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대교 사고 때 출동 못해...8년간 인명구조 1명

◆2억여원을 들여 구입한 이동응급의료세트가 실제상황에서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대형 사고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외국에서 수입한 2억 원짜리 이동응급의료세트가 실제상황에 투입된 예가 거의 없어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복지부에서 지난 98년에 2억1200만원을 들여 구입한 이동응급의료세트차량. 차 안에는 8명이 동시에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장비, 공기 주입식 에어텐트 등 외국에서 들여온 고가의 장비들이 비치되어 있다.

이동응급의료세트는 지역내 대형재난사고 발생시에 현장에 신속하게 설치하여 사고현장에서 구조되어 나오는 부상자에 대한 중증도 분류와 현장응급처치 및 환자상태에 맞게 각 병원으로 분산을 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기능을 맡아 하고 있다. 

이동응급의료세트가 도입되기 전 우리나라는 93년 부산 구포열차 전복사고를 시작으로 목포행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김해 중국민항기 추락사고,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등 그 동안 생각조차 하기 싫은 각종 대형재난사고로 수천명의 귀중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거나 불구가 되어 지금까지도 엄청난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이후 의료진이 현장에 출동해 응급처치와 함께 빠르고 정확한 진단을 통해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이 의료세트를 복지부에서 일괄 구매해 전국적으로 19대를 배치했다. 

◆ 활용도 떨어져 =하지만 지난 서해대교 연쇄추돌사고 시에 이 차량이 현장에 투입되지 못하는 등 긴급한 상황시 효율적인 활용이 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충대병원 응급의학과 유인술 교수는 "사고 발생 후 2시간이 지난 오전 9시 30분에 의료센터로 연락이 왔지만 그 때는 이미 많은 구급차량이 투입돼 환자들을 후송한 이후였다"며 "관련 기관 간에 빠르고 적절한 연락체계가 구축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이어 "이는 사고 접수를 받는 경찰이나 119상황실에서 구조대와 구급차를 출동시키면서 이동응급의료세트에 대해 잘 모르고 있어 이동응급의료세트를 출동하라는 상황전파를 하지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충대병원 응급의료센터와 천안응급의료센터에서 출발하기에는 거리가 멀고 인천의 응급의료센터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빨랐는데도 지역이 충남권이기 때문에 충대병원으로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구조차량 내부. 오른쪽에 독일산 에어텐트가 보인다.

대전에서 이동응급의료세트가 출동해 인명구조활동을 펼친 경우는 월드컵 당시 경기장에서 전담의료팀이 심장혈관에 문제가 있어 현장에서 전기충격을 통해 인명을 구한 일이 있었다. 일반응급차량으로는 심실세동을 알아볼 수 없는, 심전도 분석 전문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2003년 5월 새마을호 탈선사고 때 출동했지만 이미 구급차가 환자를 후송한 이후였다.

◆ 구조체계 보완 필요 = 응급의료세트는 현장에 출동해서 에어텐트를 설치하고 환자 상태를 확인하는 때까지 4시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현재의 차량으로는 의료진이 동승할 수 없기 때문에 구급차 한대에 의료진을 태우고 같이 출발해야 하고, 응급실 의료진 10명이 출동할 때는 응급실에 의료공백이 생기는 것도 큰 문제점이다.

또한 국내 일반 구급장비들이 미국식인데 반해 이 차량에 장착된 장비들은 유럽식이라 상호 호환이 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깊은 산이나 계곡 등 구급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이동응급구조세트는 헬기를 이용해 사고지점에 가까운 곳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미국 등 외국에서는 구조된 부상자를 반드시 현장단계에서 이동응급의료세트가 구조대와 동시에 출동하여 곧 바로 이송하지 않고 중증도 분류와 현장 응급처치를 거쳐 각 병원으로 분산시킨다.

하지만 대전과 같이 병원이 많은 도시에서는 구급차를 이용, 가까운 병원으로 신속히 이동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98년에 도입된 이동응급의료세트는 올해까지 8년간 운영이 돼, 내구연한에 의해 내년에는 새로운 차량으로 교체되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이동 거리는 6451km. 구급차들이 두세달 정도 운행되면 나오는 거리다. 1주일에 한번씩 점검을 위해 잠시 병원인근을 운행하는 것과 1년에 몇 차례씩 훈련을 위해 운행하는 때 뿐이다.

이동응급의료세트가 지역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전담 의료팀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시행되어야 하고 큰 국가적 행사에는 테러나 폭동 등에 대비하여 출동해서 대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동응급의료세트 가격이 2억원 정도하고 매년 관리운영비와 의료장비 및 의약품을 보완하는데 400만원의 예산이 지출되고 있지만 단 한명의 생명이라도 구한다면 2억원의 예산은 헛되이 쓰여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초 사고접수 때부터 경찰과 소방서 담당자들이 이동응급의료세트가 함께 출동할 수 있도록 유기적인 명령체계가 운영되어야 한다.
 
유 교수는 "이 장비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행정자치부와 보건복지부로 이원화 되어 있는 응급구조체계를 통합하고 군, 경찰, 소방 등 관계기관에서 긴밀한 협조체제가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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