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산행기] 경남 남해군 위치

주5일 근무제의 도입으로 여가생활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디트뉴스24에서는 등산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 지역 관광지를 보다 알리자는 취지에서 대전충남 근교 산들의 등산기를 연재합니다. 이를 위해 대전충남지역 산악인들의 모임인 '대충山사람들'회원 분들이 참여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주/ 대충山사람들 홈페이지 (http://okmountain.com/okcafe)

  
▶산행일자 : 2007년 1월 21일(일)

▶산 행 지 : 남해 금산

▶코    스 : 상주탐방지원센터-쌍홍문-상사바위-금산정상-보리암-복곡주차장(약 4시간 소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진주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순천방향)로 갈아타고 사천IC를 빠져나가 3번 국도를 따라 남해로 향하다보면 창선ㆍ삼천포대교와 만난다.

삼천포와 창선도 사이 3개의 섬을 5개의 교량으로 잇는 화려한 교각 창선ㆍ삼천포대교는 1995년 착공해 8년 만에 완공된 것이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총 연장 3.4km에 이르는 해상국도(국도 3호선)다.

대전에서 등산기점인 상주해수욕장쪽 탐방지원센터까지는 3시간이 넘게 걸린다. 복곡주차장을 이용할 경우 보리암 800m전까지 셔틀버스가 운행하기 때문에 걸어서 20분 정도면 보리암에 닿지만 상주해수욕장 쪽에서 오른다면 1시간쯤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버스에서 내려 고개를 들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금산 38경의 바위들이 한 눈에 빨려 들어온다.

올 1월 1일부터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기존 매표소는 탐방지원센터로 개칭하고 탐방지원센터 내에 ‘시인마을’ 이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탐방객을 대상으로 시집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금산은 해발 681m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바다에서 솟아 오른 산이기 때문에 경사가 만만치 않아 정상까지 오르는데 한두 번쯤은 숨이 차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쉴 만한 공간이 마련돼 있으며 그곳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가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갈수기여서 물이 마른 약수터에서 약수대신 수통의 물로 갈증을 달랜다. 약수터에서 쌍홍문까지 거리는 약 800m다.


거칠게 다듬어진 돌계단이 계속되고 고개를 들면 푸른 하늘에 걸린 상사바위를 시작으로 금산 38경 바위들이 하나하나 그 모습을 드러낸다.

상주해수욕장쪽 탐방지원센터에서 50분 남짓 오르면 두 개의 구멍이 뚫린 돌문이 나타난다. 흡사 해골을 연상시킨다. 금산 38경 중 하나인 쌍홍문(雙虹門)이다. ‘옛날 석가세존이 석주(石舟 돌배)를 만들어 타고 쌍홍문을 나가면서 멀리 앞 바다에 있는 세존도(世尊島)의 한복판을 뚫고 나갔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왼쪽으로 해상상호 즉 동서남북에 흩어져 있는 네 신선이 모여 놀았다는 전설이 깃든 바위 봉우리 ‘사선대’가 보인다.

쌍홍문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 송악으로 갑옷을 입은 장군암이 지키고 있다. 장군이 검을 짚고 봉을 향하여 서 있는 형상의 장군암은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일명 수문장이라고도 한다.

송악은 두릅나뭇과에 속하는 늘 푸른 덩굴식물로 줄기에서 뿌리가 나와 암석이나 나무에 붙어서 자란다. 소가 잘 먹는 식물이라 남부지방에서는 소밥이라 부른다.

어둠 속 조그만 구멍을 통해 드러난 풍경. 해골처럼 보이지만 그 외형과는 달리 쌍홍문 밖으로 드러난 바다가 아름다워 가던 걸음을 몇 번이나 멈추고 돌아본다. 바다에 산봉우리들이 떠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남해의 깊은 바다에 발 담근 금산은 바다를 낀 여느 산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산이다. 문장암, 천계암, 화엄봉, 일월봉, 제석봉, 장군암, 상사바위 등 그 모양에 따라 이름을 얻은 바위들이 수 십여 개나 도열해 있어 ‘금산 38경’을 이룬다.

금산의 관문인 쌍홍문을 지나면 곧바로 보리암이 나타나지만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오르면 일월봉이 반긴다. 두 개의 바위가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가까이 보면 일자형(日字形)을 이루고 있으나 멀리서 전체를 보면 월자형(月字形)으로 보여 일월봉이라 부른다.

곧이어 나타나는 전망대 바위가 제석봉(帝釋峰)이다. 이 바위에 제석천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 제석천은 불상의 좌우에 모시는 신으로 법천왕과 더불어 불법을 지키는 신을 말한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햇살 퍼지는 푸른 바다, 올망졸망한 작은 섬들 사이로 유유히 떠가는 어선, 그리고 수평선과 나란히 마주하고 달리는 해안선은 그림 같은 절경의 연속이다. 멀리 눈에 들어오는 해안선과 섬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온함이 느껴진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단군성전으로 향하다 보면 흔들바위가 길을 막고 있다. 거북이 모양을 닮아 귀암(龜岩)이라고 하며 사람의 힘으로 흔들거려 요암(搖岩 흔들바위)이라고도 한다.


능선에서 길이 갈라진다. 오른쪽은 금산 정상으로 왼쪽은 상사바위로 가는 길이고 그대로 직진하여 조금 내려서면 단군성전이다.

우리 겨레의 시조인 단군을 모신 성역으로 1995년에 건립되었다. 성전에는 환인 하느님, 환웅천왕, 국조 단군왕검의 영전을 봉안하고 있다.

상사바위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헬기장이 나타난다. 한쪽 귀퉁이에 모산악회에서 세운 산신제단표지석이 보인다.

금산의 풍경은 보리암에서보다 아득한 절벽인 상사바위에서 보는 맛이 최고다. 한 과부가 자신을 짝사랑하다 상사병에 걸린 청년을 이곳에 데려와 회포를 풀어주었다고 해서 상사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방을 빙 둘러가며 내려다보는 풍광은 가히 절경이다. 이곳에서는 보리암, 쌍홍문, 사선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앵강만에서 미조의 바다풍광도 내려다볼 수 있다.

특히, 여덟 개의 바위들이 마치 여덟 신선이 놀고 있는 모양 같다고 해서 이름 붙어진 팔선대와 우리나라 3대 거사(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가 앉아 수도했다는 좌선대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눈앞에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점심식사를 위해 자리를 잡는다. 한타의 추부장님이 건네는 뜨끈한 수프가 뱃속을 든든하게 하고 동행이 건네는 귤과 따끈한 커피까지 산행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발길을 되돌려 망대가 있는 정상으로 향한다. 봉수대 바로 앞에는 버선 모양의 바위가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주세붕이 쓴 글씨가 새겨져 있어 문장암(명필바위)라 부른다.


정상을 차지한 봉수대는 고려 의종때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다. 둘레 25m 높이 3.5m 폭 8m의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중심 봉수대 가운데서 동래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제2봉수로에 속한 최남단의 봉수이다. 왜적의 침입시 금산 봉수대 신호를 시작으로 창선 대방산 봉수대와 삼천포 각산 봉수대 혹은 전남 여수 돌산 봉수대로 연결됐던 것. 고종 31년(1894년) 폐지되기까지 당시 급박한 상황을 조정에 전하던 주요한 곳이었다.


남해는 남쪽 바다의 문을 여는 섬으로, 이 섬의 주인이 금산(681m)이다. 예전부터 남해의 소금강으로 알려진 이 산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普光山)이다. 원효대사가 이 산에서 관세음(觀世音)의 빛을 보고 그 감격을 잊을 수 없어 산 이름을 보광산이라 지었다고 한다. 보리암의 옛 이름도 보광사이다.

이 산이 금산으로 바뀐 것은 조선 초다. 태조 이성계가 전국의 명산을 돌며 기도를 할 때 이곳에 들렀다.

이성계는 금산의 산신께 자신이 나라를 세우는 것을 허락하면 온 산을 비단으로 둘러주겠다는 약조를 했다. 그러나 조선을 개국하고 나자 비단으로 산을 두를 길이 없었다. 그래서 비단 금(錦)자를 내려 금산으로 개명케 했다. 보리암 아래에 있는 삼불암에는 이씨신단(李氏神壇)이란 글귀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정상에서 약 200m 정도 내려오면 불교용품을 판매하는 매점이 있다. 왼쪽은 복곡주차장으로 하산하는 하산길이고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보리암이다.


강화 석모도 보문사, 양양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처로 꼽히는 남해 금산의 보리암(菩提庵)은 신라의 원효(元曉)대사가 세웠다. 대장봉(大將峯) 벼랑 아래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철탑 꼭대기의 까치집처럼 아찔하다. 높은 데 있으니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보리암 앞에는 흰색의 관음보살상이 서 있고 옆 바위에 탐방객들이 소원을 빌며 동전을 붙이는 모습이 재미있다. 그 옆으로 빛바랜 삼층석탑이 천년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보리암 삼층석탑에도 흥미로운 전설을 담고 있다. 가락국 김수로(金首露) 왕비인 인도의 허황옥(許黃玉) 공주가 월지국(月支國), 즉 인도에서 배로 실어온 파사석(婆娑石 인도에만 있는 석재)으로 세운 탑이다. 귀국하면서 배의 바닥에 깔았던 돌이다. 허태후가 인도에서 돌아올 때 풍파가 뱃길을 막았다. 태후는 배에 파사석을 실었고 덕분에 풍랑을 헤치고 무사히 상륙할 수 있었다. 이 돌을 기반 삼아 원효대사가 보리암 앞에 세운 탑이라는데, 이 탑 위에 나침반을 올려두면 북쪽을 가리키지 못한다 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기도 하다.

만불전 계단을 따라 5분 정도 진행하면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선은전(璿恩殿)에 닿는다. 전각 왼쪽에는 남해금산 영응기적비, 오른쪽에는 대한중흥 송덕축성비라 새겨 이름을 밝히고 있다.


미로처럼 얽힌 산길을 따라 곳곳에 널린 바위들을 감상하며 정상을 거쳐 보리암까지 구경하면 3시간쯤 걸린다.

보리암에서 다시 불교용품매점을 거쳐 복곡주차장까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걸어서 40분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산책로 같은 길을 10분 정도 내려가면 주차장가지 셔틀버스(편도 1천원)가 운행한다.

뒤풀이를 위하여 삼천포항 수협으로 이동한다. 빨간색 등대와 갈매기가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한 장의 그림엽서를 만든다. 수평선 끝으로 두툼한 구름이 깔리고, 바다는 그저 고요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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