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30년간 동네 쓰레기 줍고 다니는 김성문옹
30년간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 김성문옹. 사진 촬영을 위해 쓰레기를 찾았으나 일대에는 보이지 않아 낙엽으로 대신했다.<중구청 소식지 제공> |
주위사람들은 나이도 많은 김옹의 솔선수범을 만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옹은 인생철학이 확실하다. “내가 조금 손해 보면 상대방이 편해진다”는 것이다. 김옹이 쓰레기를 줍게 된 계기는 30년 전 보문산에서 만난 한 재일동포 할아버지 때문이다. 그 교포 할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면서 ‘내가 조국이라고 한국을 지금까지 7번이나 왔는데, 이제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당시 40대 중반의 김성문씨는 왜 그러시냐고 정중히 물었다. 교포 할아버지는 “각종 오물과 가래침으로 너무 더러워서 전염병에 걸릴 것 같다”며 “일본에는 이렇게 더러운 곳이 없다”고 말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김씨는 쓰레기를 주으면서 “그래도 한국에 와야죠”라고 간청했다. 그 교포노인은 “젊은이를 생각해서 한 번 더 한국에 오지”라고 대답했다. 공주 우성면 우성리가 고향인 김옹은 9남매의 막내로 어렵게 살다가 12세 때 고향을 떠나 숱한 고생을 하며 살았다. 다리 밑에서 가마니를 덮고 살았던 시절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교만한 마음이 들 때마다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자”며 자신을 다독인다.
김옹은 일생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산다. 첫째, 거짓말을 하지 말자. 둘째, 시간을 지키자. 셋째, 돈을 빌리지 말자. 지금도 고생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이틀씩 굶어봤냐, 빚쟁이 10~20명씩에게 당해봤냐, 다리 밑에서 가마니 덮고 자봤냐’를 물어본다. 김옹은 “배고픈 사람이 배고픈 사람을 이해하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이해한다”고 역설했다. “요사이 한국이 잘 살게 된 것도 일제시대 혹독한 체험을 한 조상들의 덕분”이라며 “돈 좀 있다고 좋은 것 입고 거들먹거리며 관광 다니는 것”을 질타했다.
“요즘 사람들은 돈버는 기술은 가졌으나, 돈 쓰는 기술은 갖지 못했다”며 2남1녀의 자녀들에게 ‘하루 한 시간씩 자원봉사해라’ ‘수익의 5%는 좋은 데 써라’ ‘술, 담배 먹지 말고 그 돈을 좋은 데 써라’ ‘쓸 줄을 모르면 우체국의 남돕기 통에 넣어라’고 가르친다. 김옹은 또한 “내가 어려웠을 때 남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자리에 있지 않았다”며 남 돕기를 실천하고 있다. 주말에 김옹은 목척교나 대전역 주변의 노숙자 곁에 가서 몰래 봉창에 몇 천원씩 넣어주고 온다. 그 돈은 일주일에 두 번 점심을 굶어서 만든 돈과 노인수당 9만원으로 마련한다.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른다”며 대학교수인 막내딸이 간호학과 대학교수로 재직하는데 “환자들에게 부모보다도 더 잘해드리라”고 말한다는 김옹은 자신명의 재산은 한 푼도 자식들에게 안 주고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7가지의 병을 가지고 살아 조금만 휴지를 주워도 허리가 아프지만 사는 날까지 세상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쓰레기를 줍겠다고 생각하니까 건강도 좋아지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옹을 취재하면서 또 한 분의 도인을 만난 기분이다. 김성문(金聖文)옹은 물질만능의 살벌한 생존경쟁 시대에 한줄기 빛이었다. 진정 세상을 달관한 철학가이며 인생고수가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행복하기만 하다. <신도성 중구소식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