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병원 순환기내과 최재웅 교수

"한줄기 생명을 바라보며 포기하지 않고 물을 주며 돌본지 4년여 만에 꽃봉오리를 맺은 것이다"

"50만명의 급성심근경색(AMI)환자 가운데 70%이상이 응급실을 통해 입원을 하는데, 증상이 발생한 후 적정시간(2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해, 30분내에 반드시 치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의료진의 초기대응은 물론이고, 수송체계의 보완도 시급한 문제죠"

진료실에서 만난 최재웅 교수는 AMI환자에 대한 응급처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최 교수의 이러한 강한 의지는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실시한 '허혈성심장질환 관련 시술의 적정성 평가'에서 을지병원이 우수한 평가를 받는 결실로 이어졌다. 심평원이 전국 272곳의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평가에서 기준 통과 병원이 단 31%에 불과했다는 통계걸과를 두고 봤을 때 매우 의미있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전자제품 고치다 사람 고치게 돼

최 교수가 이렇듯 열정적인 의사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스운 얘기지만 라디오, 보온밥솥 등 전자제품의 희생이 있었다. 전자제품 수리에 관심이 각별했던 최 교수는 매일 고장 난 물건이 없는지 찾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멀쩡한 물건을 일부러 고장내 고치기를 반복하는 희한한 취미가 있었다.

중학교 시절 다른 친구들이 영어, 수학 공부에 심취해 있을 때, 최 교수는 이처럼 각종 전자제품 수리에만 열중했다고 한다. 당연히 최 교수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공고에 지원하려 했고 이 때 만난 기술선생님의 충고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같은 수리지만 이왕이면 기계보다 사람을 고치는 일을 해보는게 어때?". 고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빠져들던 최 교수였기에 기술선생님의 제안은 새로운 목표가 되었고 그 꿈을 이뤄 의대에 진학했다.

◆4년동안 한줄기 잎만 살아 있다 최근 꽃봉오리를 맺은 최 교수방의 난.

최 교수는 사람과 기계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 고장이 나는 부분도 유사하고, 그래서 어린 시절 취미삼아 했던 일들이 의사가 된 후 진단을 내리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며 여전히 자신의 취미를 뿌듯하게 소개했다. 하지만 차이점을 설명하는 최교수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기계는 고치다 안되면 포기해도 되지만, 생명을 다루는 일은 절대 그럴 수 없죠. 신성한 마음으로 단 한줄기라도 생명의 끈이 남아있다면 고치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저 난에 꽃핀 것 보이세요?"라며 빼곡한 책 틈으로 단아하게 내민 호접란의 꽃 봉오리를 가리켰다.

2002년 진료부장을 지내던 시절 장염으로 입원한 최 교수에게 故 서규석 을지의대 석좌교수(당시 을지병원 부원장)가 보내준 난이란다. 햇빛 잘 드는 창가에 두고 가끔 물을 주며 돌봤지만 거의 다 죽었던 난이라고.

오래전 죽은 난을 버리지 않고 둔 이유는 단 한줄기 잎이 파랗게 남아 있어서였다. 한줄기 생명을 바라보며 포기하지 않고 물을 주며 돌본지 4년여 만에 꽃봉오리를 맺은 것이다.

구중궁궐 공주인가 대갓집 규수인가
여린 듯 고운 자태 자꾸 눈길 간다.
찬바람도 싫다. 다습도 싫다. 고온도 싫다.
까다로워 조심스럽지만 그것마저 매력인 너의 향기 너무 곱다.
나를 보며 방긋방긋 나도 따라 벙긋벙긋
<蘭/무정 - 정정민>

대갓집 도령 같은 외모에 생명을 다루는 일에서 만큼은 까다롭기 그지없는 최 교수와 난꽃이 어딘지 닮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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