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촌수필] '경찰의 날' 일선 경찰관의 '계족산 산행기'

글. 사진 / 윤 승 원(수필가. 경찰관. 대전북부서 정보과 근무)

"경찰관들은 '생일'도 없어! 그러기에 '경찰의 날'이 되면 더욱 쓸쓸한 거 아냐?" 

매년 경찰의 날이 되면 어김 없이 듣게 되는 동료 경찰관들의 푸념이었다.  

◆ 관내 치안이 평온했기에 기념일 개최도 가능한 일 

경찰관들이 하루라도 마음 놓고 편히 쉬려면 관내 치안상태가 평온해야 가능하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었다. 어느 핸가는 '경찰의 날'에 벌어진 집단시위 현장에서 고성능 마이크를 잡은 시위 주동자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뜻 깊은 '경찰의 날'인 데도 우리들 때문에 쉬지 못하는 저 수많은 경찰관들을 위하여 조금 서둘러 일찍 끝냅시다." 

그러자 시위대들은 "와~"하면서 큰 박수로 호응했지만 '경찰의 날'도 잊은 채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길거리에서 인내심 하나로 버티는 경찰관들은 박수는커녕 누구 하나 그들에게 개인적인 의사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누굴 약올리나?"

오히려 지나가는 시민들이 이런 말을 하며 '생일'도 없이 고생하는 경찰관들을 안타깝게 바라다 볼 뿐이었다. 

   
▲ 대전북부서의 뜻깊은 '경찰의 날' 기념식 - 관내에 큰 사건사고와 집단 민원이 없이 비교적 평온했기에 이런 기념식이 가능했다. 

올해 '경찰의 날'에는 다행히 관내 치안이 조용했다. 자축 행사를 온전히 치를 수 있을 만큼 평온했다. 기념 행사를 마친 경찰관들은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머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뜻 깊게 보내려고 궁리하였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병석에 계신 S경위는 기념식이 끝나자 마자 서둘러 퇴근했고, 모처럼 가족과 함께 외식 후 영화관람이 약속되어 있다는 신세대 경찰관 K경장도 대열에서 일찌감치 빠져 나갔다.  

나는 동료 직원들과 함께 어울려 인근 계족산에 등산을 하기로 했다.

   
▲ 어느 쪽으로 오를까? - 계족산 안내판 앞에서 길 안내하는 동료 경찰관

 

   
▲ 경찰의 날 '계족산 산행' - 모처럼 동료들과 함께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산행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려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불어 다소 쌀쌀한 날씨였으나 막상 산에 오르니, 햇살이 반짝거리며 눈부셨다. 모처럼 산행을 즐기려는 경찰관들을 위해 하늘도 잠시 비를 멈춰 준 것 같았다. 

◆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공교롭게도 거의가 경찰관들 

'죽림정사' 우측으로 오르는 계족산은 산세가 가파르고, 돌 계단도 많아 모처럼 산에 오르는 나로서는 허벅지가 뻐근하고 숨이 금방 가빠왔다. 전국 명산을 두루 다녀본 경험이 있는 한 정보관은 조금도 지치는 기색이 아니었다. 날렵하고 가벼운 몸으로 가장 앞서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동료 직원들은 모두가 부러워했다.  

   
▲ 봉황정에서 기념촬영 - 산 정상에 올라 필자의 필수휴대품인 '디카'를 꺼냈더니, 뜻밖에 이곳에서 만난 인접 경찰서 직원이 선뜻 '촬영봉사'를 해 주는 것이었다. (맨 위로부터 이홍우 정보보안과장, 한만환씨, 모자 쓴 이가 필자, 임재성씨, 김인찬씨, 이흥구씨)

이윽고 정상에 올랐다. 봉황정(鳳凰亭)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곳에서 만난 얼굴들이 모두가 낯익은 얼굴들이 아닌가.  

오늘은 유난히 산행하는 사람들이 적었다. 평일이기 때문이다. 직장 일에 바쁜 시민들이 평일에 여기 오른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알고 보니 그들은 공교롭게도 인접 동부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경찰의 날' 산에서 만나는 이들이 누구겠어?" 

북부경찰서 직원들과 동부경찰서 직원들을 빼고 나면 오늘 계족산에 오른 시민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다면서 동행한 김경사가 정확한 분석(?)을 해 주었다. 

정상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한밭'고을은 그 '크다'는 이름만큼이나 드넓었다. 단풍이 곱게 물든 산 정상에서 드높은 하늘에 그림 같이 펼쳐진 흰구름을 함께 바라다 보는 것 또한 이 가을에 감탄할 수 있는 청아한 아름다움이었다. 

   
▲  계족산 정상에서 바라본 대전시내 - 드높아 보이는 하늘의 뭉개구름과 더불어 드넓은 '한밭'도시의 풍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경찰의 날' 덕분에 맑은 공기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만끽하면서 우리는 산을 내려왔다.

 ◆ 산을 내려오면서 문득 떠오르는 '강렬한 메시지' 

산을 내려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오전에 기념식장에서 본 영상물(경찰청 제작)의 인상적인 한 대목이 아직도 여운으로 진하게 남아 뇌리를 자꾸만 스쳤다. 짤막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가 담긴 '내레이션의 멘트'였다.  

"경찰 최고의 가치는 국민들의 평안한 삶이다" 

그렇다. '경찰의 날'은 국민들로부터 노고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축하를 받는 기념일이다. 그러나 경찰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자신의 모습을 한 번쯤 곰곰이 뒤돌아 보는 '성찰의 날'이기도 하다. 거창한 사명감 따위가 아니다.  

소박한 나의 삶의 철학이다. 나침판과 같은 인생 덕목도 오늘 같은 날 혼자 조용히 곱씹어 봄직하다. 더 멀게는 평소 나의 모습이 미래 나의 자식들에게 어떤 모습의 경찰관 아버지로 각인되어 비쳐질 것인가도 조용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 정겨운 하산  -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모처럼 홀가분하고 유익한  '경찰의 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아마도 그런 생각은 오늘 나와 함께 산행을 한 동료 경찰관들 모두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미안한 마음도 떨치기 어려워 

그런데 갑자기 집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미안한 생각을 떨쳐 버리기 어려웠다.

서구 내동 네거리쯤 이르렀을 때, 매연과 소음의 거리에서 교통사고 처리 근무에 여념에 없는 경찰 동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경찰의 날'에도 쉬지 못하고 경찰서에서 24시간 당직근무를 하는 동료직원이며, 경찰의 날인지 알턱이 없는 술주정뱅이들에게 온갖 험악한 말을 들으면서 공연히 멱살을 잡히기까지 하는 지구대 순찰 근무자들, 어디 그뿐인가. 

불철주야 구두 코가 벌어지도록 치안 현장을 누비는 자식과 같은 전.의경 대원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범인들을 쫒고 있는 수많은 경찰 동료들이 있기에 모처럼 이런 산행이나마 동료들과 함께 즐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한 것이다.◈ 

[필자소개]


윤승원 / 경찰관. 수필가. 90년 '한국문학' 지령200호 기념 지상 백일장 장원으로 등단. 2001년 '경찰문화대전' 금상 수상. 수필집 '삶을 가슴으로 느끼며', '덕담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우리동네 교장 선생님'. '부자유친', '아들아, 대한민국 아들아' 등을 펴냄. 한국문인협회회원, 한국수필가협회회원. 현재 대전북부경찰서 정보과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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