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산행기] 설악산 서북능선

주5일 근무제의 도입으로 여가생활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디트뉴스24에서는 등산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 지역 관광지를 보다 알리자는 취지에서 대전충남 근교 산들의 등산기를 연재합니다. 이를 위해 대전충남지역 산악인들의 모임인 '대충山사람들'회원 분들이 참여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주/ 대충山사람들 홈페이지 (http://okmountain.com/okcafe)


- 산행일 : 2006년 11월 12일(일)

- 산행코스 : 장수대 - 대승폭포 - 대승령 - 귀때기청봉 - 한계령 (12.6km)

 

새벽 4시 25분. 아직 어둠이 다 물러나지 않은 시각. 승차 장소인 원두막에 도착하자 야운님이 인사를 건넨다. 10분 후 도착한 28인승 우등버스는 곧바로 대전톨게이트로 들어선다.

곧 소등하고 토막 잠에 빠져든다. 1시간 20분을 힘차게 달리던 버스는 문막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고 홍천톨게이트를 빠져나가 44번 국도를 타고 달린다. 

내설악광장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한계리 민예단지 휴게소앞 삼거리에서 한계2리로 접어들자 지난 여름의 수해가 남긴 깊은 상처가 보인다. 계곡 이곳 저곳에 뿌리째 떠내려온 아름드리 나무들이 아직도 그대로 처박혀 있다. 토사에 곳곳이 잘려나간 도로는 새로 포장을 했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장수대 지구는 한계령이 시작되는 설악산의 들머리다. 장수대(將帥臺)는  원래 자양밭(紫陽田)이었는데 삼군단장으로 있던 오덕준장군이 6.25동란 당시 희생된 장병들의 명복을 비는 뜻에서 1959년에 한옥산장을 세우고 장수대라 명명한 후에 붙여진 지명이다. 
 

지난 여름 수해로 옥녀탕휴게소는 폐허가 된 채 방치되어 있고 아름드리 소나무와 박달나무, 신갈나무들이 울창해 '21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됐던 장수대 숲의 대부분이 엉망이 되었다.


8시 40분. 각자 자기 소개를 하고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산행을 시작한다.

국립공원 설악산 장수대 매표소를 통과하자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뿌리를 하늘로 하고 거꾸로 선 채 나뒹군다. 
 


대승폭포 아래에 4단으로 이어지는 사중폭포(四重瀑布)는 등산로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 일행들이 무심코 지나간다. 사중폭포 초입에도 거목이 쓰러져 길을 가로막고 있다. 
 

혼자 찾아가 사진 한 장을 카메라에 담고 바삐 일행의 뒤를 따른다. 철제난간은 모두 사라지고 계곡 오른쪽 능선으로 붙는 새로 난 등산로에는 곳곳에 로프를 매어 유도표시를 했다. 
 

장수대 매표소를 지나 0.9km 를 오르면 금강산의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한국 3대 폭포의 하나인 대승폭포가 나타난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대승폭포는 높이가 88m로 우리나라 최대의 폭포이며,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927∼935)의 피서지였다고 전해온다.

또한 대승폭포는 지리산 불일폭포와 함께 남한의 2대 폭포로도 손꼽힌다. 지리산 불일폭포는 높이 60m로 대승폭포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계곡 깊숙이 파묻혀 웅장한 느낌이 드는 반면, 대승폭포는 확 트인 폭포의 경치가 폐부 깊숙이 시원함을 선사한다. 

본래는 한계폭포라 했으나, 옛날 부모를 일찍 여윈 대승이라는 총각이 이 고장에 살았다. 집안이 가난한 대승은 버섯을 따서 팔아 연명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폭포 돌기둥에 동아줄을 매고 버섯을 따고 있었는데,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절벽 위에서 다급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나서 정신 없이 올라가 보니 어머니는 간데 없고 동아줄에는 커다란 지네가 달라붙어 동아줄을 썰고 있었다. 덕분에 대승은 목숨을 건졌는데 죽어서도 아들의 생명을 구해준 어머니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해서 대승폭포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폭포 위 전망대에 선다. 남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높은 봉우리는 가리산(1,519m)이다. 주걱봉, 삼형제봉과 함께 연봉을 이루고 있다.

그림자를 앞세우고 1시간 30분 정도 더 가파른 길을 오르자 대승령에 도착한다. 언제 내린 눈인지 햇빛이 들지 않는 북사면에는 눈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바람을 피해 휴식을 취할 마땅한 장소가 없어 그대로 진행한다.



대승령을 지나 대청봉 방향으로 가다 보면 첫 번째 험로가 나타난다. 1289봉이다. 70도 이상의 경사도를 가진 암릉을 기어오르면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설악산이 가진 매력 포인트는 바위다. 침봉들과 절벽이 시선을 빼앗는다.

바람이 죽은 양지바른 곳에서 간식을 나누며 후미일행을 기다린다. 얼마 후 후미가 도착하고 5분 정도 더 진행하여 점심식사를 위해 자리를 잡는다. 진수성찬이다. 
 


가야 할 길이 만만치 않은데 모두들 여유를 부리며 산행속도가 느려진다.


1408봉은 험한 암릉을 넘어야 하는데 거의 수직에 이르는 경사도로 자칫 추락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 길은 높고 낮음을 반복한다. 뒤돌아보니 걸어온 길이 아득하게 멀어져 있다. 암릉 아래 비경이 펼쳐진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암봉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행 내내 우뚝 서서 이정표 역할을 하며 발길을 재촉하던 귀때기청봉으로 오르는 길은 온통 너덜지대(돌이 많이 깔린 비탈)다. 맑은 날에도 방향표시(붉은 페인트 화살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쉬운 곳이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분다.
 

귀때기청봉 정상에 서자 대청봉과 중청의 레이더시설이 손에 잡힐 듯하고 소청산장과 봉정암이 조망된다. 능선에 솟아오른 바위봉우리들이 마치 용의 이빨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용아장성릉이 햇빛을 반사하며 환하게 그 웅장함을 자랑한다. 그 뒤로 마치 공룡의 등처럼 험준하다하여 이름 붙여진 공룡능선이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다. 한편의 대서사시다.


멀리 대관령을 지키는 커다란 풍차가 돌아가는 모습은 이국적이다. 태양을 머리에 이고 가리산이 주걱봉과 삼형제봉을 거느리고 우뚝 서 우람한 자태를 뽐낸다.


귀때기청봉은 한쪽 귀때기에 있어서 귀때기청봉이라 불린다. 귀때기청봉이라는 이름에는 재미있는 유래가 있다. 귀때기청봉은 자신이 설악산에서 가장 높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귀때기청봉은 대청봉 앞에서 자신이 더 높은 봉우리라고 뽐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대청봉은 느닷없이 귀때기를 한 대 올려 부쳤다. 그 바람에 귀때기청봉은 대청봉에서 멀리 떨어진 지금의 이곳까지 날아와 버렸다고 한다.

30분쯤 지나서 일행들이 도착한다.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여유를 부리는 일행들을 재촉하여 하산을 서두른다.


귀때기청봉에서 내려서는 길도 너덜지대다.


너덜지대를 지나면 수월하다. 어느새 가리봉 뒤로 해가 숨고 서쪽 하늘은 잠시 화려한 물감이 풀어진다.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러나 이제 곧 날이 저물 것이다. 미처 랜턴을 준비하지 못해 마음이 조급해지고 발걸음이 빨라진다.


치마바위가 눈길을 끈다.
 

귀때기청봉에서 약 40분 정도 지나면 한계령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한계령휴게소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빠르게 치고 내려서지만 한 번의 오르막이 숨가쁘게 한다. 한계령휴게소 1km 이정표를 지나면서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리고 조심스럽게 한발한발 내딛는다. 계단길이라 다행이다.

18시 20분. 드디어 한계령매표소와 장군루가 나타나고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하면서 약 10시간의 설악산 서북능종주는 끝을 맺는다.


1시간 30분이 지나 맨 후미가 도착하고 버스는 대전으로 향한다. 대전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1시를 넘긴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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