 맑은 날의 서해바다 풍경 못지않은 감흥을 자아낸다. 이런 부석사의 아름다움이 하나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 바다에 뜬 절 간월암, 일몰의 황홀경

   
간월암은 특이하게도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어 해마다 12월 31일이면 송구영신을 위해 찾아온 이들이 많다

바닷바람에 실려온 향긋한 굴내음이 진동을 한다. 조선조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진상하였다는 어리굴로 유명한 간월도에 다다랐음이다. 서산간척지로 유명한 간월도리의 간월암은 하루 두 번 씩 밀려오는 밀물 때는 물이 차서 섬이 되는 곳이다. 그러나 물이 빠지면 좁은 자갈길이 드러나면서 육지와 연결된다.

간월암은 간월도, 남당이, 안면도 등 주변의 그림 같은 풍치에 둘러싸여 바다에 떠있는 모습이, 마치 구름 속에 피어난 연꽃 형상을 하고 있다. 조선왕조 도읍을 서울로 정한 무학대사가 고려 말 이곳에 암자를 짓고 무학사라 불렀고, 이 절이 폐사된 터에 만공대사가 중건하여 간월암(看月庵)이라 했다.

이름처럼 간월암은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만큼 보름달 전망이 좋은 곳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곳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는데, 특히 안면도 쪽으로 지는 일몰이 압권이다. 특히나 겨울에는 수십만 마리에 이르는 가창오리 떼의 군무 속에 지는 일몰은 황홀경 그 자체라고. 일출과 일몰을 한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 만큼 12월의 마지막 날 찾는다면 마무리와 시작을 동시에 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서산 하나. 겨울별미 - 영양굴밥]

   

간월도에 왔으니 굴밥은 꼭 먹어봐야 할일. 서산 간월도에서 생산되고 있는 ‘참굴’ 은 임금님 수라상까지 진상된 특산물로 남해산보다 맛이 신선하고 담백하며 향이 시원하다.

간월도는 굴밥이 유명하다. 인근 바닷가 아낙들이 채취한 굴을 쌀과 함께 솥에 넣어 참기름을 넣은 후 밥을 한다. 밥이 다 되면 돌솥에 각종 야채와 양념장을 넣고 비빈다. 쌀과 함께 익은 굴이 은은한 향을 내는데 생굴의 비린내가 전혀 없고 입안에 씹히는 굴의 육질이 감칠맛을 낸다.

[서산 둘. 주변 가볼만한 관광지]

   
해미읍성
   
보원사지
   
정순왕후 생가

<여행안내> 

◎ 개심사 가는 방법
*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 - 32번국도 - 운산 - 한우개량사업소 - 개심사입구 - 개심사
* 경부고속도로 천안I.C - 아산 - 예산 - 덕산 - 해미 - 운산방향 - 개심사 입구 - 개심사

◎ 간월암 가는 방법
*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 - 32번 국도 - 서산 - 649 지방도로 - 부석 - 서산 AB지구 방조제 - 간월암
* 경부고속도로 천안IC - 아산 - 예산 - 29번 국도 - 덕산 - 해미 - 서산 - 부석 - 서산 AB지구 방조제 - 간월암

◎ 간월도 굴밥 맛집 안내 : 큰마을영양굴밥(041-662-2706), 맛동산(041-669-1910), 전망좋은굴밥(041-662-4474), 간월도 회센터(041-664-8875)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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