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수 나라신경정신과의원장..."작품집 내는게 꿈"

◆ 박권수 나라신경정신과 원장.
“환자와의 진료를 통해 세상을 보면서 주로 시상을 떠올립니다. 시와 문학은 정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박권수 나라정신과 원장은 시와 문학의 예찬론자이다. 의대시절 시작한 시쓰기를 계속 해오며 지금도 시상이 떠오를 때면 진료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을 글로 나타낸다.

박원장이 처음으로 시문학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의대시절 충대의대 문학써클인 ‘필내음’과의 인연을 맺고부터이다. 의대 선배들과 만남과 작품을 보면서 평소 담아두었던 생각들을 글로 옮기게 됐다.

“제가 학교 다니던 당시는 80년대 대학생의 낭만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학생들의 시에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세상을 접하는 풍경을 담았습니다.”

80년 광주사태의 반발로 가속화된 학생운동이 87년 민주화 운동으로 최고조에 달하고 공산주의가 몰락하던 굴곡의 시기의 80년대 대학생들에겐 현재의 대학생들에게 사리진 사회적 현실참여와
학교생활에 대한 낭만이 있던 시기였다고 84학번이었던 박원장은 회고한다.

박원장은 충대의대의 문학써클인 ‘필내음’과 대학간 연합동아리 모임인 ‘통시’를 통해 활발히 시문학에 대한 갈망을 채줘 나갔다. 1987년에는 필내음 서클회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당시 일반대학생들은 현실 참여적 내용을 썼고 저희 의대생들은 감성적인 글을 주로 썼습니다.” 며 “같은 시기의 대학생들도 다른 시각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필내음과 통시의 인연은 박원장이 졸업후에 오히려 활발하게 이어져 왔다.

“2000년 이후로 재학생 후배들이 들어 오지 않아 서클의 명맥이 끊어 졌습니다” 며 “취업을 위한 공부에 치중하는 실리적인 요즘 대학생들은 시를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제는 OB모임이 된 필내음은 매달 28일이면 품평회를 갖는다. 항상 5명 이상의 회원들이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품평회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서로 인터넷 카페에 올린 시를 화제 삼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 박권수 원장의 시 '알약'에서

“원래 작품을 평가하는 자리지만 이제는 글을 쓰지 않는 회원들도 참석을 합니다” 라며 “낭만과 격동의 80년대 학번들의 향유할 수 있는 추억의 이야기가 있기에 편안하다고 합니다”

회원들에겐 어려웠던 시절 같이 배움을 함께 하며 옛 정서를 함께 나누며 표현했던 필내음은 공부가 힘들었던 의대생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 주었고 지금도 편한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박원장이 손수 지은 시는 현재 50여편에 이른다. 언제쯤 박원장만의 작품집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했다.

“지금까지 50여 편이 조금 넘는 시를 써왔지만 아직은 배우는 단계입니다. 선배님들의 경우 세명 정도 등단해 시인으로 활동하지만 저는 아직 준비 중입니다”라며 손 사례를 쳤다.

“저는 모임을 주관하고 있지만 과거 시를 함께 섰던 동료의사들이 삶의 현실에 바빠서 많은 참여를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좀처럼 진료현장에서 떠나지 못하는 옛 동료들에 대한 박원장의 연민을 느꼈다.

박원장은 전문진료분야가 신경정신과이다. 환자와의 대화가 많이 필요한 직업이니 만큼 시쓰기는 박원장에게 큰 도움이 된다.

◆ 진료중 틈틈히 글을 쓰거나 카페에 올라온 시를 읽는 박원장.

“문학은 인간 내면의 심리를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정신과 상담에 도움을 줍니다” 며 “환자를 진료하면서 느끼는 생각과 상황이 곧 시상의 소재가 됩니다” 박원장은 바쁜 진료 틈틈히 떠오른 시상을 옮겨 적곤 한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필내음 만의 시를 모은 작품집을 내고 싶습니다. 회원들의 글을 모으고 총회에서 의견을 나누면서 구체화 하고 싶습니다”라고 박원장은 포부를 밝혔다.

생각하는 낭만의 자유를 시를 통해 표현하는 의사들의 문학써클인 필내음을 이끌며 80년의 추억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박원장의 작은 소망인 회원들의 공동 작품집이 이뤄지길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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