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인물] 김종남 환경련 사무총장…"생태 농업에 관심"

   
 지난 7월 서울시 종로구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만난 김종남 사무총장.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기자에게 있어 특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터뷰 대상이 눈길을 끌만한 이슈를 제기했다거나 놀랄만한 성과를 거뒀다면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 되지만, 그의 삶 전체를 글을 통해 담아내면서 하나의 키포인트를 찾아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차세대 인물 취재를 위해 만난 김종남(43)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도 처음에는 그런 대상이었다.

기자가 김 사무총장을 만난 때는 지난 7월의 어느 날이었다.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이 있는 종로구 누하동까지 전철과 택시를 번갈아 타며 이동한 기자는 김 사무총장의 얼굴을 본 순간 왠지 익숙한 모습임을 느낄 수 있었다.

검게 그을린 그에게서 날카로우면서도 약간은 ‘보이시’한 이미지가 느껴졌다. 인터뷰 도중 기자는 속으로 ‘아하’를 외쳤다. 중·고등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본 판화 작품 속에 담긴 갑오농민혁명에 참가한 농민들의 눈빛을 김 사무총장은 닮아 있었다. ‘저항’ ‘민중’ ‘민주화’ 등의 단어가 연상되기도 했다. 실제로 김 사무총장은 현재 사이버 망명을 한 상태로 우리에게 낯선 이메일 주소(jongnamdj@gmail.net)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땀을 비 오듯 쏟는 기자를 위해 시원한 식혜 한 잔을 내왔다. 인터뷰 장소는 2층의 넓은 공간이었지만 아직 해가 지지 않았기에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사무실 주위를 둘러봐도 에어컨은 보이지 않았다.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니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했다.

7월에 이뤄진 인터뷰를 3개월이 다 지난 지금 시점에서 쓰게 된 이유를 묻는다면 김 사무총장의 바쁜 일상과, 취재원을 괴롭히지 않는 기자의 너그러움(?)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성장기가 담긴 사진과 추천 글을 보내주기로 한 김 사무총장은 8월 쯤 “면목이 없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사실 그와 기자가 꼭 닮은 점이 바로 그런 부분이다. 무언가 정말 중요한 일이 있을 땐 나머지를 전혀 돌보지 못하는 것.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4대강 사업에 대해 환경운동연합이 강력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 인터뷰에 관한 소소한 내용을 꼼꼼히 챙기기란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종남'이란 이름은 딸 그만 낳고 아들을 낳겠다는 부모님의 바람 때문이라고. 어머니, 남동생과 찍은 사진.
   
 부모님의 학구열 덕에 대전 성모여고에 입학한 김종남 사무총장.
“고향이나 부모님, 형제, 대학 등 자기소개를 좀 해 주시죠?”

기자의 첫 번째 질문을 받은 그는 고향 얘기를 먼저 꺼냈다. 충남 보령군 청소면 진죽리의 중농(中農)의 집에서 태어났다는 김 사무총장은 “제 이름이 종남(鍾南)이잖아요. 딸을 그만 낳고 아들을 낳고 싶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인데, 저까지 딸이 넷이고 그 다음으로 아들이 태어났어요. 이름값을 한 셈이죠”라며 웃었다.

지금은 통폐합으로 없어진 청웅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김 사무총장은 교육열이 대단한 어머니 덕에 대전 성모여고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어머니는 굉장히 지혜로우신 분이셨다. 당신처럼 ‘농사지으며 살지 말라’며 대전으로 고등학교를 보내셨다”고 회상했다.

고향인 진중리는 면 소재지에서 40분 정도 걸어가야 나오는 곳으로, 오천항이 가까워 언제든지 바다를 볼 수 있었고, 작은 저수지와 산이 있어 봄이 되면 친구들과 진달래를 따먹고 놀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그는 소개했다. 어쩌면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이 그의 환경운동에 밑거름이 됐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창시절에는 공부에 자신감도 있었다. “글짓기나 과학경시대회, 웅변대회 등에 자주 나갔다”는 김 사무총장은 “부모님은 정말 열심히 사셨다. 우리에게 특별한 가르침보다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몸소 실천하셨다”고 말했다. 팔순을 넘기신 그의 부모님은 현재 대전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가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충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직후부터였다.

“1988년 2월에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 당시에는 운동권 여부를 떠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충남대 민주광장이나 도서관에서 지내며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에 대해 교육을 많이 받았기에 졸업 후 현장에 가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는 대학시절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면서 졸업 직후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는 대전YMCA 간사로 있던 박정현 선배(현 대전녹색연합 사무처장)의 소개로 1989년부터 자원봉사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시민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대전·충남지역 시민운동 1세대로 불리는 그는 20여 년의 활동 기간 동안 힘들었던 순간 보다는 보람 있는 기억이 더 많았다고 한다.

“운동이라고 하는 게 당장 어떤 결과가 나오는 일이 아니고, 뚜렷한 성과물을 얻게 되는 과정도 아닙니다. 꾸준히 지속해야 하고, 해결되지 않더라도 일정한 정책적 변화가 이뤄지는 연속선상에 있는 일도 있죠”

그는 특히 1990년 대 초에 대전지역의 최대 이슈였던 미8군의 계룡대 이전 계획을 무산시킨 것에 대한 보람이 가장 컸다고 소개했다.

“당시 지역의 모든 시민사회세력이 모여 미8군 이전 반대 활동을 벌였습니다. 정지강 빈들감리교회 목사님이 대책위원장이셨는데, 저는 신출내기 간사로서 유인물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했었죠. 비록 초보적인 일을 하는 데 그쳤지만 그 운동이 성공했을 때 기분도 좋았고 보람이 컸습니다. 시민운동, 민중운동, 통일운동 세력은 물론 대학생과 청년, 원로들까지 하나로 뭉쳤었죠”

월평공원-갑천 생태계 보존운동도 김 사무총장에게 있어 보람 있는 활동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갑천도시고속화도로 6공구를 건설할 경우 월평공원 습지가 훼손되기 때문에 이를 지키기 위해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저지 운동을 벌여왔다고. 당시 김 사무총장의 직함은 환경운동연합 총무국장이었다.

   
남편인 우희창 전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에 대해선 "저보다 훨씬 마음이 넓고 따뜻한 사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 사무총장의 남편은 우희창(45) 전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이다. 김 사무총장은 “가정은 저희 둘을 대신해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돌보고 계시다”며 “그야말로 ‘날라리’ 부모이자 자식인 셈”이라고 웃음을 지었다.

“시부모님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그는 남편에 대해선 “저보다 훨씬 마음이 넓고 따뜻한 사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신적으로도 든든한 지지자인 그의 남편은 충청투데이 전신인 <대전매일>과 <동양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YMCA 간사로 활동하면서 공정선거 감시운동을 벌였던 김 사무총장은 출입기자였던 남편과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프러포즈는 조금은 황당했다고 한다. “청주 상당산성에서 만난 뒤 청원군 문의면에서 식사를 한 후 대청댐을 지나 남편의 집인 신탄진으로 이동했는데 그날 갑자기 저를 부모님께 인사시키겠다고 해서 당황했죠. 저는 ‘어떻게 사전에 얘기도 없이 그렇게 할 수 있느냐?’며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과적으로 ‘웃기는 프러포즈’에 넘어갔답니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황당하다니까요...(웃음)”

시민운동 과정에서 김 사무총장은 여러 명의 ‘멘토’를 만날 수 있었다. 대전환경운동연합 초대 사무국장을 지낸 김광식 씨와 박정현·김제선 씨 등이 ‘운동가 김종남’으로 거듭 태어나는 데 자양분을 줬다고. 또 충남대 박재묵 교수와 공주대 안정선 교수, 광제한의원 문상원 원장 등도 김 사무총장의 버팀목 역할을 아직까지 해 주고 있다.

지난 4월 1일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으로 취임하기에 앞서 그는 부담이 컸다고 한다. 그동안 대전을 기반으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했다면 이제는 대통령과 중앙 정부를 상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대운하 건설에 반대해 온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의 견제가 노골화 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도 김 사무총장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제 운동의 거점은 대전이었고, 20년 간 시민운동을 해 오면서 이제는 다른 영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사무총장직을 맡는 것에 대해 많이 주저했었죠. 지역에서 사회적 기업을 만들 생각도 했었거든요. 또 중학교 1학년인 아들(우중혁)에 대한 엄마로서의 사명감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그런데 대전환경운동연합 전·현직 의장님과 동료, 후배들이 모두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해 주셨고, 결국 이 자리에 오게 됐습니다”

   
 20여년 간 시민운동을 하면서 만난 여러 명의 '멘토'가 여전히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가 취임하기 얼마 전 최열 전 대표가 검찰의 조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같은 위기 상황 때문인지 활동가와 임원들이 참여하는 선거인단에 의한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 구성원들의 합의와 내부 토론을 통해 김 사무총장은 선출됐다. 그런 만큼 환경운동연합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다시 복원시키는 일이 그의 첫 번째 임무이기도 하다.

한반도 대운하에 이어 4대강 살리기 논란 때문인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김 사무총장의 우려는 깊고 컸다. 그는 특히 이명박 정부를 “소통하지 않는 정부” “전혀 녹색이 아닌 것을 녹색이라고 말하는, 언어를 왜곡하는 정부”라고 규정했다.

“녹색성장의 간판인 4대강 사업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22조 2천억원의 예산 중 수질개선에 들어가는 4조원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멀쩡한 하천의 제방을 높이고 바닥을 긁어낸 다음 콘크리트로 깐다는 것인데, 이것은 오히려 생태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합니다. 4대강 사업은 수질은 물론 생명을 살릴 수도 없으면서 토건 산업을 진작시키는 데 ‘올인’하는 것으로 이런 잘못된 정책은 당장 중단돼야 합니다”

그에게 있어 시민운동은 혁명이 아닌 개혁의 일환이다.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데 미력하나마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힘을 쏟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이를 통해 사회 발전과 변화에 기여한다면 개인적으로도 보람과 성취감을 얻겠죠?”

그러면서 그는 “벌써 20년 동안 시민운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저를 믿어주고 격려해준 주변분들, 그리고 가깝게는 제 남편과 가족들”이라고 말했다.

애꿎은 질문도 하나 던졌다. “시민운동 말고, 아예 정치 일선에 뛰어들 생각은 없나요?” 그의 답변은 열려있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닫혀있지도 않았다.

“시민운동가들은 미래 비전이나 가치지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고, 국가나 지방정부의 정책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안정치 또는 녹색정치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그게 꼭 저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사무총장의 임기(3년)가 끝난 뒤의 활동에 대해서는 어렴풋하나마 계획을 소개했다. 대전으로 돌아가서 생태농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친환경 급식을 제공하고 싶다는 것.

   
 그는 "우리 지역 리더들도 녹색가치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의 시민운동에 대한 방향성에 대해서도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전통적 방식으로 하는 시민운동이 위기에 처한 것은 사실”이라는 그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표현할 줄 아는 국민들로 바뀌었다고 봅니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시민운동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디트뉴스24> 독자들과 대전·충남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을 향해 “녹색가치를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충남은 농촌형 공동체이고, 대전은 소비적 성향이 강한 지역임을 감안할 때 물리적·인적 자원을 잘 갖춘다면 우리 지역에 맞는 생태주의 발전 모델, 그야말로 녹색성장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지역 리더들도 녹색가치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2시간에 가까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직은 그의 미래가 정형화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시민운동가의 삶’이란 절정기는 있을지 몰라도 그 자체를 성공이라고 규정하기는 어색한 측면도 있다.

아직까지 틀에 박혀 있지 않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의 변화와 성장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남은 임기를 마친 뒤 다시 대전으로 돌아올 예정인 김종남 사무총장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종남 사무총장: 010-5492-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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